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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이야기

경영에 관한 심오한 지식_데밍(2)

자동차뿐만 아니라 금융상품까지 불량품을 생산하는 미국식 경영에 대한 데밍의 혐오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미국 경영학계와 실무계가 데밍의 이상적인 사상 때문에 왕따시켰는지 모르겠지만, 데밍은 미국보다는 일본에서 왕성한 자문활동을 벌였고 그의 사상을 가장 잘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도 일본인들이었습니다. 그는 통계학자로서, 경영사상가로서, 뉴욕대학교의 교수로서, 그리고 경영컨설턴트로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데밍(William Edwards Deming, 1900~1993)의 가르침은 일본인들에게는 구원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들은 데밍이 가르치는 통계적 기법에 의한 품질관리만을 배운 것이 아니라 데밍의 경영철학까지 받아들여 실무에 응용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이 결코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품질수준을 만들어 냈습니다.

 

데밍의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난 저작


일본인들에게 가르쳤던 데밍의 가르침은 품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윤을 창출하자는 것이 품질이기 때문에 품질은 이윤보다 앞선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품질은 장기적인 계획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이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품질관리에는 통계적인 기법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올바른 정신모형(mental model)이 뒷받침되어야 함도 교육했습니다.

 




데밍의 경영철학은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미국식 경영과는 다릅니다.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의 정신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서만 베풀고, 그 결과에만 집착하는 미국식 경영관행으로는 데밍의 사상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심오한 지식

 

데밍이 도대체 무슨 주장을 했길래 미국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일본인들은 그의 사상을 받아들였을까요? 그는 경영에 관한 수많은 지식체계를 쏟아냈지만, 자신이 직접 심오한 지식(profound knowledge)이라고 골라 뽑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물론 이 네 가지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한데 어우러진 것으로서, 기업들이 미국식 숫자경영에서 벗어나 최적화된 경영방식으로 변화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적인 요소들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시스템에 대한 인식

변동에 관한 지식

지식이론

심리학

 

시스템에 대한 인식

 

첫째, 시스템이란 목표달성을 위해 협력하는 상호의존적인 구성요소의 네트워크입니다. 구성요소들간의 상호의존성이 커질수록 협력과 의사소통의 필요성은 커집니다. 볼링 팀은 상호의존성이 낮지만 오케스트라는 매우 높습니다. 아마도, 기업경영은 오케스트라보다 더 높은 상호의존성을 나타낼 것입니다. 따라서 기업경영에 있어서 각 구성원은 자신의 생산, 이익 또는 판매 등과 같은 부문별 극대화를 목표로 하거나 경쟁적인 측정방식을 도입해서는 안 됩니다. 전체 시스템에 최대한 공헌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해서 시스템 전체의 최적화를 위해 스스로 손해를 볼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시스템에 관한 견해는 후일 피터 센게(Peter Senge, 1947~)의 시스템이론과 학습조직개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센게의 사상은 1990년에 『제5경영』(The Fifth Principle)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우리나라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변동에 관한 지식

 

둘째, 변동(variation)에 관한 지식이란 통계적 추정의 오류에 관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의 시험성적을 평균하면, 절반은 평균 이하의 점수를 얻었을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평균 이상의 점수를 얻었을 것입니다. 평균 이하의 성적을 거둔 학생에게 장래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거나 유능하지 못하다는 통보를 한다면, 학생은 의기소침해지고 굴욕감이나 열등감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처사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학생의 성적은 그 학생 고유의 능력을 나타낸 것이 아니며, 학교성적이란 아이가 처한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적 원인을 도외시한 채, 성적이 평균 이하의 학생에게 장래가 어둡다는 평가를 내리거나 머리가 나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변동에 관한 잘못된 지식 때문입니다. 데밍의 변동에 관한 심오한 지식은, 기업에서 성과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에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성과가 낮은 직원에게 무능하다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판단인지를 알려줍니다.

 

지식이론

 

셋째, 지식에 관한 이론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데밍의 지식이론을 가장 좋아합니다. 지식이 없으면 합리적인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데밍의 지식이론이 가장 논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많은 경영자들이 지식을 그저 무엇에 대해 알고 있는 상태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단순히 무엇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은 미래를 예측하게 하는 기반입니다. 내가 만약 휴가를 떠난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식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진보하게 하는 기반입니다. 이 풍요의 기반은 끝없이 확장할 수 있습니다. 지식이 없으면, 즉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면 그 조직은 망합니다. 그래서 지식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데밍의 유명한 비유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챈티클리어라는 수탉에 관한 비유입니다.

