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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이야기/교육을 생각한다

역량중심의 면접(2)_역량 개념의 고찰

역량(Competence) 중심의 선발


지능지수가 높은 학생이 일반적으로 학교성적이 높다는 오래된 신화가 있다.(강정자 외, 1960; 김미경 외, 1988) 하지만, 학업성적표 또는 학업성취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졸업 후의 업무성과와 인생의 장기적인 성공을 예측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1970년대부터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의 데이비드 맥클레란드(David McClelland) 교수는 지능보다는 역량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다.(McClelland, 1973) 당시 미국의 국무부 초급외교관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를 통해 지능과 역량의 차이가 명확히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연구의 배경과 핵심적인 결론은 이렇다. 적성검사 결과와 역사, 정치, 경제 등에 관한 기초지식 검사 결과를 기초로 채용된 초급외교관들이 주재국에 배치된 후 그들의 성과가 기대했던 것보다 낮게 나타나자 국무부는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맥클렐란드 교수에게 연구를 의뢰했다. 그의 연구를 통해 업무성과에 직접적으로 그리고 중대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적성이나 학교성적보다는 다음과 같은 정의적 특성, 즉 역량(competence)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Spencer & Spencer, 1998)

 

· 다른 문화권에서의 대인감수성(Cross-cultural interpersonal sensitivity)

· 타인에 대한 긍정적 기대(Positive expectations of others)

· 정치적 네크워크에 대한 학습속도(Speed in learning political networks)

 

이러한 역량요소들은 학교성적이나 적성과는 분명 다른 정의적 특성을 드러낸 것이다. 높은 성과를 지속적으로 내는 외교관은 이문화권 사람들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사회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타인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해 신뢰하고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라도 타인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잃지 않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역학관계 또는 이해관계를 신속히 파악하여 처리하거나 중대한 사안일 경우 상사에게 보고하는 등의 관계형성 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장기적으로 높은 성과를 창출하거나 사회적 성취를 이룩하는 특성을 갖는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 인지적 능력으로 대표되는 학교성적이나 적성검사 결과보다는 업무의 특성에 부합하는 역량요소를 보유한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예측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역량(Competence)의 정의

 

역량은 스펜서의 정의대로 “(특정한 상황이나 직무에서) 준거에 따라 효과적이고 우수한 성과창출의 원인이 되는 개인의 내적 특성(underlying characteristics causally related to criterion-referenced effective and/or superior performance)이라고 말할 수 있다.(Spencer & Spencer, 1998, p. 9)

 

여기서 “개인의 내적 특성”이란 다양한 상황에서 개인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개인적 성격의 심층적이고 지속적인 측면을 말한다. 또한 “원인이 되는”은 역량이 행동이나 성과의 원인이며, 따라서 행동과 성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끝으로 “준거에 따라”는 역량이 어떤 사람의 우수성이나 무능력을 구체적인 준거나 기준에 따라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기업경영에서 말하는 준거란 기업의 성과창출과 관련된 성과목표의 의미를 갖는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영업사원의 매출액, 연구자의 연구업적 등을 말한다. 학교 교육에서의 준거란, 계량화되긴 어렵겠지만, 전문성의 깊이와 인격적 성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량 정의의 활용

 

기업사회에서의 인재선발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러한 역량개념이 과연 고등교육기관의 학생선발에도 적용할 수 있느냐, 즉 성적 이외의 학생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내적 속성(underlying characteristics)를 변별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중등교육 현실은 오로지 시험성적을 향상시키는 것만을 위해 규격화되고 획일화된 교육환경 속에서, 학생 개개인의 경험의 폭과 역량발휘의 정도를 변별할 수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이 의문을 명확히 이해하고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한양대학교 재학 중인 1학년 학생 중에서 4명을 선정하여 모의인터뷰를 실시했다. 그룹별 분류를 보면, 상위그룹과 보통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2, 과학고와 일반고 각각 2명씩, 남녀 각각 2명씩이었다.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진행되는 개별인터뷰는 역량중심의 면접(Competency-based Interview, CBI)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네 학생 모두 공부하는 목적은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이었으나, 그 동기와 가치 그리고 내적 속성은 매우 달랐다.

 

어떤 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다른 데 있지만 부모의 끈질긴 회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부하고, 다른 학생은 수학문제풀이가 좋아서 공부를 계속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자신은 평생토록 수학문제만 풀면서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집안의 경제적 형편을 돕는 길은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에 공부하는 학생도 있었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다니던 과학고등학교를 그만 두어야 하는가를 고민했던 여학생은 급기야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외형적으로 획일화된 교육과정이고 규격화된 교육환경이었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놀라운 다양성이 숨어 있었다. 그들의 내적 경험과 사유의 다양성은 곧 역량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