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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록/에세이

'선망' 독일의 민낯

'선망' 독일의 민낯


한국일보 2014-12-27


기술력 뛰어난 세계적 브랜드… 노동시장 개혁 모델

타협·상생의 정치 '연정'… 장밋빛만 아닌 통일

독일은 한국의 모델이다. 정치인, 정책입안자, 시민운동가, 기업가는 물론 가정주부, 샐러리맨에서 학생들에게도 독일과 독일제(製)는 각자의 위치에서 배우고 따르고 소유하고 싶은 대표적인 나라다. 우리 사회 7가지 독일환상을 추려 그 실상을 짚었다.


① 고급 외제차는 곧 독일차

30대 중반의 직장인 A씨는 올 여름 약 1억 원짜리인 BMW ‘M3’를 샀다. 생애 처음 수입차를 타는 그는 “성능 좋은 차로 독일차가 제격이라 생각했다”며 “값이 부담되긴 했지만 그 만큼 값어치가 있다”고 했다. A씨처럼 ‘독일차= 실망시키지 않는 고급차’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독일차는 한국에서 매년 판매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 1~10월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등 독일 브랜드가 전체 수입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0.5%. 일본차 11%대, 미국차의 7%대에 비하면 홀로 질주 중이다. 독일차들이 국내 소비자들의 눈 높이를 높이면서 한국 시장을 ‘안방’처럼 여기던 현대ㆍ기아차는 올해 한국 내수 시장 점유율 70% 선이 무너졌다. 수입차 하면 곧 독일차라는 인식이 강한 이유는 프리미엄급이란 탄탄한 브랜드 인지도와 기술력이 꼽힌다. 국내 디젤차 붐도 독일차에서 비롯돼, 성능이 아직 뒤진 국내 업체들이 진땀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독일차는 최근 서비스 등에서 소비자 불만이 급상승한 것도 사실이다. BMW의 경우 올 3분기까지 리콜대상 차종 수가 98종으로 전년대비 92%나 증가했다. 특히 서비스에서 고급이미지와 거리가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부품의 경우 미국 독일 등지보다 최고 2.5배나 높게 공급하는 등 AS 관련 비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때문에 대당 보험료가 현대ㆍ기아차에 비해 4배 가량 높아졌다. 하지만 BMW가 최근에서야 홈페이지에 한국어로 부품 가격을 공개하기 시작했을 뿐 다른 독일 브랜드는 비슷한 계획도 없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선호도가 워낙 높다 보니 4개 독일 브랜드 간 경쟁도 치열하다”며 “문제는 비싼 부품비, 수리 때 공임 등 관리비를 높여 수익을 얻는 식으로 영업을 하는 경향”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8층 주방용품 코너에 독일브랜드 실리트(Silit) 냄비가 진열돼 있다. 휘슬러 헨켈 등 독일제는 혼수제품으로 인기가 높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②주부 로망은 ‘메이드 인 저머니’

휘슬러, 밀레, 헨켈, 지멘스, 브라운, 실리트, WMF…. 한국 주부들이 선호하는 독일제 생활ㆍ주방용품 브랜드다. 축적된 기술력과 세련된 디자인 덕분에 세계적인 브랜드 반열에 올라 있다. 국내에선 주방 인테리어가 필수인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들 제품을 선호하는 층이 두터워지고 있다. 혼수품에 쌍둥이칼이라는 애칭이 있는 헨켈 제품이 빠지면 섭섭할 정도다. 한 독일 유학파 교수는 밀레 세탁기를 20년째 쓴다며 독일 예찬론자가 됐다. 독일 현지에선 우유 기저기 약품 등까지 사재기하는 한국인에게 1인당 판매개수를 제한하는 곳도 있다. 해외 배송업체 몰테일에 따르면 독일 배송은 올 9월 현재 전년 동기 대비 4.4배 증가했고, 주요 배송 제품은 ▦식품ㆍ커피ㆍ유제품(35.1%) ▦생활ㆍ식기ㆍ주방용품(20.3%) ▦생활가전(13%) 등이 차지했다. 이쯤 되면 21세기 한국인의 주방과 생활은 독일 제품시대가 개막된 것과 다름없다. 문제는 이들 제품이 현지에 비해 가격편차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지멘스 전기레인지(ET675FN17E)는 국내 판매가가 240만원 정도인데 유럽 현지에서는 400유로대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관세와 배송비를 감안해도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하지만 명성과 달리 품질에서 국산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디지털로 재해석한 라이카 사진기의 인기 모델 M시리즈는 평범한 성능에 1,000만원을 호가한다. 임양환 상명대 사진학과 교수는 “100년의 역사가 보여주는 라이카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선호되지만 사진상으로는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독일 최고 소비자기관 스티바(STIWA)가 발행하는 소비자잡지 테스트(TEST)지가 2011년 10월 발표한 결과에서도 밀레 세탁기와 삼성 드럼세탁기 종합 평점은 같았으나(1.9점) 가격 차는 1.6배 이상 났다. 최근 드럼세탁기, 정수기, 로봇청소기 등 다양한 가전제품 평가를 진행중인 한국소비자원의 분석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