 

헛간의 수탉, 챈티클리어는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온 힘을 다해서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우렁차게 울었다. 그런 후에 태양이 떠올랐다. 전후 관계가 분명했다. 그의 울음 소리는 태양을 떠오르게 하였다. 그가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그는 어느 날 아침 울음소리 내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태양은 떠올랐다. 풀이 죽은 그는 자신의 이론을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에드워즈 데밍, 김봉균 외 옮김, 『품질 석학, 데밍박사의 경쟁으로부터의 탈출』, 한국표준협회컨설팅 2004, 120


 

일단 이론을 가지고 있어야 그 이론의 부적합성과 개정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고, 새로운 이론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론은 세상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방식입니다. 이론이 없으면 학습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경영자들이 성공사례를 배우고 익히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경영자들은 자신만의 이론을 가지고 세상을 보아야 하며, 그 이론이 부적합할 경우에는 그것을 스스로 수정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참값(true value)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강의장에 몇 명이 있다는 숫자는 참값이 아닙니다. 누구를 셀 것인가에 따라 다양한 숫자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남자만 셀 것인가 아니면 여자만 셀 것인가? 결혼한 사람만 셀 것인가 아니면 미혼자만 셀 것인가? 임신한 사람만 셀 것인가 아니면 태아까지 셀 것인가?

 

또한 어떤 관찰도 객관적 사실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건은 사람이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고 관찰되기 때문입니다. 촛불시위 사태, 용산참사, 국회의원 보궐선거 결과 등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사태를 관찰했지만, 그 사태의 해석은 구구각색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관점에서만 사태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 다른 사람이 본 것을 보지 않았거나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관찰할 것인지를 사전에 합의해야 합니다. 그 합의를 위해서 구성원들에게는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가 필요합니다. 조작적 정의에 대해서는 추후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한 예를 들면, 내가 인간을 영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실존적 존재라고 경영학적으로 정의한 것도 조작적 정의에 속합니다.

 

경영자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지식이론을 갖는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철학적 입장을 정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경영자의 경영철학의 정립이 경영행위보다 중요하고 선결되어야 합니다.

 

심리학

 

넷째, 심리학입니다. 심리학의 유용성은 인간은 누구나 다르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데 있습니다. 인간은 똑 같은 경우가 없습니다. 어떤 패턴이 유사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동일할 수는 없습니다. 일하는 동기도 다르고, 학습하는 방법과 속도도 다릅니다. 따라서 경영자는 이 차이점을 심리학을 통해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의 능력과 성향을 적절히 조절하여 최적화함으로써 높은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에 대한 이해의 결여로 노동에 대한 과잉정당화(overjustification) 현상이 일어나곤 합니다. 결국에는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e)를 왜곡하고 노동의 즐거움을 앗아갑니다. 과잉정당화란, 보상이 없이도 기쁨으로 일하려고 하는 근로자에게 노동의 대가로 추가보상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청소하려고 하는데, 부모가 청소를 깨끗이 하면 용돈을 올려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오히려 자발적으로 청소하려는 내재적 동기가 변질되어 용돈을 위해 일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월 스트리트의 경영진들은 과잉정당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에게 주는 과도한  보상은 일에 대한 순수한 내재적 동기를 왜곡합니다. 그들에게는 도덕적 의무감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월 스트리트의 보상체계는 오직 보상을 위해 일하게 만들고 있을 뿐입니다.

 

학생들과 학교에 점수를 매겨서 서로 경쟁하도록 하는 경우에도 역시 심리학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점수에 따라 등급화하거나 서열화하는 경우에는 점수를 높이는 데만 집착하게 만듦으로써 배움의 즐거움을 상실케 합니다. 직장에서도 평가결과에 따른 등급화 또는 서열화와 그에 따른 보상은 일에 대한 즐거움과 창의력을 감퇴시킵니다.

그러므로 더 높은 성과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기 원한다면, 기업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성과관리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데밍의 이러한 사상은 교육학자 알피 콘(Alfie Kohn, 1947~)과 스탠포드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교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다룰 예정입니다.)


보상이 인간의 정신을 왜곡하는 현상에 대하여

2009/04/09 미국사회의 시스템화된 탐욕이 드러나다

2009/02/27 돈은 인간의 정신을 왜곡한다 


 


데밍의 사상에서 경영에 관한 심오한 지식은 인류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특히 일본인들은 데밍의 사상을 아낌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무에 적용함으로써 탁월한 품질을 만들어냈습니다. 일본인들의 품질에 대한 집착과 그 정신은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고, 그 결과 전후 잿더미만 남은 조그마한 섬나라가 30여년만에 세계 초일류 국가를 건설했습니다.

 

미국인들은 나중에서야 부랴부랴 데밍의 사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미국인들은 데밍의 사상이 자신들의 토양에는 맞지 않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심오한 지식"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그들은 당근을 높이 내걸고 그걸 따먹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도록 밀어붙이는 약육강식의 방법이 역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미국의 상징 월 스트리트의 정신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미국식 당근 내걸기 전략을 버리고, 데밍의 경영에 관한 심오한 지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