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기록/에세이

역량(competence, 力量)이란 무엇인가

역량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아주 좋은 현상입니다. 역량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부패와 부조리가 상당부분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량개념에 대해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역량을 단순히 바람직한 행동패턴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것을 상업화된 역량개념(commercialized competency concept)이라고 부릅니다. 역량개념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 없이 컨설턴트를 자처하는 몇몇 상인들이 기존의 지식에다 컴피턴시라는 그럴 듯한 포장지를 입혀서 정보가 거의 없는 고객들에게 마구 팔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객들은 뭐가뭔지 구별해낼 재간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적당히 넘어가고 맙니다. 내가 아는 한,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량과 관련된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효과가 없는 처방약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량이라는 약이 계속 팔리는 이유는 고객들이 역량이라는 약을 먹지 않으면 혹시 시대에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고, 치열한 인재전쟁 시대에 인사담당자들이 뭔가를 하긴 해야겠는데 역량이라는 게 있다니까 새로운 처방처럼 보여서 깊은 공부도 없이 덥썩덥썩 받아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양에서 개발된 개념들이 우리나라에 수입될 때, 약간 비틀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 개념이 생성된 문화적 배경 내지 컨텍스트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고, 그것으로 당장 효과를 보려는 지나친 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적나라한 예가 바로 기독교 신앙입니다. 서구적인 입장에서의 기독교 신앙과 한국적 기독교 신앙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가 한국에 전래되면서 한반도의 토착신앙인 샤마니즘에 영향을 받아 비틀어졌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의 기독교 신앙이 기복적이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배의 형식은 서양의 것과 거의 비슷하지만, 예배하는 마음은 철저히 기복적입니다. 보이는 것을 흉내냄으로써 즉각적인 효험을 보려고 할 뿐,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그 근본을 배우려는 인내심과 고통은 회피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역량의 개념이 비틀리게 된 이유도 이와 비슷합니다. 시중에 유포되고 있는 역량의 개념들은 기독교 예배형식과 마찬가지로 역량개념, 역량모델, 역량평가, 역량관리 등과 같은 용어의 형식만 비슷할 뿐, 실제로 그 내용은 매우 다릅니다.

그렇다면 역량이란 무엇인가? 나아가 역량은 행동(behavior) 또는 행위(action)와는 어떻게 다른가? 기존에 쓰던 용어인 능력(ability)이나 지능(I.Q)와는 또 어떻게 다른가?

이런 의문에 명확히 답할 수 있어야 역량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이해의 실마리가 풀립니다. 그래서 우선 역량이란 용어인 원어인 competency 또는 competence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컴피트한다(compete)"는 동사는 서로 경쟁한다는 것이고, "컴피턴트하다(competent)"는 형용사는 어떤 상황에 적합하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두 사람 이상이 서로 경쟁하여 어떤 상황에 누가 더 적합한지를 나타낸다는 의미입니다. 행동이나 능력이라는 말에는 서로 경쟁하여 어느 하나가 가장 잘 부합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지만, 역량이란 용어는 특정한 직무 또는 직위에 부합하려는 특성(characteristics)과 관련된 개념이다. 

따라서 역량은 행동이 아니며 행동패턴은 더더욱 아닙니다. 역량이 어떤 행동이나 행동패턴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같은 역량요소라 하더라도 특정한 행동이나 행동패턴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일관성을 갖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리더십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이 동일한 행동이나 행동패턴을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명백합니다. 링컨, 간디, 알렉산더, 징기스칸, 이순신은 리더십 역량이 뛰어나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그 행동과 행동패턴은 일관성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달랐습니다. 행동이나 행동패턴이 같다고 해서 같은 역량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역량을 개발하고자 할 때 바람직한 행동패턴을 훈련시켜서 될 일이 아닙니다.

또한 역량은 단순히 능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능력이라는 용어만큼 그 활용범위가 넓은 것이 없습니다. 능력은 그야말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에너지의 총칭을 말합니다. 지극히 통속적이고 일반적인 용어입니다. 이런 용어로는 특정한 직무에 부합하는 속성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역량, 컴피턴시(competency)라는 용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 이제 역량이란 무엇인지 설명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역량이란 한마디로 "우수한 성과를 창출하게 하는 내적 속성"을 말합니다. 이러한 정의에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조건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첫째, 역량은 우수한 성과와 관련되어야 합니다. 역량이 있는 사람이라면 평범한 사람의 평균적인 성과보다 차별적으로 더 높은 성과를 창출해야 합니다.

둘째, 어떤 사람이 평범한 성과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내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역량은 그 우수한 성과를 창출하게 하는 원인을 가리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역량은 외부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에 숨어있는 속성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역량개념을 현실에서 잘 활용하려면, 인간의 행동이 유발되는 인지적 과정(cognitive process)을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개념적 틀(conceptual framework)과 과학적 근거(scientific evidence)가 필요합니다.

과학적 근거는 특히 영미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증적 분석에 근거한 수많은 주장들이 영미학계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스펜서의 연구결과가 그 대표적인 저작입니다(Lyle M. Spencer/Signe M. Spencer, Competence at Work, John Wiley 1993). 나는 항상 실증적 분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념적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증분석이 지지해 주면 더욱 좋겠지만, 실증분석이 지지한다고 해서 반드시 옳다고 볼 수도 없는 현상은 우리 인간사에 수도 없이 많기 때문에, 개념적 틀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개념적 틀도 없이 아무렇게나 역량모델을 만들고 역량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개념적 틀이 중요한 것은 인간의 행동이 유발되는 과정을 선명히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이것이 인간의 상상력과 사고력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것을 통해서 역량의 배치구조를 이해하여 역량개발을 위해 더욱 노력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역량요소의 배치구조가 곧 역량모델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