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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신자유주의 시장경제(7)_공정성과 투명성은 배려와 안심을 창조한다

앞에서 불공정한 게임은 구성원간의 갈등과 폭력을 강요한다고 했습니다. 공정한 게임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불공정하게 경쟁하게 된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불공정성은 기본적으로 정보의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ic)에 기인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거래당사자 둘 다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속일 수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책당국자와 시민, 정치가와 유권자, 상인과 고객, 상사와 부하,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 대기업과 하청업체, 경영진과 종업원, 검찰과 피의자 등등

 

대개의 경우, 어느 한 쪽이 상대방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보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유리한 입장에 서려고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속여서라도 더 많은 이득을 취하려고 합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몇 차례 터무니 없이 속는 거래를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독일에서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처음에 서울에서의 삶은 참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교외의 한적한 곳에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독일에서 하던 대로 중고차를 샀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상상을 해 보세요. 그 후로 다시는 중고차를 사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시장경제에서 거래의 대상이 되는 것 중에서 자동차와 같이 물질적인 것들은 정보비대칭성에 의한 피해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습니다. 정보 차이에서 오는 불이익을 사후에라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한번 속은 다음에는 또다시 속을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물질적인 대상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비물질적인 대상이 시장경제에서 반복적으로 거래되는 경우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폐해를 입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이 폐해인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교육과 같은 비물질적인 대상이 상품화되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경우에는 매우 복잡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첫째, 교육을 과연 상품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교육은, 우리 헌법에도 명시되었듯이, 그 자체로서 공공재이기 때문에 상품화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교육이 상품화되어 시장경제에 편입됨으로써 사교육시장이 발달했습니다. 그것은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국민에 대한 공공서비스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역대 정부가 국가의 마땅한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사이, 사교육시장이 폭발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정부가 조금만 소홀히 해도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여 시장경제의 품으로 포섭해가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사교육시장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교사와 학생 사이에 엄청난 정보비대칭성이 발생합니다. 교육이 상품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은, 교사와 학생들은 실질적인 인격도야와 잠재력의 계발보다는 점수위주의 공부를 통해 소위 일류학교 진학을 목표로 합니다. 이것은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등록금을 매개로 학생은 고객이 되고 교수는 상인이 되기 때문에 정보비대칭성이 존재합니다. 자동차를 사고파는 것보다 더 심각한 정보비대칭성이 존재합니다. 브랜드이미지가 낮은 대학에서는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광고선전을 해대고 있고, 심지어 교수들은 연구보다 대학 세일즈와 학생유치에 더 바쁩니다. 어떤 대학에는 직업사관학교라는 수식어를 붙여 놓았습니다. 대학인지, 직업훈련원인지, 아니면 영리기업인지 그 정체를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업화가 얼마나 큰 사회적 폐해를 가져오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학교라는 교육기관이 상업화되면, 그 자체로서 존립하기 위해 재정을 튼튼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집니다. 그래서 대학은 많은 학생을 끌어 모아 등록금 받는 수준에서 적당히 가르치고, 학생들도 적당한 수준에서 학점 받고 졸업합니다. 부족한 것은 또 다른 사교육시장에서 때우면 됩니다. 교육이 시장의 원리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부유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정보비대칭성이 부의 대물림, 가난의 대물림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사회가 교육처럼 상품화될 수 없는 영역까지 상품화하여 시장경제에 편입시키려는 자본주의 이념의 탐욕적 속임수에 굴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노력을 병행해야 합니다.

 

첫째, 교육과 같이 상품화되어서는 안 되는 영역은 과감히 공적 영역으로 원위치 시켜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하루 아침에 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모든 정보의 처리와 유통이 공정하고 투명해져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이 음침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곳이 많아, 정보의 왜곡이 심하기 때문에 햇볕 아래로 끌어내야 합니다.

 

일부 상품화된 시장영역을 공적 영역으로 회복하라

 

우선, 첫 번째부터 보겠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상업화의 논리가 심각할 정도로 팽배해 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이 돈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부동산 문제는 매우 심각해서,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주택공사와 토지공사 같은 공기업을 세운 것인데, 이들이 자신의 존재목적을 잃고 집장사, 땅장사를 하는 바람에 오히려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내가 노무현 정부에서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은 토지공사와 주택공사 같은 공기업은 원가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서 가격구조를 시민들이 완전히 알 수 있도록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당시 참모들 중에 시장만능주의자들이 있어서, 그들의 꾐에 넘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고급주택을 시장기능에 맡기는 것은 충분히 용인할 수 있는 일이지만, 서민주택은 시민들의 기본적인 삶의 문제이기 때문에 공공재라고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주택공사와 같은 곳에서 원가를 공개한 후, 회사의 존속을 위한 일정한 마진을 붙여서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공급했어야 합니다. 그래야 민간 건설업자들의 터무니 없이 높은 분양가에 제동을 걸 수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주택공사의 원가공개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들어보았습니다. 볼펜 한 자루의 원가를 공개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의 기본인 시장경제를 거부하는 공산당식 발상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었습니다. 신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하고 있는 시장만능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시장기능으로 포섭시켜야 사회가 균형을 잡는다는 잘못된 믿음에 사로잡힌 사람들입니다.

