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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록/에세이

대학이란 무엇인가?

2015-04-22_대학이란 무엇인가?

 

중세에 세워져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럽대학들의 경우, 당시 제후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대학을 세웠다. 법학, 신학, 의학과 같은 학문을 중시했다. 주변의 인접 국가들과의 공정한 거래와 협정을 맺기 위해 법이 필요했고, 교회권력과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신학에 의지해야 했고, 나아가 자신의 영토 내에 거주하는 신민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의술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다녔던 독일의 기센대학교도 1600년대 초에 당시 헤센공국의 제후였던 루드비히 5(Landgraf Ludwig V. von Hessen-Darmstadt)가 세웠다. 처음에는 법학, 신학, 철학, 의학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기관이었다. 이름은 자연스럽게 루드비히스 대학교(Ludwigs-Universität)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이 대학은 히틀러 시대를 맞았다. 히틀러는 이 대학을 폐쇄하려고 했다. 대학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그러자 대학당국과 친나치성향의 교수와 학생들은 나치정부에 잘 보이기 위해 맘에 들지 않은 학자들의 책을 불태우고, 유대인 학생들을 추방하고, 박사학위를 취소하는 등의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다. 전후에는 미군의 도움을 받아 독일대학의 부흥작업에 들어갔다. 나치시대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 19세기 21년간 이 대학의 교수로 근무했던 저명한 화학자의 이름을 따서 유스투스 리비히 대학교(Justus-Liebig-Universität Gießen)라고 바꾸었다. 60년대부터 늘어나던 학생은 70년대가 되어 교수와 학생이 종전 당시에 비해 수십 배로 증가했다. 독일대학의 대부분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런 수난의 역사를 가지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대학도 그 사회의 시대정신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다. 독일 대학의 이념은 19세기 독일통일을 이룩한 프로이센의 자유로운 진보정신(liberaler Geist)에서 나온다. 프로이센의 교육장관을 맡았던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 1767~1835)가 베를린에 대학을 세우면서 오늘날 독일 대학의 전범이 되었다. 훔볼트는 국가개혁의 차원에서 대학을 세웠다. 부정부패와 권모술수로 가득 찬 세상을, 보다 이상적인 세계로 개혁할 필요가 있었다. 젊은이들을 위해 그들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학문연구와 인격도야를 위한 교육기관을 세운 것이다. 젊은이들로 하여금 경제적 환경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가장 이상적인 대학생활을 몸소 체험하게 하고, 그런 체험을 통해 얻은 사상과 철학을 졸업한 후에도 이 부패한 세상에서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용기와 신념을 갖추도록 했다.

 

이런 교육철학은 주변의 여러 나라에도 전파되었다. 그래서 아직까지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의 대학에는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대학은 돈벌이를 하는 곳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이상적 세계를 체험하도록 하는 인격도야의 장이기 때문이다. 독일 대학생들은 본인이 원하면 생활보조비를 매월 1백만 원 수준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그 중 50%는 무상지원이고 나머지는 졸업 후에 직업을 갖게 되면 장기간에 걸쳐 원금만 분할상환하면 된다.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돈이 없어서 공부 못하는 경우란 상상할 수 없다.

 

심지어 나는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유학기간 내내 독일 정부로부터 두 아이를 위한 어린이양육보조비와 월세보조비를 무상으로 지원받았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질문하곤 한다. 독일은 국가재정이 튼튼하고 돈이 많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돈이 없어서 그렇게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전후의 폐허 속에서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미국의 원조를 받으면서도 서독은 이런 제도를 시행했다. 공동체 정신이 있었기에 바로 무상교육을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상교육은 정신의 문제이지 재정의 문제가 아니다. 철학의 문제이지 돈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무상교육은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갑자기 독일을 따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스스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던 반값등록금이라도 반드시 실현하기를 바란다. 이렇게라도 시작해서 차츰 사립대학교를 국공립대학교로 전환함으로써 등록금을 전면적으로 폐지하고 무상교육체계로 나아가야 한다.

 

교육이야말로 국가백년대계일진대,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서둘러 교육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썩어빠진 사립대학들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대로 두면 제2, 3의 상지대, 수원대, 중앙대 등과 같은 참담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이런 대학을 어떻게 대학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더러운 자본의 논리로 학부모의 지갑을 털면서 학생들의 영혼을 빼앗고 있는 저 사립대학의 오너들을 보라...

 

나는 여기서 사립대학의 오너들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미래를 보라. 당신들이 대학의 온갖 비리와 불법을 통해 돈을 벌려고 아등바등할수록 점점 돈이 벌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곧 그런 세상이 올 것이다. 당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대는 투명하게 바뀔 것이다. 일부 몰지각한 인간들이 아직 버티고 있긴 하지만...





[참고 링크)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 무슨 짓을 했길래

 

박용성씨가 저지른 중앙대와 같은 중대한 사태에 직면하여, 교육부 관료들이 국사교과서 내용이나 만지작거리고, 뉴라이트니 뉴레프트니 하면서 다투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자본화, 상업화, 부패화, 비리화, 불법화인가? 사립대학들은 어디를 가도 자본의 논리로 바뀌었다.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상업화되었다. 돈 없이는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대학생들이 도대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이런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어떻게 사회를 개혁하겠는가? 


그런 점에서 나는, 독일 교육제도의 혜택을 받은 사람으로서, 교육이 우리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믿는 확신범이다. 대학은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기업이 아니다. 대학은 대학다워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훔볼트의 개혁정신을 잇는 교육개혁가가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