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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록/Honors Program

대학운영의 전범이라고 할 수 있을까?_School of Engineering, Stanford University

공과대학(SoE, School of Engineering)의 교무담당 부학장인 Curtis Frank교수(Chemical Engineering, Senior Associate Dean)가 우리 일행에게 공과대학 현황을 브리핑 받았다. 9개의 학부를 이끄는 부학장이 모두 5명 있는데, 교무(faculty & academics)담당 부학장과 학생(student affairs)담당 부학장은 공대교수 중에서 맡고 있으며, 다른 세 사람은 행정직이다.

 

<Curtis Frank 교수가 공대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스탠포드 공대는 약 700명의 학부생과 약 3,300명의 석박사과정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전형적인 연구중심대학이다. MIT에 이어 미국 내 순위로는 두 번째 공과대학임을 설명하면서,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MIT보다 더 나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MIT Caltech은 오로지 공과대학뿐이지만, 스탠포드는 인문사회과학 분야도 최강의 연구와 교육수준을 가지고 있어 21세기 가장 좋은 융복합의 기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학을 인문사회과학과 접목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Curtis Frank 교수의 연구실에는 동양에서 수집한 것들이 즐비하다>

 

스탠포드대학교에는 Honors Program을 각 학과별로 운영하기 때문에 대학전체에서 Honors Program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한다. 화학공학과의 경우에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별도의 코스워크와 논문을 쓰도록 장려하여 Honors학생임을 인증해 준다고 한다. 아무리 우수한 대학이라고 하더라도 그 중에서도 특히 우수한 학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학생을 위한 별도의 학문적 성취감과 지적 도전감을 줄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학과별로 Honors Program을 운영하고 있을 뿐, Honors Program이라는 용어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 스탠포드 공과대학의 학생들은 그 자체로서 Honors Program의 대상이 아닌가 싶다.

 

<공과대학 본부 건물(Jen-Hsun Huang School of Engineering Center)>

 

Curtis Frank 교수는 공대 건물에 대한 캠퍼스 투어일정을 함께 했다. 특히 최근 신축한 공과대학 본부건물(Jen-Hsun Huang School of Engineering Center, 대만계 1.5세대 Huang의 기부로 지어진 건물)을 일일이 안내해 주었다. 이 건물은 최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환경친화적으로 설계되어 열에너지 절약뿐만 아니라 햇빛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사무실과 강의실에 전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도록 디자인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스탠포드 캠퍼스 I>

 

<아름다운 스탠포드 캠퍼스 II>

 

 

<아름다운 스탠포드 캠퍼스 III, 이런 작은 봉우리가 여러 개 있어서 무덤 같다고 했더니 정원 디자인이라고 한다. 높은 곳에 올라서면 지평선이 보이는 평지라서 심심했던 모양이다…>

 

<아름다운 스탠포드 캠퍼스 IV>

 

 

<아름다운 스탠포드 캠퍼스 V>

 

 

<캠퍼스의 숲 속에 쌓여 있는 Bookstore>

 

 

<도서관 앞에 있는 조형물,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

<그린도서관이라고 해서, 녹색환경운동 전문 도서관인 줄 알았다>

 

<세실 그린 라이브러리>라고 해서 나는 녹색환경운동 전문 도서관인 줄 알았다. 그러나 도서관을 기증한 사람의 이름이 세실 그린이었다. 뒤에서 다시 보겠지만, 세실 그린은 UT Dallas를 세운 사람이다. 세실 그린(Cecil Howard Green, 1900~2003)은 영국태생으로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정착하여 Texas Instrument를 세워 억만장자가 되었고, 재산을 자선사업을 통해 교육과 의료에 공헌하도록 기부활동을 했던 박애주의자였다. 예를 들면, UT Dallas외에도, 자신이 젊은 시절 잠시 다녔던 캐나다의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UBC) Green College를 세웠고, MIT에서 전자공학사와 석사를 받았던 그는 지구과학을 위한 세실 그린 빌딩을 기부했다. 이 밖에도 그는 많은 자선활동을 했다.

