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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록/에세이

철학으로 일군 자본주의, 워렌 버핏

월 스트리트에서 큰(富)를 이룬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월 스트리트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워렌 버핏의 성공은 연구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나는 워렌 버핏의 성공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리에 근거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자신의 일을 즐겼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원리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 그 자체가 곧 일하게 하는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하여 그것을 일관되게 실천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일을 항상 즐거워했기 때문에 그 일을 평생토록 해왔고, 그래서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는 점은 <진정한 자본가, 워렌 버핏>에서 다루었으므로, 이번에는 두 번째 원리인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하여 일관되게 실천해 왔다는 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워렌 버핏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수많은 문헌들이 시중에 나와 있지만, 정작 워렌 버핏은 자신의 사상을 책으로 펴낸 적이 없습니다. 매년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게 보내는 메모를 통해 그의 사상을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잘 알다시피, 철학이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근원적 사유를 말합니다. 이러한 근원적 사유의 틀이 형성되지 않으면, 사물이나 현상의 실재와 본질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쉽게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하고, 때로는 객관적 정보가 아닌 왜곡된 아첨에 우쭐해지기도 하며, 약간의 수익으로 천하를 얻은 것처럼 흥분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철학의 정립이 없이는 일관된 삶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미성숙한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 일관성을 갖지 못하는 것도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삶의 철학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버핏의 철학

그렇다면, 도대체 워렌 버핏이 정립한 철학은 무엇이며, 그것이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가? 이점에 대해서는 워렌 버핏 자신이 직접 명시적으로 이것이 내 철학이다라고 밝힌 것이 없기 때문에 여러 문헌과 언론에서 전해지는 것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빛나는 철학의 대가들도 이것이 내 철학이라고 단순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그가 한 말이나 에세이, 그리고 남긴 저술을 통해 우리가 짐작하고 있을 뿐이죠. 그런 점에서 워렌 버핏의 철학을 여기서 논하는 것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워렌 버핏이 정립한 철학은 기업의 존재목적, 즉 기업은 주주의 이익추구를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라는 수단을 활용하여 이익을 보다 많이 취하기 위해 자신의 돈(자본)을 투자하는 것이 당연하지 그게 무슨 철학이란 말인가.

철학이란 원래 당연한 것이 무엇인지 따져서, 그 당연한 것을 확고하게 만들고, 그 기반 위에서 활동하려는 노력입니다. 우리나라 자본주의는 철학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기반에서 기업이론 또는 경영이론을 구성하고, 이것을 실천할 때,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당연한 것이 기업경영의 현장에서는 당연하게 운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워렌 버핏이 크게 분노했듯이 경영자들에게 부여하는 스톡옵션으로 천문학적인 보수를 받는 예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스톡옵션 자체가 잘못된 발상이라거나 폐해를 가져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스톡옵션이 경영자들의 장기적인 성과창출의 인센티브 역할을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성과에 비해 불공정하리만큼 많은 보상이 주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국사회에서 유행하던 그 동안의 스톡옵션 관행이 어떻게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지 여기서 상세히 논의하지 않겠지만, 워렌 버핏의 계산법에 의하면 그런 관행은 무능한 경영자들의 땅 짚고 헤엄치기나 다를 바 없는 것이라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월 스트리트의 일반적인 관행이 그의 철학적 사유의 틀에서 볼 때 말도 안 되는 짓거리로 보였던 것입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기업에서 주주의 이익을 최대화 하기 위한 자원은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재무적 자원(financial resource)과 인적 자원(human resource)입니다. 이 두 가지 자원에 대해서 버핏이 어떤 철학을 지속적으로 지켜왔는지를 보겠습니다.

