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영 이야기/BSC

균형 잡힌 성과지표체계(Balanced Scorecard, BSC)의 의도하지 않은 폐해들(8)

로버트 캐플란(Robert S. Kaplan, 1940~)교수와 데이비드 노튼(David P. Norton)박사가 개념화한 BSC에 대한 그 동안의 이론적 논의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음과 같은 다섯 권의 단행본을 둘러 본 사람은 그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작업은 철저하게 논리실증주의적 사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학자나 실무자의 특징은 논리적이고 실증적일 수 없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런 세계가 경영의 성과에 훨씬 더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BSC, 송경근, 성시중 옮김, 한언 1998

      『SFO, 이재욱, 정대형 외 옮김, 한언 2001

      『Strategy Maps, 정종섭 외 옮김, 21세기북스 2004

      『Alignment, 정종섭 외 옮김, 21세기북스 2007

      『전략실행 프리미엄』, 정종섭, 외 옮김, 21세기북스 2009

 

BSC개념을 가능케 하는 것은 논리실증주의 이념입니다. 그러므로 BSC는 철저하게 계량화와 비교분석을 통해서 인과관계의 논리적 고리를 찾습니다. 그 논리적 고리를 따라 핵심적인 성과지표를 구성하여 각 조직구성원에게 분배합니다. 이것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계량화입니다. 계량화되지 않으면 비교분석이 불가능하고, 논리적 연관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량화의 폐해에 대해, 앞서 이미 포스팅했지만, 다시 정리하고자 합니다.

 

첫째, BSC는 인간의 영혼보다는 숫자를 더 중시합니다. 대개의 경우 계량화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치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고 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비교하게 되면, 서열과 등급이 생깁니다. 우열이 갈리게 되죠. 우위에 선 사람과 열위에 선 사람이 나뉩니다. 이것으로 사람을 평가하게 되면 경쟁하겠죠. 이긴 사람과 진 사람이 생깁니다. 이긴 사람은 권력()을 갖게 되고, 진 사람은 빼앗깁니다.

 

진 사람은 앞으로 이기도록 분발시키는 동기부여의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쁠 것 없습니다. 하지만 경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진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됩니다. 때로는 이긴 사람에 대한 적개심을 갖게 됩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서로 숫자를 왜곡하고 속이는 전략을 쓸 수도 있습니다. 특히 조직 내에서 서로 승진과 성과급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과정에서 이런 부도덕한 전략을 쓰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이런 전략을 우리는 권모술수라고 합니다. 기업에서 더 많은 성과를 끌어내기 위해 이 과정을 끝없이 계속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긴 사람이라도 항상 이길 수 없으며, 자신보다 더 유능한 사람은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경쟁은 인간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사회의 갈등과 불안의 원인이 됩니다. 말하자면, 동물의 왕국처럼 변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검찰총장 내정자는 불법, 합법, 탈법의 경계를 마구 넘나들면서 살아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어떤 내용도 시원하게 해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을 집행해야 할 책임자의 모습입니다. 그런 자를 임명하려는 자와 비슷한 행태를 보여왔음이 명백하지 않습니까? 국세청장 내정자는 어떻습니까? 탈세한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거의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인간에 대한 계량화와 그 결과의 비교행위는 우리가 당초 기대했던 조직의 경쟁력 향상이나 당사자를 분발하게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인간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는 계량화와 비교평가는 어떤 경우에도 득보다는 실이 많습니다. 성과급 몇 푼 또는 승진이라는 한줌의 권력을 당근으로 내거는 조직운영행태는 인간을 단순히 자극에 반응하는 짐승처럼 영혼의 능력을 무시하는 제도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을 매우 치사하게 만드는 제도입니다
.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자유, 사랑, 행복과 같은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실존적 존재입니다. 인간이 이런 가치를 추구하는 이유는 영혼이 있기 때문이지요. 리더십은 이것을 자극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혼의 능력을 무시하고 단순히 자극-반응시스템으로 관리하려는 온갖 시도는 결국 사회를 파멸로 이끌 것입니다. 월 스트리트의 붕괴에서 보았듯이 말입니다.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둘째, BSC는 발산적인 사고보다는 수렴적 사고를 강요합니다. 수렴적 사고의 특징은 예컨대 지금 이 시점에서 부산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 정답을 찾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정답은 계량화와 비교분석을 통해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산적 사고는 왜 직원들을 지금 교육시켜야만 하는가또는 교육훈련의 목적은 무엇인가와 같은 개방적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입니다. 당연히 정답은 없습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은 무수히 많은 대답과 그 대답 속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BSC는 회사의 전략이 세워지면, 그 전략대로 실행에 옮기도록 수렴적 사고를 강요합니다. 매순간 직면하는 현상에 대해 라고 묻기보다는 가장 빠르게 전략을 실행해 내도록 유도합니다. 전략실행에는 속도가 날 수 있지만, 그 실행의 순간에 전략의 의미를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의미를 모르는 실행이 강요되는 셈입니다. 미리 전략을 세워 놓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발산적 사고를 억제하고, 수렴적 사고에 매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외부와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BSC에는 개방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개방성의 결여, 이것이 아마도 BSC에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약점일 것입니다. 학습조직이론의 선구자 피터 센게(Peter Senge, 1947~)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2 내지 3명의 사람들로 구성된 소규모 그룹이 매우 몰입해 있고 개방적일 때, 그들은 학습조직의 소우주(小宇宙)를 만들어 낸다. 이 소우주는 그들에게 필요한 기술을 스스로에게 가르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모델이 된다.

 

개방성을 향한 추진력은 사랑의 정신이다. 물론 사랑은 기업과 경영의 내용 속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단어이다. 그러나 사랑은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다. 사실, 개방성의 바탕이 되는 사랑의 유형은 그리스인이 말하는 아가페라고 부르는 감정과는 관계가 없다. 오히려 그것은 의지 서로에게 봉사하겠다는 서약과 그러한 봉사의 맥락 속에서 비난을 감수하고자 하는 것 와 많은 관련이 있다. 개방성의 기초가 되는 사랑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의는, 다른 사람들이 될 수 있고, 되기를 원하는 것을 완성하도록 완전하고도 무조건적으로 몰입하는 것이다.”

(피터 센게, 안중호 옮김, 제5경영, 세종서적 1996, 382~383쪽)

 

지금은 BSC를 넘어 6시그마를 추진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과 사고력에 대한 불량률을 줄이려는 시도입니다. 이것이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랄 뿐입니다.

 

이어서 BSC가 기업에 도입되었을 때, 실제로 어떤 폐해가 발생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