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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록/용산참사에 대하여

용산참사_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내 이웃집에서 발생한 용산참사를 보면서, 인간존엄에 대해 한두 꼭지의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벌써 여섯 번째가 되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국가의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인간존엄의 근거는 신학적 사유와 철학적 사유로부터 도출됨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인간존엄은, 강자와 약자의 관계에서, 강자가 약자에 대한 일방적인 배려를 통해서만 표출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통해서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인간존엄은 순식간에 사라지게 된다는 점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기 위해 근대적 의미의 국가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됩니다.

 

국가는 인간을 위해 존재합니다.

 

인간은 세 차원에서, 즉 사물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자기자신과의 관계에서 어떤 태도와 입장에 있느냐에 의해 인간존엄이 인격의 형태로 드러납니다. 여기서 관계는 항상 강자와 약자 사이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인간이 사물에 대해 지배적인 태도와 입장에 있는 경우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자연물에 대해 그런 태도를 가지는 경우 자연훼손에 따라 인간존엄이 지속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경우에는 인간의 존엄은 사라집니다. 더 나아가 자기자신과의 관계에서 내면의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영혼의 세미한 음성을 외적 자아가 무시해 버리면, 영혼이 없는 인간이 되어 인간존엄이 폐기됩니다.

 

그러므로 세 차원의 관계가 올바른 형태로 인간존엄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강제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곧 법입니다. 이러한 법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 국가입니다. 따라서 국가는 인간의 존엄을, 소극적으로는 보호하고 적극적으로는 형성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모든 국가의 기능은 이것을 지향해야 합니다. 요컨대, 국가는 인간존엄을 보호하고 형성하는 기능을 감당하기 위해 존재하며, 그 구체적인 수단은 법입니다.

 

법은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률입니다. 이 최소한의 도덕률, 즉 법은 반드시 사회적 정의를 지향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정의란 적어도 존 롤즈(John Rawls, 1921~2002)가 설정한 정의(justice)의 원칙들을 지키는 것이어야 합니다. 첫째는 평등한 자유의 원칙이고, 둘째는 평등한 기회의 원칙입니다. 이 두 원칙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법은 이런 것을 잘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하고 집행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두 원칙만으로는 현실적인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문제는 바로 차등의 원칙인데, 사회적 불평등은 사회의 최소수혜자(The Least Advantaged)에게 이익이 될 때에만 허용되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자유주의 사상에 입각해서 사회적 정의를 세울 수 있는 원칙들을 평생동안 사유했던 인물이 존 롤즈였습니다. 자유주의를 옹호하고자 했던 그조차 최소수혜자를 감안해야 사회적 정의가 성립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존 롤즈의 정의론(The Theory of Justice)을 복잡하게 말했지만, 이러한 정의의 원칙을 용산참사에 적용해 보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혜택을 적게 받고 있는 사람들인 철거민들의 삶의 근거지가 철거됨으로써 그들에게 혜택이 어느 정도 돌아가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철거민들이 불법적으로 집단시위를 했다! 불법을 저질렀으니 처벌해야 한다! 끝! 이런 단순무식한 논리로 국가를 운영하다니...

집단시위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그 사회의 최소수혜자들이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저항의 몸부림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집단시위가 함축하고 있는 사회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철거민들이 더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요구이겠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정의개념이 법으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국회에서 의원들의 집단시위도 이와 동일한 현상입니다.

 

이런 상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지난 30년간의 사회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유한 계층의 자녀들이 소위 일류대학을 입학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가난한 계층의 자녀들은 그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의 세습과 가난의 세습을 넘어 부익부빈익빈의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가 정의롭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보다는 사회정의가 법률에 의해 비교적 잘 구현되고 있는 유럽의 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나는 독일에서 5년간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온 가족 네 명이 약 20평짜리 아파트에 월세로 생활했습니다. 가난한 유학생활이었기 때문에, 온 식구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생활비를 더 줄이기 위해, 고정비용인 집세를 줄이려고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계획했습니다.

 

독일친구들이 나에게 정부보조를 받으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시청에 가서 집세보조비를 신청하면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얘기였습니다. 정부가 월세를 보조해준다? 그것도 외국인 유학생에게? 나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알고 보니,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 때문에 독일인에게나 외국인에게나 동일한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일에는 인간적인 삶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이 있습니다. 내가 살던 20평짜리보다 더 작은 곳으로 이사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비인간적인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대신 정부로부터 집세보조를 받을 수 있습니다.

 

관청에 가서 신청했더니, 내 사정을 들은 담당공무원이 집세보조비뿐만 아니라 두 아이의 양육보조비까지 함께 신청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유학기간 내내 정부보조금을 받았습니다. 잘 알다시피,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처럼 독일도 모든 교육시스템(초등학교에서 대학원의 박사과정까지)은 기본적으로 무료입니다. 학비도 무료인데다 생활비까지 보조를 받았으니, 우리 가족은 독일생활을 비교적 윤택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독일정부는 나에게 공짜로 공부를 가르쳐주면서 생활보조비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내가 그 사회에서는 최소수혜자(The Least Advantaged)였습니다. (물론 요즘은 교육개혁을 통해 대학생들에게 약간의 등록금을 받는다고 합니다만, 우리나라나 미국과 같이 상당한 등록금에 비하면 상징적인 수준입니다. 독일에서는 부모의 경제적 수준과 상관없이 공부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있으면 누구나 대학 이상의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대학생활 동안 생활비를 대출받아서 졸업후 취직해서 장기간에 걸쳐 되갚는 장학제도가 아주 발달해 있습니다. 인간적인 삶의 차원에서만 본다면 빈부의 격차를 거의 느낄 수 없는 사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이때, 독일의 기본법 정신이 우리나라 헌법정신과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여기에 인용해 보겠습니다.

 

독일의 기본법 31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 (Alle Menschen sind vor dem Gesetz gleich.)

 

우리나라 헌법 제11 1항 첫 문장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무엇이 다른지 아시겠습니까? 나도 처음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독일 기본법에는 모든 인간이고 우리 헌법에는 모든 국민이라는 표현입니다. 독일 기본법은 모든 인간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적어도 사회보장에 있어서는 외국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법으로 차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헌법에는 외국인은 법으로 차별대우를 해도 괜찮도록 명시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힘센 나라에서 온 외국인과 힘없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을 차별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헌법이 조장하는 것은 아닌가요? 이런 정신이 내국인들 사이에서도 부자와 가난한 자들을 차별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이것은 돈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정신의 문제입니다.

 

정부는 단순히 법을 기계적으로 집행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법의 정신, 곧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기관입니다. 그런 사회적 정의를 통해 인간존엄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인간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최소수혜자(The Least Advantaged)는 과연 누구일까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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