재무적 자원에 대한 철학

재무적 자원에 대한 그의 근원적 사유의 틀을 봅시다. 재무적 자원은 재무제표에 의해 계산됩니다. 자산은 자본과 부채를 합한 것이죠. 즉 자본은 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재무적 자원의 원천(ultimate source)은 주주들이 투자한 자본(capital)입니다. 자산이 아니라 자본이 자본주의 운영메커니즘의 핵심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워렌 버핏은 이 점을 아주 명확히 한 것이 다른 투자자나 경영자들과 다르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자산배분(asset allocation)과 자본배분(capital allocation)의 구분을 매우 모호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주주와 경영자간에 이견이 발생하며, 때로는 주주의 몫인지 경영자의 몫인지 불분명해진다는 점을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이것은 복잡한 수학적 계산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버핏은 자신이 투자한 자본이 자본비용(capital cost)을 능가함으로써 주주들에게 평균이상의 수익을 줄 수 있을 때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입니다. 이 말은 곧 투자한 자본이 투자된 기업의 자본계정의 일부를 구성함으로써 그 기업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주는 그 기업이 수행하는 사업을 경영자와 함께 직접 꾸려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인식 하에서는 자본을 어떤 사업에 집중적으로 장기간 투자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장기투자가 좋으냐 또는 단기투자가 좋으냐의 논의는 사실상 자본주의 사회의 운영 메커니즘에 대한 인식론적 배경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주식을 샀다는 말은 그 회사의 자본계정에 투자했다는 뜻이므로 그 회사의 주인으로서 경영자와 함께 사업을 장기간 운영하는 사람이고, 단기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돈 놓고 돈 먹는 카지노 놀이를 하는 것입니다. 워렌 버핏이 어느 기업에 투자했다는 표현하지 않고, 어느 기업을 인수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어 본 것이죠. 말하자면, 사업에 투자한 것이지 주식에 투자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러한 원칙을 지켜나가는 데에, 요즘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치는 복잡한 금융공학적 자본시장 이론들이 과연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고 말합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재무담당자들 중에 상당수가 기묘한 금융이론을 내세우며 그럴 듯하게 떠들고 있지만, 정작 가장 기초적인 자본배분의 원리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란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주 중심의 자본주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워렌 버핏은 사회적 통찰력을 통해 돈(자본)의 근원을 이해하고, 자산을 운용한 것이 아니라 자본을 배분함으로써 주인의식을 가지고 기업을 경영해 왔습니다. 그는 주식투자자가 아니라 경영자입니다. 워렌 버핏의 자본주의에 대한 이러한 인식체계가 그의 자본을 장기간에 걸쳐 엄청난 부로 축적 시켜 왔습니다. 작은 부는 노력에 의해 가능하지만, 큰 부는 철학이 만들어 냅니다.

인적 자원에 대한 철학

워렌 버핏이 정립한 자본배분의 철학에 이어 두 번째 철학은 인적자원의 배분에 관한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사람은 기업 내에서 자원의 성격을 갖기도 하지만, 기업의 궁극적 목적이기도 합니다. 기업의 현실에서 보면, 사람을 한편으로는 성과창출의 자원으로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실존적으로 평등한 인간으로서 다루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워렌 버핏은 경영자로서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을 아주 잘 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인수대상으로 고려하는 기업은 단순히 기업의 재무적 전망뿐만 아니라, 경영자가 지속적으로 실천해 왔던 활동을 통해 그의 가치관 내지 윤리적 기준을 확인합니다. 워렌 버핏 자신이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경영하는 일 자체를 즐기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에게 완벽한 투명성을 제공하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그런 후에 그 기업을 인수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거의 완벽하게 위임합니다. 워렌 버핏이 자회사의 경영진에게 간섭해야 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자신은 인재파견업을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들의 길을 막지 않는 것뿐입니다. 만약 내가 하는 일이 골프 팀을 관리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잭 니클라우스나 아놀드 파머가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나에게서 스윙하는 법에 대해 지도를 받을 필요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워렌 버핏은 설사 자신의 견해와 경영진의 견해가 다를 때라도, 그래서 자신의 견해가 나중에 회사를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라도 위법적이거나 비도덕적이지 않은 한 그들의 견해를 존중해 줍니다. 그래서 그를 오랫동안 관찰한 기자의 말에 의하면, 워렌은 인내심의 천재라고까지 말합니다.

많은 경영자들이 무능한 부하들을 선발해 놓고는 끊임없이 그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가르치려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항상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택시를 탄 승객이 운전기사에게 목적지는 제대로 말해 주지 않은 채 저기 담배가게 앞에서 좌회전 하시고, 오른쪽 학교 앞에서는 30km로 가시고, 다음 신호에서 우회전하시고, ……”라고 한다면, 아마도 운전기사는 제대로 운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대로 믿을만한, 때로는 경탄할만한 운전기사가 아니면 아예 고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워렌 버핏의 인사철학입니다. 그래서 수십 개의 자회사와 수십만 명의 임직원들을 거느리고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에는 단 12명이 일하고 있을 뿐입니다. 워렌 버핏은 광고계의 천재였던 데이비드 오길비의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보다 작은 사람을 고용하면 우리는 난쟁이 회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큰 사람을 고용한다면 우리는 거인회사가 될 것입니다. 

 워렌 버핏이 자회사에서 보내온 수많은 보고서를 보면서도 오후에는 낮잠을 잘 시간이 남는다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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