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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이야기/탐욕에 대하여

돈은 인간의 정신을 왜곡한다

알피 콘(Alfie Kohn, 1957~)이라는 교육학자는 오프리 윈프리 쇼에서 돈이 인간의 정신과 행동을 얼마나 왜곡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성과급이 일에 대한 동기부여와 흥미를 얼마나 심각하게 떨어뜨리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이것’(과제)을 하면 저것’(보상)을 받게 됩니다라는 말은 '이것' 자체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게 됩니다. 당신이 그 과제에 대한 노동과 교환할만한 어떤 다른 '저것'을 주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실험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열명의 어린이들(A집단)에게 장난감 회사에서 제공하는 퍼즐을 시험해 보는 대가로 5달러를 주기로 했습니다. 다른 열명의 어린이들(B집단)에게는 보상이 전혀 없이 그냥 퍼즐을 시험해 보도록 했습니다. 퍼즐은 아이들이 몰입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이들 모르게 숨겨진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퍼즐 시험이 끝나고, 어린이들을 각각 방에서 잠시 기다리도록 한 후, 장난감 회사 직원은 밖으로 나갔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A집단(5달러를 약속 받은)어린이들 중 아홉 명은 퍼즐을 거들떠 보지 않았습니다. B집단(아무 보상이 없었던) 어린이들 열 명 모두 그 퍼즐을 계속 가지고 놀았습니다.

 

이렇게 돈은 인간의 원초적이고도 내재적 동기부여(intrinsic motivation)를 왜곡하거나 훼손합니다. 알피 콘은 자신의 책 『Punished by Rewards(Houghton Mifflin, 1993/1999)에서 지난 수십 년간 돈이 인간의 이성적 행동과 합리적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결과를 조사했습니다. 놀랍게도 6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돈을 포함한 보상이 인간의 동기구조를 왜곡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쏟아져 나왔음을 밝혀냈습니다.

 

단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고, 모든 경우에 보상은 높은 성과를 내는데 오히려 나쁜 영향을 끼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예외란 보상이 성과를 높여주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단순한 과제들, 즉 아무나 할 수 있고 쉽게 수량화되는 과제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편지봉투를 접는 일과 같이 아무나 할 수 있고 그 결과를 수량으로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일이라면, 보상이 더 빠르게 더 열심히 일하도록 자극함으로써 좋은 성과를 냈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생각을 해야 하거나 판단을 필요로 하는 과제에서는, 한결같이 보상이 일에 대한 동기부여를 왜곡하거나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결과가 이러할진대, 기업의 실무에서는 어째서 이런 이론들이 전혀 활용되지 못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행동주의 심리학이 워낙 강력하게 미국인들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70년대 초 대학에서 심리학 원론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때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심리, 즉 마음의 이치를 배울 것으로 기대했으나, 교수님은 나의 기대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미국에서 교육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신 분이었습니다. ‘인간에게 마음이란 없다. 보이지도 않고 측정하기도 곤란하다. 인간에게는 관찰가능한 행동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심리학이란 인간의 행동을 관찰 측정해서 설명하고, 나아가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수정하는 학문이다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대학의 가르침이 중고등학교와는 다르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님이 그렇다는 데 누가 감히 그 말에 도전할 수 있겠는가. 그 후에는 줄곧 심리학을 인간의 행동을 바꾸는 학문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은행에서 일하면서도 그런 생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80년대에 독일 유학 중에 심리학에 대한 내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나는 경영학 중에서도 인사조직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대학의 심리학과에서 2년간이나 꼬박 심리학 과목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이때 여러 교수님들로부터 심리학이란 마음의 학문이라는 가르침을 접하면서 또 다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융의 분석심리, 펄스의 게슈탈트심리이론을 배우면서 인간의 행동은 마음의 산물임을 알았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후 실무를 하면서 점차 균형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행동은 마음의 표현이고, 마음은 행동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마음과 행동은 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심리학과 독일심리학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지를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형이상학적 사유에 능했고, 미국 사람들은 형이하학적 실증을 믿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문화의 차이였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은 미국의 심리학자 스키너(Burrhus F. Skinner, 1904~1990)에 의해 꽃이 피었습니다. 대학을 다닌 사람 중에서 스키너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상자 속의 쥐가 지렛대를 누르는 횟수에 따라 먹이가 나오는 실험을 했습니다. 지렛대누르기와 먹이의 변화를 통해 쥐의 행동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원리를 응용하여 동물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개발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스키너 상자(Skinner’s Box)라고 불리는 가르치는 기계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에 버금가는 발견이었습니다.

 

이 상자는 비둘기에게 탁구 치는 법을 가르치고, 심지어 미사일을 유도하는 훈련도 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습니다. 이런 사상은 미국인들을 열광케 했습니다. 그들이 신세계를 개척했던 정신에 정확히 부합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요소환원주의적인 방식으로 프로그램된 행동공학’(behavioral engineering)을 사람에게 활용한다면 인류는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비둘기에게 탁구를 치게 할 수 있는데, 사람에게 보상을 내걸고 행동을 강화할 수 있다면 무엇을 못 가르치겠는가! 이런 자신감은 미국인의 무의식 속에 아주 깊이 박혀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보상과 성과의 인과관계에 대한 뿌리깊은 믿음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돈이 곧 성공이자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돈이라는 보상시스템이 신대륙의 개척정신과 청교도의 검약 정신을 심대하게 왜곡하고 있음을 미국인들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정체성이 정말 밀수꾼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미국인들은 돈과 탐욕에 깊이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