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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신자유주의 시장경제(4)_잘못된 믿음으로 파국을 맞은 미국인들

모든 것을 상품화하여 시장에서 거래하도록 할 수 있다면, 시장은 부족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최적의 균형상태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의 믿음입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믿음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만약, 시장이 이러한 자기조절기능을 가지고 있다면, 파국으로 나가기 전에 스스로 균형상태를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번번히 파국을 맞았고, 인위적인 조정을 가해야 다시 살아나곤 했습니다. 고전적 자유주의 이념이 가져온 파국의 절정은 1929년의 대공황입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이념의 결말과 비슷한 양상입니다. 19세기를 거쳐 20세기 초엽까지 거의 무제한적 자유방임을 추구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상당히 팽창한 것처럼 보였지만 엄청난 버블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대공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앉았습니다. 이런 경제적 공황상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시장에 대한 자유방임적 신념은 완전히 잘못된 믿음이라는 사실을 경제학적으로 알려준 사람이 바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였습니다. 정부가 적절한 수준의 개입을 통해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잡도록 인위적 조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대공황은 유효수요의 부족이 원인이므로, 정부가 재정적자를 감수하더라도 돈을 풀어서 수요를 진작하여 생산자의 공급이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정부의 대규모 개입이 시장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혁명적 처방이었는데, 시장을 맘대로 주무르던 자유주의자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케인즈의 처방은 옳았고, 시장경제의 패러다임은 개입주의자들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종전 후에도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여 자유주의적 방임에 따른 극심한 빈부격차를 축소하기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들을 시행해 나갔습니다. 부유층의 부당한 탐욕을 제어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잠재력을 키워주는 방식으로 정부의 대규모 개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미국은 중산층이 매우 두터워졌고, 30여 년간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번영과 풍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명실상부하는 세계의 중심국가로 부상했습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던가? 미국은 국제무대에서도 지나친 개입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함으로써 미국은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한 후, 미국의 진보적 개입주의는 서서히 힘을 잃었습니다. 시장에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자들이 득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자유주의를 대공황 이전의 고전적 자유주의와 구분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라고 부릅니다.) 보수적인 공화당의 레이건이 1981년에 대통령에 취임하면서부터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시장의 규제적 장치를 다 풀어 놓았습니다. 부자들에 대해서는 세금을 감면하고, 시장경쟁에서 자기책임의 원리를 내세웠습니다. 이때부터 시장은 활기를 띠고, 모든 것을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전환시켰습니다. 시장은 커졌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탐욕도 증가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에 어떤 사건들이 벌어졌는지는 앞에서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서 심각하게 타격을 입은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당연히 가난한 서민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저축은 물론 퇴직연금과 같은 장래를 담보한 투자금을 날리기 일쑤였습니다. 대형기관의 경영진은 이미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파국으로 치닫기 전에 자신의 투자금을 회수하거나 높은 연봉으로 미리 단물을 다 빨아먹습니다. 그리고 파국이 오면, 경영진은 물러나면 그 뿐입니다. 경영판단이었기 때문에 배임과 같은 범죄행위로 처벌하기도 곤란합니다. 지난 30년간 대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은 결과적으로 가진 자들이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메커니즘으로 굳어졌습니다.

 

나는 통계수치를 크게 신뢰하지 않지만, 숫자가 때로는 이해를 훨씬 빠르게 해주기 때문에 인용해 보겠습니다.

 

레이건 등장 이전에는 상위 1%의 부유층이 차지하고 있던 총소득은 국민총소득의 8%, 상위 0.1%의 초부유층이 차지했던 총소득은 국민총소득의 3%에 불과했다. 신자유주의 경제패러다임의 시행 후 25년이 지난 2005년에는 상위 1%의 부유층이 국민총소득의 17%로 늘어났고, 상위 0.1%의 초부유층의 소득은 전체소득의 7%로 늘어났다. 양극화 현상이 극한에 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나카타니 이와오, 이남규 옮김, 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 기파랑 2009, 49)

 

아울러 1970년대에는 10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 보상수준이 종업원의 평균임금의 약 40배 수준이었습니다. 21세기 들어와서는 약 400배로 늘어났습니다. 신자유주의 경제패러다임이 중산층을 빠른 속도로 무너뜨렸습니다. 부유층이 중산층의 부를 빨아들인 것입니다. 부유층은, 중산층 사람들이 시장에서 선택의 자유와 기회의 평등에 따라 주체적으로 의사결정 했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자기책임의 원리에 따라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대답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나요?

 

선택의 자유”, “기회의 평등”, “자기책임의 원리라는 용어가 얼마나 허울뿐인 논리와 도덕인지를 명확히 보여준 사건들이 많지만, 최근의 사례만 들어보겠습니다. 부유층의 도덕적 해이와 그 탐욕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파렴치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진원지인 월 스트리트의 대형 투자은행과 금융기관 경영진들이 보여준 무책임한 행태에서 나는 경악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심대한 손실 때문에 파산시킬 수 없어서, 대형금융기관에 국고를 지원했습니다. (자유방임의 신자유주의 이념에 따르면 당연히 파산시켜야 마땅하지만 그들 역시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시장의 자기조절기능은 환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원받은 돈으로 경영진들은 거액의 보너스를 챙겼고, 심지어 그 돈으로 의회에 로비까지 했습니다. 자신들이 유리하도록 제도를 바꾸려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구조조정을 빌미로 수많은 종업원들을 정리해고 했습니다. 이런 일은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1980년대부터 일어난 금융사건과 사고의 원인과 그 행태는 거의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의 자유, 기회의 평등, 자기책임의 원리라는 말을 쓸 수 있을까요?

 

이렇게 금융시장은 또 다시 파국을 맞았고, 극단적인 인위적 조치를 취해야 겨우 되살아 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시장은 인간의 탐욕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탐욕이 시장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시장에는 자기조절기능이 있다는 헛된 믿음을 버리지 못할까요? 그것은 시장이야말로 가진 자들의 지배수단으로서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가진 자들은 지배수단으로서 시장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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