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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록/에세이

『쿼바디스(Quo Vadis)』를 보세요

 


 

나는 어려서부터 기독교인으로 훈련받으면서 성장했다.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고, 성경도 외다시피 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회를 이끌었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다. 나중에는 청년들을 가르치기도 했으니까 크리스천으로서의 모범적인 삶을 살기 위해 꽤 열심히 애쓴 셈이다. 기독교야말로 진리요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고 이런 믿음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믿었다.




 

이런 굳건한 믿음은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사건에 의해 와르르 붕괴하진 않는다. 그 대신 철이 들어가면서 서서히 균열이 생겼다. 세계를, 인생을, 믿음을, 사랑을, 진리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독일에서 살면서, 여름방학 때마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기독교가 유럽사회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교회의 역사를 읽었다. 점차 한국의 개신교가 나에게 가르친 것들, 그래서 내가 지키려고 했던 신앙은 기독교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기독교의 본질은 지옥을 피해 내세에 천국으로 가는 구원의 문제도 아니고, 삼위일체나 세례와 같은 교리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었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현대인이 과연 예수처럼 또는 바울처럼 살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시대의 부조리에 저항하면서 말이다. 공의(公義)를 세우고 약자에 대해 공감하면서 말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개신교는 뿌리부터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승만은 미국 장로회 선교사들이 키운 인물이다. 그가 저지른 은밀한 패악질은 거의 대부분 밝혀졌다. 자신의 개인적 탐욕을 위해 정적들을 쓸어버리면서, 기독교 친일파들의 힘을 등에 업고 독재의 길로 들어선 인물이 바로 이승만이었다. 개신교의 뿌리는 비리와 부패였다. 한국 개신교는 예나 지금이나 더러운 권력에 빌붙어 그들을 축복함으로써 그들이 주는 떡고물과 함께 성장했다. 지금 그 더러운 뿌리에서 싹이 나고 성장하여 대형교회라는 부패의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로마 가서 제도가 되었고,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되었으며, 마침내 미국으로 가서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는 대기업이 되었다.

 

이런 대형교회들의 행패를 어찌할 것인가? 개신교가 속물주의적 자본과 권력을 숭배하면서 저지르는 패악질을 어찌할 것인가? 이것이 21세기 한국인에게 던진 질문이다.

 

ps.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다큐멘터리 쿼바디스(Quo Vadis)를 한번쯤 관람하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