③키다리 아저씨, 독일

1960년대부터 한국인에게 독일은 ‘키다리 아저씨’ 이미지였다. 최근 인기몰이 중인 영화 ‘국제시장’에 나오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는 이런 한독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독일은 당시 세계 최빈국 한국에게 돈을 빌려주고, 돈 벌 기회를 준 고마운 나라였다. 63년과 66년 광부 8,000여명과 간호사 1만여명이 차례로 독일로 건너가, 75년까지 송금한 1억153만달러는 경제성장에 톡톡히 기여했다. 독일은 한국 위기상황에서는 한국 편에 섰다. 97년 외환위기 때는 투자사절단을 파견, 경제회복을 지원했고, 당시 외환은행은 코메르츠은행의 투자로 기사회생했다. 지난 3월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을 만난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은 진정한 친구”라고 말한 것도 든든한 조력자의 이미지로 각인된 독일을 나타낸다. 그러나 파독 광부 간호사만 해도 당시 인력부족에 시달린 독일의 필요가 더 컸다. 한국의 키다리 아저씨 이미지와 달리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에서 독일은 스크루지 평가를 받는다. 2012년 유럽 재정위기로 그리스, 포르투갈 등이 궁지에 몰렸을 때 여력이 있던 독일이 나 몰라라 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대규모 무역흑자를 내는 독일 경제정책은 타국 경제를 궁핍하게 만들면서 자국 경제를 회복시키는 수탈적 경제모델로 불린다. 유로스탯(Euro Stat)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은 유로존 교역에서만 446억유로, 올해 9월 현재 세계교역으로 1,161억유로의 흑자를 냈다. 독일의 균형재정 정책은 과거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악몽 때문이다. 1차대전 이후 물가상승과 경제불황으로 낙담한 독일인이 나치정권을 등장시켰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채희율 경기대 교수는 “국내총생산(GDP)의 0.35%가 넘는 신규 채무를 헌법으로 금지시킬 만큼 과거 교훈을 되새기고 있다”고 전했다.

박정희 독일 방문. 한국일보 자료사진

④독일바라기, 한국정책

한국 정부는 '독일 바라기'였다. 어느 정부든 독일 정책과 제도를 대책, 대안으로 삼고자 한다. 무분별할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 따라하기가 지금도 진행된다. 22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는 노동시장 개혁을 신년 최우선 경제정책으로 제시했는데, 그 모델이 독일 하르츠 개혁이다.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독일은 2003년 하르츠 개혁을 통해 5인이하 소기업까지 해고를 용이케 하고, 실업급여 기간을 32개월에서 12개월로 줄였다. 이후 2005년 11.3%였던 실업률이 2013년 5.3%까지 줄며 취업이 촉진됐다. 그러나 사회보장과 교육시스템이 받쳐주는 독일과, 해고가 곧 낭떠러지 밖으로 밀리는 것을 의미하는 한국에서의 실업은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상만 한양대 교수는 “정부가 독일과 다른 우리의 정서와 맥락을 고려한 고민이 없다는 게 아쉽다”고 했다. 2009년 이명박(MB) 정부 때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를 과학도시를 만들자며 독일 드레스덴을 모델로 삼아 논란을 일으켰다. 단순히 과학을 강조하기 위해 인공도시 세종시를 역사와 유산을 가진 드레스덴과 비교한 것은 무리란 지적이 많았다. MB정부 때 도입된 마이스터고교 역시 강소기업에서 활약하는 독일의 마이스터를 표방해 출범했다. 하지만 한국의 마이스터고는 독일의 마이스터와 개념과 취지에서 멀다는 평이 많다. 더구나 최근 독일은 ‘융합’을 위해 기술과 학문을 병행시키며 교육제도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김평희 코트라 글로벌원장은 “입시제도, 고교교육, 산업 등 복합적으로 얽힌 사안들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⑤정치권의 독일사랑, 연정

정치권은 새로운 정부와 정당의 모델을 독일에서 찾으려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연정(聯政)이다. 김대중 정부가 거국내각 이름으로 이를 추구했고, 노무현 정부는 한나라당에게 대연정을 제안했다. 최근 의원시절 독일연구모임을 이끌던 남경필 경기지사가 독일식 연정을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됐다.