 

도대체 볼펜과 서민주택을 같은 차원에서 보는 사람이 제정신인지 모르겠습니다. 볼펜은 없어도 대체가 무한정으로 가능한 상품이지만, 그래서 가격을 통제할 필요가 없고,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든 보이는 주먹에 맡기든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서민은 집이 없으면 판자촌이나 쪽방 신세가 됩니다. 아니면 노숙자가 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해집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은 집 없는 설움을 경험해 보았나요? … 그러므로 서민주택은 서민생활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 가격에 공급되도록 정부가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라

 

그 다음, 두 번째 이슈를 보겠습니다.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이 성립하려면, 경쟁질서가 매우 공정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정보가 완전하고 투명하게 유통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시장에서 정보는 결코 완전하지도 투명하지도 않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이러한 정보비대칭성이 시장의 불공정성을 가져옵니다. 이것이 불공정한 경쟁의 원인이 되고, 결국은 기득권층의 속임수 게임으로 진행됩니다.

 

그래서 정부는 이러한 속임수 게임이 발생하지 않도록 원천적으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정보를 처리하고 유통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두 가지 가치, 공정성과 투명성의 가치를 실천하면 됩니다. 공정성과 투명성은 그 자체로서 매우 높은 사회적 가치입니다. 공정성은 정의로운 사회와 관련하여 철학적 논의가 가능하지만, 사실 현실에서는 매우 간단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국가운영메커니즘이 초등학교 운동회와 같이 공정하고도 투명한 게임이 되도록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해서 갈등과 불안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정보처리와 유통에 있어 공정성과 투명성으로도 구분됩니다.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자신이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진실한 정보의 처리와 유통을 부담스러워 하고, 가급적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해도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가급적 공개하지 않습니다. 뭔가 속임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구린 데가 있어서 자꾸 숨기려고 합니다. 보수진영에서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일단 부인하다가 진실이 밝혀지면 그건 오해였다고 잡아 뗍니다. 최근에 어디선가 많이 들어보던 소리죠. 보수적인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특히 사학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교육과 학문이 상업화되면서 생긴 치욕적인 일인데, 사학비리에 관여했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겉으로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그럴 것입니다. 시장경제의 탐욕성과 그 폭력성을 사학비리에서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교육을 상업화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키워온 역대 정권의 업보가 여기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학의 투명한 운영을 위해서 법을 개정하자고 하면 엄청난 저항에 시달릴 것입니다. 사학의 온갖 비리가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을 막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사학을 운영하는 기득권층에서는 정보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무서운 겁니다.

 

그러므로 사회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공정성과 투명성입니다. 이 두 개의 덕목은 상호보완적입니다. 공정해야 투명하게 될 수 있으며, 투명해야 공정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실무에 있을 때 활용했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비서가 내 방에 수시로 들어오지만, 그 때마다 반드시 문을 열어놓도록 했습니다. 그 이유는 투명성 때문입니다. 만약 문이 닫혀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와 비서 사이에 아무런 이상한 거래가 없었지만, 투명성의 결여로 공정성이 의심받을 수 있습니다. 문을 열어 놓은 채 불공정한 또는 부적절한 거래를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공정했다면 투명한 조치에 승복해야 하고, 투명하고자 한다면 공정한 조치를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이 두 가지 덕목, 즉 공정성과 투명성은 사회운영에 있어서 최고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에 근거하지 않은 경쟁력이란, 월 스트리트의 붕괴에서 보았듯이,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사회와 조직이 이렇게 설계되고 운영될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며, 삶에 대한 안정감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보적인 입장은 항상 공정한 정보의 투명한 유통을 중시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보처리와 유통은 신체의 혈류와 같습니다. 이것이 완전하고 투명해져야 합니다. 여기서 완전하다는 의미는 정보에 특정계급을 위한 속임수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선진사회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덴마크를 포함한 북구의 여러 나라는 완벽한 정보의 투명성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북구 여러 나라처럼 풍요로우면서도 공정하고 투명한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업경영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덕목입니다.

 

간단한 사례를 들어볼까요?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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