 

스탠포드 공대 학장 사무실 바로 옆에는 테라스를 꾸며 놓았다. 소위 딘스 테라스(Dean’s Terrace)라는 것인데, 이곳에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고, 외부 주요 기부자들을 이곳에서 접대한다고 한다. 학장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외부의 자금을 학교로 끌어오는 것이다. Jim Plummer학장은 늘 기업인들을 만나 기업이 원하는 연구동향과 대학이 기업에 기여할 일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한다. 실제로 그는 벤처기업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학장실이 유리로 설계되어 있고 가운데 있는 Jim Plummer학장이 외부인과 면담 중이다. 학장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투명하게 볼 수 있다. 창문 밖이 그 유명한 Dean’s Terrace!!!>

 

 

<여기가 Dean’s Terrace.  학장실 옆에 있는 테라스에서 중요한 딜이 벌어진다>

 

공과대학 건물들을 돌아보면서, 시설의 규모뿐만 아니라 인간중심적인 설계에 놀라게 되었다. 학생들이 어떤 곳에서나 자유롭게 토론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대학들의 비좁은 학습시설과 연구시설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를 느낀다.

 

<공개된 Lounge인데, 학생들이 언제라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이런 학습 토론 장소가 늘 열려 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Lounge>

 

 

<실험실>

 

 

<라운지에는 MIT Forbes Cafe에서 공과대학 본관건물 신축메시지가 왔다. Stanford MIT간 실시간을 영상통화가 가능하도록 연결되어 있다.>

 

나는 건물의 내부를 돌아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도대체 이런 시설과 환경을 꾸밀 수 있는 돈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아주 간단하다. 기업으로부터 온다. 기업은 어떻게 돈을 버는가? 혁신을 통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돈을 번다. 대학은 기업이 기부한 돈으로 시설과 연구에 투자한다. 대학의 연구결과는 다시 기업으로 전수되고, 기업은 시장에서 고객을 상대로 혁신을 일으킨다. 내가 스탠포드에서 느낀 것은 대학이 곧 기업이고, 기업이 곧 대학이라는 점이다. 어디 한번 볼까? 셀 수 없이 많지만 눈에 띄는 것만 보자.

 

<1999 James H. Clark 15천만 달러를 기부해서 지은 생명과학관 Bio-X. 16mm광각렌즈로도 다 잡히지 않을 정도로 크다. Clark는 실리콘 밸리에서 IT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어떤 인물인지는 http://en.wikipedia.org/wiki/James_H._Clark 를 참조할 것>

 

<중국 최대의 부자 Li Ka Shing이 기부해서 지은 줄기세포 연구동>


 

<David Packard Electric Engineering>

 

<William Hewlett Teaching Center>

 

<Bill Gates Computer Science>

 

기업이 대학에 기부하는 이유는 뭘까?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고 그 많은 돈을 대학에 선뜻 낼까? 성공한 기업가들의 기부하는 마음은 대학이 과학기술면에서 사회를 정화시킬 수 있을 어떤 일을 성취해 달라는 기대가 아마도 있었을 것이다. 대학은 그 기대에 부응하여 사회를 발전시킬 혁신적인 연구성과를 이룩해 낸다. 그 결과들이 다시 기업과 사회로 스며들어 사회는 발전한다. 이것이 전형적인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이다. 이 모델은 이런 장점이 있지만, 부익부빈익빈의 골이 깊이 패인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이 선순환의 고리에 들어가지 못한 찌질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에서는 이 해결책이 마땅치 않다. 자유주의 시장경제 원리가 가지는 한계다.

 

유럽식 사회주의 모델은 완전히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업의 기부를 사회적으로 빨아들이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정부가 세금을 거두어서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설치하는 방식이다. 유능한 사람들은 구태여 정부가 나서서 돌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고 경쟁력이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둬도 잘 살기 때문이다. 이 모델은 부익부빈익빈의 단점을 해결할 수 있지만, 시장경제가 가져다 주는 역동성은 아무래도 줄어든다. 사회적 시장경제가 더 활력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 즉 사회적 안전망을 어느 수준까지 촘촘히 짜느냐에 달려 있다.