라인강의 기적과 복지국가 건설, 불가능할 것 같은 경제와 복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독일의 이면에 연정이 있다. 독일 정치는 연정의 역사이기도 하다. 2차 대전 이후 현재까지 한 개 정당이 권력을 독점한 적이 없고, 항상 2개 이상 정당이 연합해 정부를 구성했다. 독일 전문가인 김택환 경기대 교수는 “패거리를 만들어 나머지 절대 다수를 압박한 정치체제인 나치즘을 경험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정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의회 주요 정당들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연정은 여야 거대 정당 간 연합을 말하는데 독일에서 지금까지 3번 있었다. 첫 대연정은 1966년에 출범했는데, 65년 전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이 계기였다. 기민당 출신 쿠르트 게오르그 키싱어 총리는 대안으로 떠오른 중도좌파 사민당과 손을 맞잡았다. 2005년과 2013년의 대연정은 동독 출신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주도했다. 이를 통해 부가세를 올리는 대신 사회보장 혜택을 축소했고,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면서 부자증세는 막았다.

독일 연정은 위기 순간마다 대척점에 선 거대 좌우 정당들이 싸우지 않고 타협했기에 가능했다. 자기 목소리만 낼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한 발씩 물러나 절충점을 찾는 타협과 상생의 정치다. 김택환 교수는 “대연정 과정에서 양당이 수개월 협상을 하고 협약을 한다”며 “4년 간 실시할 정책을 미리 정하기 때문에 싸울 이유가 없고 서로 실적으로 경쟁한다”고 말했다. 독일식 통합의 정치가 한국에서 통할지는 미지수다. 대통령 중심인 정치시스템상 연정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실험대 위를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2013년 11월 대연정으로 손을 맞잡은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오른쪽) 총리와 사민당의 지그마르 가브리엘 대표. AFP연합뉴스

⑥일본과 다른 과거사 청산모델

1970년 2차 대전 이후 폴란드를 처음 방문한 빌리 브란트 옛 서독 총리가 무릎을 꿇었다. 나치에 목숨을 빼앗긴 유대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였다. 한참 동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그의 참회는 전범국가 독일에 대한 세계인의 눈초리를 바꿔놓았다.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국인에게 이런 독일은 가장 모범적인 과거 청산 국가다.

툭하면 전쟁범죄와 식민지배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과 극명하게 대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종전 직후 나치청산은 연합국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 독일인 손으로 이뤄진 나치청산은 더디기만 했다. 초토화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게 급하니 과거사 문제는 덮어두자는 게 일반 정서였다. 50년대까지 나치협력 관료와 군인들이 복귀하면서 ‘재(再) 나치화’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나치세대가 물러나고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하는 60년대 들어서야 과거청산 논의는 물꼬를 텄다.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공론화도 61년 학살 책임자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정부에 잡혀 재판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독일의 과거사 청산은 주로 사법적 처벌을 통해 이뤄졌다. 79년 나치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애 단죄한 게 단적인 예다. 이 법이 3번 유예될 만큼 그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앞서 가벼운 죄에 사실상 사면조치를 단행, 나치 부역자들의 혐의를 벗겨줬기에 가능했다. 대신 나치를 찬양하거나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일은 위법 처벌한다. 나치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 반면교사로 삼도록 하고, 역사교육을 통해 어두운 과거도 숨김없이 가르친다. 이를 통해 80년대부터 독일은 과거 청산 모범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⑦부러운 독일통일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한국에게 통일된 독일은 살아 있는 모델이다. 통일은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동방정책이 밑거름이었다. 그는 지속적인 상호교류정책을 펴면서 동독에 손을 내밀었다. 꾸준한 준비를 한 덕분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통일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통일이 됐다고 옛 동ㆍ서독 갈등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동독 출신 앙겔라 메르켈이 총리로 있으나 주민들은 여전히 2등시민 취급을 받으며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고 있다. 동독 지역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에어푸르트 같은 주요 도시를 제외하면 도로, 전기, 통신 등 사회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 아직 많다. 동서독 간 경제력 격차에 따른 상대적 불평등 문제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동독 1인당 평균소득(2만6,502유로)은 서독(3만2,007유로)의 83% 수준이다. 2014년 독일통일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 동독은 서독 GDP의 61%까지 따라왔지만 이후 12년 동안 격차를 6%포인트 줄이는 데 그쳤다. 동독지역 경제성장은 베를린장벽 붕괴 후 첫 10년 간에 이뤄졌고 이후에는 속도가 떨어진 것이다. 이로 인한 사회통합은 여전한 숙제다. 사회불만이 네오나치, 반 이슬람 등으로 표출되고 외국인노동자와 이민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등 혐오범죄까지 잇따르고 있다. 최근 드레스덴을 중심으로 최대 규모의 반이슬람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3년 전 독일에서 공부한 한 유학생은 “동독은 네오나치가 기승을 부려 아시아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며 “한번은 동베를린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친구들이 다들 미쳤다고 할 정도”라고 전했다.


박상준기자 박관규기자 권영은기자 정준호기자 buttonp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