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직 이야기

조직이란 무엇인가(4)_조직의 목적은 고객창조인가

지난 이야기

             조직이란 무엇인가(1)_조직의 일반적 정의
             조직이란 무엇인가(2)_제1세대 경영학
             조직이란 무엇인가(3)_제2세대 경영학


조직의 성립과 지속성은 결국 고객의 지원과 충성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드러커는 조직의 목적을 고객창조에 두게 되었습니다. 고객창조를 위한 유기체가 곧 조직이라는 사상이 20세기 후반을 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심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래서 조직구성원들의 모임인 조직을 조직구성원과 다른 독립된 실체로서 다루게 되었고, 이러한 실체를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할 것인가가 조직이론가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조직이 하나의 독립된 실체로서 간주되자, 조직구성원과는 무관한 조직 자체의 생존논리가 조직구성원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이나 이성이 아니라 조직이 지배적 관념이 되어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조직을 위한 조직설계기법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조직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조직구성원들의 태도와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다양한 조직개발기법들이 줄이어 나왔습니다. (이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는 프렌치(Wendell L. French) , 『조직개발-이론과 적용』, 박영사 1997을 참조하세요.) 20세기 후반에는 심리학적인 기법들에서 조직설계이론까지 다양한 방식의 이론들이 출몰했습니다. 이러한 고객만족 또는 고객감동의 기법들은 기본적으로 고객을 창조하기 위해 조직을 끊임없이 혁신시켜 가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적 강박증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강박증은 기업의 전략 수립과 실행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 교수가 쓴 두 권의 책 『성공기업의 딜레마』와 『성장과 혁신』, 그리고 로버트 캐플란(Robert Kaplan) 교수가 쓴 일련의 저작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

 

고객만족을 향해 끊임없이 혁신해 나가는 방법,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고객을 좀더 쉽게 현혹시키거나 아니면 조직구성원을 더 쉽게 쥐어짜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안해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세기 말에 등장한 브랜드 개념(브랜드개념은 데이비드 아커(David A. Aaker), 『데이비드 아커의 브랜드경영』, 비즈니스북스 2003과 스콧 데이비스(Scott M. Davis), 『브랜드자산경영』, 거름 2001을 참조하세요.)BSC(Balanced Scorecard)나 공학적 기술을 응용한 식스 시그마(6 sigma) 기법 같은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새로운 테일러리즘이라고 생각합니다. BSC의 문제는 나중에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아서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식스 시그마는 본래 공산품의 품질관리를 위해 시작된 계량화된 공학적 기법이었는데, 이것이 요즘에는 계량화 되기 어려운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정신근로자들에게까지 적용하도록 그 범위를 넓히고 있는 실정입니다. 가장 창조적인 일에 종사하는 금융기관 직원들에게도 이 방식을 강요하여 블랙벨트니 마스터블랙벨트니 하는 자격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고객만족, 고객감동을 위해서입니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테일러리즘의 제1세대 경영학 사상이 제2세대에게도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일까요? 인간이 영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실존적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조직 자체의 논리에 따라 조직구성원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조직의 생존을 이어가려는 생각이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일까요? 드러커의 사상에 기반하고 있는 제2세대 경영학은 그래서 조직구성원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이제 21세기가 되면서 조직은 더 이상 조직구성원을 쥐어짜는 방식의 감시와 통제 메커니즘으로는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불안과 긴장 속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쥐어짜는 방식으로 경영관리가 이루어지는 조직에서는 그렇지 않은 조직에 비해서 생산성이 더 낮게 나타난다는 사실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도요타자동차였습니다. 도요타는 끝없는 자기 혁신을 통해 생산성 혁명을 이룩했습니다. 여기서 혁신의 전제는 항상 자율과 창의성이고 이것을 가능케 하는 문화적 조건이 신뢰입니다. 오늘의 도요타를 이룩하게 된 시발점은 오노 다이이치(大野耐一, 1912~1990)라는 걸출한 인물의 공로입니다. 그가 초기에 누린 자율과 창의, 그리고 상사와 부하간의 신뢰와 그것을 가능케 한 그들의 정신구조에 있습니다.

 

도요타 이외에도 내가 번역 소개한 셈코라는 회사의 성장스토리나(리카르도 세믈러(Ricardo Semler), 최동석 옮김, 『셈코스토리(The Seven-Day Weekend), 한스컨텐츠 2006 참조하세요) 미국의 에너지 기업인 키스팬의 CEO였던 로버트 카텔과 수도사였던 케니 무어의 이야기를 보면(로버트 카텔, 케니 무어, 글렌 리프킨, CEO와 성직자(The CEO and the Monk), 한스컨텐츠 2006 참조하세요), 높은 생산성에는 자율과 창의, 그리고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막스 베버 이래 공식적인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프로세스를 포괄하는 제도가 구성원의 행동을 규제한다는 사상인 제도주의적 접근은 제도적 신화(institutionalized myth)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식적인 제도 이외에 무엇이 조직에 영향을 미치며, 어떻게 미치는지를 파악하는 이론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연구들은 한결같이 구성원이 제도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중시합니다. 새로운 제도주의(new institutionalism) 학파가 생겨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이경묵, 「신제도이론 : 주요 이슈와 미래의 연구방향」, 신동엽 편집, 21세기 매니지먼트이론의 뉴패러다임』, 위즈덤하우스 2008, 94~132쪽을 참조하세요.) 이런 연구아이디어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종업원들을 공식적인 제도의 폭정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서서히 진입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