 

여러분은 어떤 입장인가요? 미국식 자본주의? 아니면 유럽식 사회주의? 어떤 입장에 서 있느냐에 따라 사상과 철학이 첨예하게 갈린다. 어떤 사람은 제3의 길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역시 쉽지 않다.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결정하려면 반드시 어떤 줄에 서야 한다. 갈팡질팡하면 사회적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이 미국식 자본주의 구조 또는 유럽식 사회주의 구조 중에서 대학경영의 전략적 입장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학의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개별 사립대학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을 받아 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학이 기업보다 경쟁력이 없거나 생산성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떤 기업이 그런 대학에 기꺼이 기부하고 투자하겠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출출해졌다. 점심식사는 우리 일행과 Curtis Frank 교수, 학생담당 부학장인 Brad Osgood 교수(Electrical Engineering, Senior Associate Dean)가 함께 했다. 우리의 Honors Program을 소개했고, 학생담당 부학장으로서의 학생교환이나 인턴십 같은 단기코스참여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Osgood 교수의 말로는 너무나 많은 대학에서 비슷한 요청을 해오고 있기 때문에 대학의 공식적인 입장은 매우 신중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현재로서는 중국의 베이징대 또는 칭화대와의 학생관련 프로젝트들을 처리해야 할 것이 남아 있다고 했다. 장기적으로 서로 좋은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놀랍게도 그는 아시아에는 그 어떤 나라에도 한번 가본 적이 없는 전형적인 토박이 미국인이었다. 스탠포드 공과대학과 연계하여 HP학생들을 당장은 교환할 수 없지만, 앞으로 자주 교분을 갖고 업무협력을 추진하다 보면 그럴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지금까지는 강행군인데다 시차도 있고 거의 녹초가 되어 있었다. 점심을 먹고 힘을 냈다. 오전에 Andrew Fire교수(2006년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그는 2010 6월 말 일주일 동안 HP학생들을 위해 블록세미나를 개최하여 수료증을 주기도 한 분)를 만난 것은 정말 우연이었는데, 너무나 반가워서 점심이 끝나자 부랴부랴 그의 연구실이 있는 의과대학 건물로 찾아가 보았다.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는 늘 말이 없는 편이다. 과묵하고 겸손하고 소탈하고항상 같은 모습이다.


 

<최동석, 이해원 교수, Fire 교수, 김영아 교수>

 

이제, 스탠포드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Cantor Center for Visual Arts가 있지만, 문을 닫는 날이라 생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앞뜰에는 로댕조각 공원(Rodin Sculpture Garden)이 있다.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로댕의 조각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이 스탠포드 대학교라고 한다. 어디 로댕의 작품 하나만 볼까?

 

<스탠포드 대학교 Main Quad에 있는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들(The Burghers of Calais)>

 

<좀더 자세히 보면모두들 영웅적 이미지는 없고 깊은 고뇌의 모습이다>

 

영재성이 있는 사람은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말한다. 로댕이 그랬던 것 같다. 이 작품은 영국과 프랑스간에 벌어진 14세기의 100년 전쟁 때 이야기다. 프랑스 북부 항구도시였던 칼레가 영국에 의해 점령되어 시민들이 학살될 위기에 직면하자, 칼레를 구하기 위해 시장을 비롯한 평범한 시민 6명이 목에 밧줄을 감고 영국왕 에드워드 3세 앞에 출두했다고 한다. 에드워드는 이들의 희생정신을 높이 사 모두 사면하고 칼레는 위기에서 벗어났단다. 이런 영웅적인 스토리를 형상화 한 것이 이 작품이다.

 

그런데 이 영웅들을 로댕은 왜 이리 고뇌에 찬 모습으로 그렸을까? 1884년 칼레시는 로댕에게 칼레시민들의 영웅적인 모습을 상징으로 만들어주길 원했는데, 그는 오히려 헌신과 죽음의 공포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들을 담담하게 묘사했다. 칼레 시민들이 이 작품을 비난하자 칼레시청에다 세우려던 계획을 실천하지 못했다.

 

진실을 표현하면 이렇게 불편해진다. 세월이 지나서야 사람들은 이 위대한 작품을 이해하게 되었다. 오늘날 교육계도 마찬가지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매우 불편해진다. 우리는 이렇게 불편한 진실 앞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훗날 로댕의 작품처럼 이 시대의 진실이 무엇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