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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이야기/BSC

균형 잡힌 성과지표체계(Balanced Scorecard, BSC)의 의도하지 않은 폐해들(9)

국내에는 이미 많은 기업들이 BSC를 도입해서 운용하고 있습니다. 빠른 기업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적어도 짧게는 3년 이상 실행해 본 경험 있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지난 10년간은 BSC가 경영이론 중에서 가장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경영이론은 이미 하나의 산업을 형성했습니다. 그럴 듯한 경영이론이 하나 생성되면, 그것에 따른 돈벌이가 만만찮습니다.

 

그래서 경영학자들은 경영이론을 구성해서 팔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뜻하지 않게 좋은 경영이론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는 팔기 위한 이론들이기 때문에, 경영현장에서는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곤란합니다. 임상실험 없이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이라는 문화적 토양과 전혀 다른 세계에서는 더욱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런 상업화된 경영이론 중에서 BSC는 단연 가장 인기 있는 이론입니다. BSC를 도입하여 성공했다는 사례집도 나왔고, 실제로 BSC명예의 전당에 올라간 기업도 있습니다. 이런 기업 중에서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언론을 통해서 잘 알려진 사례만을 소개하겠습니다. 여타 사례들이 과연 성공적이었는지는 실제로 그 기업 내부에서 정밀한 조사를 거쳐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기업 내부가 상당히 골병이 들어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피상적이긴 하지만, 언론에 공개된 내용만으로도 우리는 BSC 성공사례에서 BSC가 구성원들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음을 금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랜드 사례

 

이랜드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BSC에 관심을 갖고 도입운영하기 시작한 기업입니다. 2004년도에는 BSC명예의 전당에도 올라갔습니다. 지식경영에 대해서는 해외 주간지에서도 극찬했습니다. 2005년도에는 BSC Report에도 사례가 소개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수많은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BSC연구회 지음, 『한국형 BSC 성공사례 11, 삼성경제연구소 2006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랜드 사태는 2007년도에 발생했습니다. 홈에버 직원들의 장기 파업으로 사태의 심각성이 알려졌습니다.

 

당시 이랜드 그룹의 5대 의혹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비정규직 1,000명을 대량해고 했다?

2.     그룹 회장이 지난해, 주식배당금으로 82억 원을 가져갔고 130억 원을 교회에 바쳤다?

3.     비정규직이 일하던 계산업무를 편법으로 용역(아웃소싱) 전환했다?

4.     ‘0개월 계약등 계약기간을 공란으로 비워놓고 회사 맘대로 기간을 정하고 계약을 했다?

5.     계산원의 한 달 급여가 80만원이다?

 

일부 노조원과 외부세력은 이런 의혹이 사실인 것처럼 주장했습니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 아닌데 이런 주장을 해대니 이랜드의 박성수 회장이야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회사의 공식적인 해명이 사실일 것입니다. 법대로 처리했고, 법의 기준보다 훨씬 더 완화된 노동조건으로 회사를 정상화 시키려고 했는데, 문제가 꼬였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태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이랜드 그룹이 까르푸를 인수해서 홈에버로 명칭을 바꾸고 경쟁자인 이마트를 모델로 적자기업을 흑자로 전환시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 중의 한가지 전략이 홈에버에 근무하던 비정규직 중에서 18개월을 근속한 521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나머지는 이마트처럼 아웃소싱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의적으로도 법률적으로도 회사의 조치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문제의 조짐이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초 세운 전략대로 밀어붙인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습니다.

 

노조에서는 정규직화의 기준이 18개월이 아닌 3개월로 요구했고, 연봉인상까지 요구하면서 점거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대선을 앞둔 정치계와 노조의 상급단체인 민노총이 끼어들면서 사건이 커졌습니다.

 

당초 세운 전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현장 상황에 따라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사람들, 특히 외주로 전환될 사람들을 상대로 설득하는 일을 했어야 합니다. 열린 마음, 헌신과 사랑의 정신으로 말입니다.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한 비정규직은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입니다. 당시의 책임자는 도의적으로도 법적으로도 하자가 없기 때문에 전략(계획)에 따라 진행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성과지표로 표현되었겠죠. 외주로 넘어가는 비정규직의 마음에는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소연할 수 있는 곳은 노조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지 너무나 뻔한 스토리입니다.

