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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이야기/탐욕에 대하여

자본주의는 “악마의 맷돌”인가?

자본주의에 대한 입장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자본주의를 전복시켜야 한다고 급진적으로 생각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공산진영이 붕괴되면서 자본주의적 이상이 실현되어 역사의 종말이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자본주의를 전복시킬 수도 없으며, 오늘날 인류의 경제활동양태를 자본주의의 완성된 모습으로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적절한 수준에서 적절한 방법으로 적절히 통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적절이란 그 사회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몰상식한 수준의 고삐 풀린 자본주의는 어떤 형태로든지 반드시 적절히 통제되어야 합니다.

 

자본주의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도 운용형태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식 자본주의, 프랑스식 자본주의, 독일식 자본주의, 중국식 자본주의, 일본식 자본주의, 북구식 자본주의 등등….

 

그러나, 크게 보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사익을 거의 무제한으로 추구하도록 함으로써 사회적 성장 발전이 가능하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식 자본주의입니다. 그것은 너무 지나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므로 어느 정도는 규제함으로써 질서를 잡아야 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소위 독일식 자본주의입니다. 무제한의 사익추구를 허용하는 방식을 신자유주의적(neoliberal) 자본주의라고 부르고, 사익추구는 사회적 맥락에서 규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질서자유주의적(Ordoliberal) 자본주의라고 합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무제한적 사익(私益)추구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질서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질서자유주의는 주로 독일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주창되었습니다. 전후에는 독일 경제발전 모델로 적용되어 많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독일의 경제적 질서를 만드는 데 힘썼던 사람들은 단순히 학자들만의 공헌은 아니었습니다. 학자들의 사상을 경제적 현실에 절묘하게 응용했던 정치가들의 식견도 한 몫을 했습니다. 아데나워(Konrad Adenauer, 1876~1967) 초대 수상, 에어하르트(Ludwig Erhard, 1897~1977) 경제장관 등은 소위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 모델을 실천함으로써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전후 독일은 두 가지 점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인물도 고갈되었습니다. 유능한 인재들은 대부분 나치에 가담해서 전쟁범죄자로 낙인이 찍힌 상태였기 때문에, 국가경영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인재고갈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한가지 더 괴로운 것은 국내외적으로 비난하는 도덕성 문제였습니다. 인적 자원의 결핍과 도덕적 낭패감이라는 이중적 고통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독일은 사회적 시장경제모델을 적용함으로써 전후 20여 년 만에 두 가지 이슈를 깔끔하게 해결해냈습니다.

 

유럽인들은 두 차례의 전쟁을 치르면서, 인간의 이기심은 무한하지만, 그것을 제약해야 할 인간의 도덕성은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회가 그런 취약한 기반 위에 형성된다면, 어떤 비극이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반성이 일었습니다. 실존주의와 탈근대적(post-modern) 사상들이 근대문명의 이성적 합리화 과정에 대한 반성으로 나타났습니다. 인간의 이성은 그렇게 신뢰할만한 것이 아님을 알았던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개인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합리적 행동보다 사회적 공헌과 인간적 연합(solidarity), 그리고 약자에 대한 배려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국가운영정책을 세워 실천해왔습니다.

 

유럽의 여러 대륙국가들,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과 북구의 여러 나라들은 그 나름대로의 정치적 경제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조금씩 변형된 질서자유주의를 경제정책으로 실천해왔습니다. 어떤 나라는 성과가 좋았고, 어떤 나라는 성과가 덜 좋았던 차이가 있긴 했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험한 것은, 이런 나라들이 세월이 흐를수록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잘 버텼는데, 워낙 미국의 영향력이 강력해지니까, 버티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염려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미국은 철저하리만큼 신자유주의 사상에 경도되어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추종하는 신자유주의란, 개인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기는 행위는, 타인을 명시적으로 해코지하지 않는 한, 무제한 허용되어야 한다는 이념입니다. 오히려 욕망을 넘어선 탐욕을 바람직한 것으로 여깁니다. 미국인에게는 사회적 연대(solidarity)보다는 개인간의 계약이 더 우선하기 때문에 개인주의적 사고가 팽배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미국이 이민자들로 구성된 국가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자유로운 사익추구와 그것을 위한 기회의 평등을 지상과제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나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런 믿음은 우리를 배신했습니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가 남긴 교훈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 금융시장이 붕괴되었다는 점

둘째, 중산층이 급격히 줄어들고 양극화 되고 있다는 점

셋째, 심각한 수준의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있다는 점

 

이들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차차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자본주의 자체가 엄청난 폐해를 가져올 것으로 예견하고 경고했던 수많은 사상가들 중에서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의 견해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자본주의를 가장 강도 높게 비판했던 사람으로 칼 마르크스가 핵심이지만, 칼 폴라니의 견해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이었던 폴라니는 미국에서 1944, 그러니까 2차 대전 중에 심혈을 기울인 자신의 책 『거대한 변환』(Great Transformation, 박현수 옮김, 민음사 1991))을 발표합니다. 문장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지만, 귀중한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핵심내용은, 결코 상품화하여 거래할 수 없는 노동, 토지, 화폐를 시장에서 자유로운 거래를 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시장메커니즘은 결국 악마의 맷돌”(Satanic Mills)로 변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악마의 맷돌에 들어갈 수 없는 존재는 없습니다.

 

인간이 상품화되어 거래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에도, 인간은 자신의 노동을 노동시장에다 상품화하여 팔아야 먹고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토지는, 현재의 모든 인류와 앞으로 올 인류에게 귀속되는 것이어서 결코 상품화되어 거래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토지 또한 시장에서 자유로이 거래되고 투기의 대상이 됩니다. 화폐는 단순한 교환 또는 지불의 수단이어야 하는데, 이것을 상품화함으로써 금융시장에서 돈 놓고 돈 먹는잘못된 거래들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인간은, 시장만능을 지향하는 자본주의 제도를 통해 자기 자신과 자연을 악마의 맷돌속으로 집어 던지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특히 미국인들은 이런 일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해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라고 가르쳤습니다. 따르지 않는 경우에는 국제 금융기구를 통해 거의 강압적으로 밀어붙였습니다. (한국의 IMF사태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오늘날 인류는 악마의 맷돌에 갈려 온 몸과 정신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정신 속에 아주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괴물이 되었습니다.

 

미국인들이 어쩌다 이런 일을 앞장서서 하게 되었는지를 이어서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