본문 바로가기

경영 이야기/마음 이야기

경영이란 무엇인가(19)_재능(달란트)과 인재

인재를 설명하면서, 성경의 달란트 비유(마태복음 25 14~30)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달란트는 고대 중동지방의 화폐단위였지만, 그것이 재능이라는 뜻으로 변했다가 오늘날에는 자신의 재능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이 달란트 비유에 대해 타고난 재능을 잘 발휘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개신교 노동윤리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인재(人材)라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마태복음 25장에 나온 예수의 비유를 차분히 읽어보겠습니다.

 

  1. "하늘 나라는 또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먼 길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었다.
  2.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돈 다섯 달란트를 주고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3.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4.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5.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가서 그 돈을 땅에 묻어두었다.
  6. 얼마 뒤에 주인이 와서 그 종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7.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주인님, 주인께서 저에게 다섯 달란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잘하였다.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 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하고 말하였다.
  2. 그 다음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와서 '주인님, 두 달란트를 저에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 그래서 주인은 그에게도 '잘하였다.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 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하고 말하였다.
  2.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와서 '주인님, 저는 주인께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무서운 분이신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3.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저는 주인님의 돈을 가지고 가서 땅에 묻어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그 돈이 그대로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 그러자 주인은 그 종에게 호통을 쳤다. '너야말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인 줄로 알고 있었다면
  2. 내 돈을 돈 쓸 사람에게 꾸어주었다가 내가 돌아올 때에 그 돈에 이자를 붙여서 돌려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
  3. 여봐라, 저 자에게서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4.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해지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5. 이 쓸모 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곳에 내쫓아라. 거기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이 비유를 읽고 얻은 첫인상이 어떻습니까? 처음 성경을 배울 때는 잘 몰랐는데, 철 들고 나서 이 비유를 음미할수록 너무 무자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한 달란트밖에 없는 사람에게서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사람에게 주는 행태는 빈익빈 부익부를 조장하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의 달란트 비유는 심오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재능의 크기에 차이가 있지만, 누구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큰 재능이든 작은 재능이든, 수학재능이든 음악재능이든 상관없이, 어떤 재능이든 연마해서 남김없이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달란트 비유의 핵심이었습니다.

성과가 적은 사람에게 적게 보상하고, 성과가 큰 사람에게 많이 보상하라는 취지의 비유가 아니었습니다. 루터의 해석은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신이 주신 재능(달란트)을 크든 적든 연마하여 남김 없이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실패할 것을 염려하지 말고, 결과는 상관하지 말고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엄격한 사람이라서 장사하다가 실패하면 그 하나마저 잃어버릴까 두려워서 땅 속에 묻어 두었다고 변명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호된 꾸지람과 가혹한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썩힌 것에 대한 징벌이었습니다. 이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이것입니다. 재능을 연마하여 활용하라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혹독한 벌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나는 크게 두 가지 시사점을 생각했습니다.

 

첫째, 사회적으로 실패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도 실패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패할 수 있는 여유를 주어야 합니다. 왕창 실패해도 다시 재기하는 데 장애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사회적으로 한번 실패하면 어떻게 되나요? 큰일 납니다. 회사생활에서 실패하거나 실수하면 찍힐 뿐만 아니라 한직으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선배들이 그렇게 되는 것을 봤기 때문에 조직의 쓴맛을 간접적으로 체험합니다. 적당히 중간만 가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재능을 갈고 닦으려는 의지가 발동하지 않습니다. 창의성도 발휘하기 어렵죠.

 

이런 상황에서 적은 재능이라도 맘껏 연마하고 잘 발휘하라고? 불가능한 얘깁니다. 어린 아이들이 걸음마를 뗄 때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걷는 것을 배웁니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과정이 마찬가지입니다. 실패하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덴마크의 사례>를 예를 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 아무리 재능이 적더라도 아예 포기하지 않도록 길을 터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재능의 크기를 서로 비교합니다. 학교성적을 비교해서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는 차별합니다. 재능은 학교 점수와 상관 없는 데도 말이죠. 점수가 낮은 사람은 자신이 무능하다고 생각해버립니다. 그리곤 포기합니다. 부자와 행복, 성공과 위대함은 학교성적과 비례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점수로 비교합니다. 그래서 재능이 적다고 여겨진 사람들은 재능연마에 소홀하기 쉽습니다. 그리곤 환경 탓 하거나 찰라적 쾌락에 탐닉하게 됩니다. 나아가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울지도 모릅니다.

 

재능의 크기에 상관없이 누구나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연마하고 활용할 의지가 있다면 누구나 인재(人材)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일에서 성과를 적게 내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인사시스템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관련된 글
2009/06/20
신자유주의 시장경제(11)_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2009/06/19
신자유주의 시장경제(10)_ 개신교 장로들에게 묻습니다
2009/06/19 존 러스킨_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