 

BSC가 이랜드 사태를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BSC의 폐해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했다면, 아마도 사태를 미리 예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BSC는 수렴적 사고를 강화하여 조직분위기를 폐쇄적으로 만듭니다. 외부와의 개방성(openness)이나 사랑과 헌신의 정신보다는 숫자화된 결과를 중시하는 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은 핵심인재들이 타사로 유출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2009년 7월 이랜드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일모직을 상대로 "핵심인력을 빼갔다"는 이유로 채용무효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출했습니다. 지난 10여년간 중국패션사업부를 맡고 있는 임원이 2008년 11월 돌연사표를 내고 제일모직의 상해법인장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이밖에도 핵심간부 2명이 제일모직으로 가기 위해 사표를 제출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이랜드는 재벌그룹에서 핵심인력을 빼가는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퇴사하는 직원의 대부분은 그 회사에서 더 이상 비전을 발견할 수 없고, 일할수록 더욱 쪼임만 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직에 대한 충성심(organizational commitment)과 직무몰입도(job involvement)가 줄어들게 됩니다. 일에 대한 비전을 잃으면 사명감도 사라집니다. 그때는 그저 돈이라도 많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돈 몇 푼이라도 더 주는 데로 옮기는 겁니다. BSC는 계량화된 숫자로 강력한 통제력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1980
년대 초 이화여대 앞의 2평짜리 작은 옷 가게로 시작한 사업이 수조 원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깨끗한 기업, 정직한 기업의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랜드의 성장을 진심으로 성원했었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이웃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뇌물 없고, 2중 장부 없이도 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듯 했습니다.

 

박성수 회장이야 추호도 잘못한 게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BSC를 도입하면서부터 직원들의 정신이 황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숫자로 된 성과지표로 직원의 정신이 쪼임을 받기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열린 마음, 헌신과 사랑의 정신이 숫자로 표현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한 이랜드의 브랜드 이미지는 셀 수 없을 정도의 가치손상을 입었습니다. 인간은 계량화된 숫자 앞에 장사 없습니다. 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인간의 정신이란 그렇게 나약합니다. 그러므로 조직은 인간의 정신을 훼손하는 모든 숫자의 횡포로부터 조직원들의 영혼을 보호할 수 있는 리더를 필요로 합니다.

 

한국타이어 사례

 

한국타이어는 부당노동행위 또는 노동자들의 집단사망과 관련하여 언론에 노출된 적이 꽤 많은 기업입니다. 최근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기업이어서 더 많은 관심을 얻고 있습니다. 한국타이어는 1999년부터 BSC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단계적으로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2001년도부터 2007년도까지 산업재해로 의심되는 여러 질환으로 사망한 직원의 수가 수십 명에 이릅니다. 그래서 한국타이어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가 구성되어,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 무엇이 원인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공개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05년도 8월에 민주노동당이 대전지방법원에 제출한 문서는 한국타이어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실태 조사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근로조건이 매우 참혹한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방송매체에서도 크게 다룬 바 있습니다. 이 방송을 보면서 21세기의 개명한 세상에 아직도 이런 기업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그것도 대기업이 그렇다는 사실에 경악했습니다.

 

BSC라는 강력한 관리수단은 이처럼 종업원들에게 감시와 처벌의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법원에 제출된 자료에 의하면, 연봉에서도 동종업계의 금호타이어와 비교해서 대략 2,000만원 정도 적게 지급되며, 부당노동행위로 보이는 현상이 뚜렷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사례(BSC연구회 지음, 『한국형 BSC 성공사례 11, 삼성경제연구소 2006)에서 기술하고 있는 한국타이어는, BSC를 도입한 이후에 나타난 변화가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되었다는 점을 들었고, 경상이익률이 급격히 상승했다고 기술했습니다. 마른 행주도 짜면 물이 나오는 모양입니다.

 

한국타이어에서 BSC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집단사망 원인을 회피하지 말고, 최우선으로 해결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감시와 처벌이 아니라 종업원들과 함께 회사의 장래를 논의하는 참여의 정신을 발휘하고, 최고경영자는 쥐어짜는 관리가 아니라 리더십을 통한 진정한 경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공개된 자료만으로도

 

여기서 다룬 것은 언론에 공개된 자료에 의한 것입니다. 이 밖에도 BSC 성공사례라고 든 회사들은 사실 무엇을 성공했다는 얘기인지가 불분명합니다. 정부를 비롯한 공공부문에도 상당히 많은 기관에서 BSC를 도입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한번 상상해 보시죠.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BSC양식에 숫자 채워 넣느라 복사지만 날린 셈입니다. 관료들과 공공기관의 임직원들은 BSC가 아니라 BSC할애비가 도입돼도, 그 기능을 하루 아침에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능력과 스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공공부문에서 BSC로 변화와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거나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그 사례를 댓글로 달아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후사하겠습니다. 제가 번역한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에 BSC가 도입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BSC가 기업의 재무적 성과뿐만 아니라 그 어떤 장기적 성과에도 결정적인 공헌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조직의 결속력을 저해하여 구성원들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힘 있는 미국인이 만들어낸 경영이론의 상업화 과정에서 생긴 희생양인지도 모릅니다.

 

지금이라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BSC에 대한 미련을 버렸으면 합니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Balanced ScoreCard가 아니라 Balanced Spiritual Contents입니다.

 

 

p.s.: 나는 이 BSC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마음 한 구석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마치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BSC를 컨설팅하는 많은 컨설턴트들이 눈에 밟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인사문제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무거운 마음이지만,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 말해야 했습니다. 진실에 직면하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이 글을 읽고 혹시 섭섭한 점이 있으면, 넓은 아량으로 용납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