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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

나의 삶을 부끄럽게 만든 남자_박원순 변호사

예전에 그를 몇 번 만났지만, 한번도 시민운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경영학에서는 시민운동 같은 것은 가르치지 않으니까요. 그런 것은 그쪽 사람들이 하는 특별한 세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상 시민의 응어리가 가장 뜨거웠던 한 시기에 참여연대를 발족시켜, 그것을 시민단체의 역할모델로 끌어 올렸습니다. 그 후, 자신의 청춘을 바친 그 참여연대를 홀연히 떠나 <아름다운 재단>을 만들어 <아름다운 가게>를 시작했습니다. 여기에도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끌어냈습니다.

 

오래 전 실무에 있을 때 <아름다운 가게>에 끌려나갔습니다. ‘가급적 스토리가 있는 물품을 내라고 다그치는 바람에, 신혼 때부터 차고 다니던 커플 손목시계 두 개를 기부한 기억이 전부입니다. 최근에는 아름다운 가게가 103호점을 열었다니까 대단한 발전입니다. 시민의 자발적 동력이 시스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런 거대한 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재단이 홀로서기를 하게 되자 또 다시 이곳을 떠났습니다. 그가 새로운 시민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006년에 <희망제작소>를 열어 시민사회가 나갈 비전과 희망을 연구하고 그 결과를 실천하는 새로운 모델을 다시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박원순 변호사와 둘이서 조찬을 함께 했습니다. 저간의 근황을 비롯한 이런 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의 열정과 신념! 그는 조용조용 말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가 쓴 책을 읽으면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 부끄러워집니다.

 

나는 나 자신과 가족, 조금 더 나간다면 내가 속한 조직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면서 살았다는 반성을 하게 합니다. 내가 공부하고 일하는 모든 것이 결국은 내 개인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었음을 알게 해줍니다. 입지전적으로 훌륭하게 살아왔다고 나의 삶에 대해 칭찬해 주었지만, 나는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초라함을 느낍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재학 중 유신정권에 의해 감옥살이를 했고, 복학이 어려워지자 혼자 공부해서 사법시험에 합격합니다. 검사생활을 잠시 하다가 인권변호사로 전향해서 온갖 어려움을 뚫고 한국사법사에 남을 만한 판결들을 이끌어냅니다.

인권변호사로서 감옥 갔다 오고 수많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잘못된 권력에 저항하고, 궁극적으로는 승리했던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그런데, 유독 그가 나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독일사회를 인터뷰하다-박원순 변호사의 독일 시민사회 기행』(논형 2005)이라는 책을 읽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언젠가 독일사회에 대해 책을 쓰려고 틈틈이 자료를 모았기 때문에 이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박 변호사에게서 매력을 느꼈고, 그가 쓴 다른 책들을 사서 읽었습니다.

 

박원순,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 프리 윌』, 중앙북스 2007

박원순,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검둥소 2009

박원순, 지승호, 『희망을 심다』, 알마 2009

 

특히, 자전적 인터뷰인 『희망을 심다』를 읽다가, 책과 자료에 대한 욕심이 많은 것은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박 변호사의 유학시절, 하버드 법대 도서관과 워싱턴 의회도서관에서 벌어진 자료복사에 관한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하도 많은 자료를 복사하니까, 직원들이 처음에는 무료로 하던 것을 유료로 바꾸고, 사모님이 복사하시다가 쓰러지시고복사를 많이 하면 그 냄새가 보통 지독한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의회도서관 의무실 신세를 지기까지 했습니다.(173)

 

나는 이 대목에서 아내를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찬찬히 다시 읽어주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독일 대학 도서관에서 하던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책과 자료를 복사하느라 날을 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바탕 웃었습니다.

 

내가 실무에서 퇴임한 후에 전혀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어떻게 지내냐고? 그때는 여러 가지 바쁜 일들이 겹쳐서 제대로 길게 통화하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연락해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조찬 내내 감동과 기쁨이었습니다.

 

박 변호사의 삶이 빛나는 것은, 변호사 생활을 그만두고 참여연대를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시민운동가의 모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사가 문을 열어주어야 검정세단에서 내릴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시민운동가로 남아 험난한 가시밭길을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 갑남을녀의 세속적 욕망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그런데 그는 나는 이렇게 하는 게 더 좋고, 그것이 결국은 내가 잘 사는 길이라고 겸손해합니다.

 

무엇보다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선진국의 시민사회는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우리도 그런 지혜를 차곡차곡 쌓아서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공동체 정신(Gemeinschaftsgefühl)을 회복시키려는 그의 노력은 숭고해 보였습니다.

 

이것뿐이 아닙니다. 『희망을 심다』 맨 뒤에는 세 편의 유언장이 붙어 있습니다.

 

첫째, 내 딸과 아들에게

둘째, 내 아내에게

셋째, 모든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는 이 유언장들을 읽으면서,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에 툭하면 눈물이 납니다. 하늘을 쳐다 보다 다시 읽기를 몇 번 반복해서야 다 읽었습니다. 내가 유언장 얘기를 꺼냈더니, 유언장을 미리 쓰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나도 유언장을 미리 써 놓아야겠습니다. 유언장이야말로 삶의 지향점을 분명히 설정해줍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혹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어려움이 있다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빠져나가 보세요. 그러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 나는 박원순 변호사의 책 몇 권을 읽고, 그리고 그를 만나 얘기하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새로운 세계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러나 나는 그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분명 대한민국 시민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 『희망을 심다』를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내가 느꼈던 것처럼 자신의 삶이 부끄러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