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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이야기/마음 이야기

경영이란 무엇인가(13)_성과(performance)와 평가(appraisal)

조직은 성과를 내기 위해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절차로서 제도화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때 제도화의 지향점은 성과입니다. 그래서 성과론이 고성과조직(High Performance Organization)의 핵심을 이룹니다. 매 회계연도에 맞추어 성과목표를 설정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은 그림에서 보듯이 성과책임과 연간사업계획입니다.

 

High Performance Organization

 

연간사업계획이 필요 없다고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미세한 것까지 미주알고주알 언급하는 연간사업계획의 폐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직의 의지의 표현인 사업계획(business plan)은 어떤 경우에도 필요합니다. 사업계획을 세울 것인가 말 것인가의 논쟁은 사업계획이 구성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업계획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은 결코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계획은 계획일 뿐입니다. 계획이 의미를 갖는 것은 계획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구체적 지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부산에 가려는 목표를 세웠을 경우(, 부산에 도착하는 것을 성과라고 정의했을 경우), 계획이란 바로 언제 어떻게 갈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므로, 상황에 따라서는 매우 다양한 수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과목표는, 맡은 직무의 성과책임과 조직의 전략에서 구체화된 연간사업계획을 바탕으로, 설정되어야 합니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과목표는 타율적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조직구성원의 자율성에 맡겨 두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모든 조직구성원은 시간, 예산, 인원수 등을 포함한 연간사업계획에 따라 자신이 맡은 직무의 성과책임을 고려하여 스스로 성과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성과책임이 부산에 도착하는 것이라면, 성과목표는 언제까지 대전에 도착하고, 다시 언제까지 대구에 도착할 것인지를 정의한 것입니다. 물론 이를 위한 수단과 방법도 정의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KTX로 갈 것인지, 자전거로 갈 것인지 등과 같은 것 말입니다.
 
이렇게 성과목표가 구체화된다는 것이 곧 계량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매출액, 영업이익률, 자산운용수익률, 시장점유율 등과 같이 계량화가 가능한 것들은 계량화할 수 있겠지만, 불가능한 것을 굳이 계량화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조직의 성장과 발전에 있어서 계량화되는 것보다 계량화되지 않는 정성적인 것들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과론에서 가장 첨예하게 논쟁이 되는 분야는 성과목표 설정보다는 성과평가에서 발생합니다. 성과를 어떻게 평가해야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평가만큼 논란이 많은 이슈도 없습니다. 평가가 내용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평가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평가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습니다. 평가의 방법과 기술적 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 이전에 평가란 무엇인가를 정의해야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평가를 보상결정을 위한 수단 또는 도구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고, 관리자의 권력행사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평가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평가는 과거의 잘잘못을 가려서 그 원인을 캐는 것도 아니고, 그 결과에 따라 보상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내가 실무에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도 바로 이 점입니다. 직원들과 일할 때 가장 크게 실패했다면 아마도 평가에 대한 오해를 풀어내지 못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평가는 결코 보상결정 수단이 아닙니다. 평가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반성하고 전망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대부분의 조직은 이 절호의 기회를 보상에 대한 이전투구의 장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조직구성원은 평가를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한 두뇌게임으로 생각합니다. 부하는 자신의 패를 상사에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상사 또한 평가를 부하관리의 좋은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부하와 상사 간의 팽팽한 신경전을 벌입니다.

또한 평가는 기득권에 봉사하는 도구로 기능합니다. 나는 평가의 개념에서 이 도구적 성격을 빼버리는 데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인사고과자는 아무도 자신의 평가권한을 놓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이란 상대방을 보상하고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하는 것인데, 멍청하게도 이 권한을 축소하거나 없애려고 했습니다. 나는 회사의 간부들을 링컨이나 간디와 같은 위대한 인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교육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학생들을 평가하는 목적을, 시험성적으로 잘잘못을 매기는 것이고, 그에 따라 서로 경쟁해서 더 잘하도록 동기부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식의 평가이해야말로 인류를 시기와 질투, 불안과 공포, 폭력과 절망으로 안내하는 교묘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일선 학교 교장들에게 더욱 많은 권한을 준다고 정부에서 발표했습니다. 교장에게 감독권한을 더욱 강화해주면, 과연 교사들의 교육행위의 질적 수준이 올라갈까요? 앞으로 교사들은 아이들에게는 관심이 더욱 멀어질 것이고 교장의 얼굴에 더 신경 쓰게 되겠지요. 교육계의 평가방식에 대한 얘기는 추후에 다시 할 예정임)

 

평가제도는 기득권의 권력확보 또는 권력유지에 유리하도록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평가제도의 혁신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조직 전체의 잠재력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권력을 포기하기 전에는 불가능합니다. 누가 권력의 단맛을 스스로 놓으려 하겠는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아래의 자리로 내려설 때, 그리고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섬길 때 비로소 변화와 혁신의 바탕이 마련됩니다.

 

평가(appraisal)는 현 상황을 진실하게 파악하고 미래를 향하여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인지를 살펴보는 피드퍼워드(feedforward)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평가의 본질입니다. 평가자가 평가대상자의 미래를 진심으로 염려하고 장래에 희망의 빛과 애정의 비단길을 깔아줄 때 평가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평가는 연결되어 있음(connectedness)의 재확인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원인을 밝히고자 한다면, 평가대상자는 심리적 방어메커니즘을 발동하여, 과거의 진실을 밝힐 수 없게 됩니다. 설사, 그 원인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한 부하의 심리적 상처는 지울 수 없게 됩니다. 또한,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면 뇌세포로 하여금 과거의 배선망(neural wiring)을 더욱 굳어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과거와 단절하려면 과거를 건드리지 말고, 망각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평가란 과거와 단절된 현 상황을 사실 그대로 인식하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의지의 표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성과평가 결과가 보상으로 연결되는 것이 좋으냐 나쁘냐의 논쟁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보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입장입니다. 연결이 안 되면, 결과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아무런 메시지를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강력하게 연결될 경우에는 많은 부작용이 초래됩니다. 보상은 인간의 정신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우수한 성과를 낸 유능한 사람에 대한 보상은 시골 초등학교의 운동회에서 받았던 수준의 표창으로 족합니다. 보상은 다만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이 성과에 따른 보상의 차이가 크면 어떻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