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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이야기/코칭 및 자문

연결되어 있음(connectedness)의 끊어짐에 대하여

<질문내용>

교수님... 강의록까지 올려주시니 대단한 정성이시라고 생각됩니다. (거의 한 권의 책을 읽는 듯하네요.) 올려주신 워렌 버핏의 자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요즘처럼 모두에게 용기가 필요한 시절에 다시금 되새길만한 이야기입니다.

지난 시간에 한 분이 질의해주신 궁극적인 인간의 선함에 대하여... 저 역시도 자주 같은 질문을 던져 보고는 했습니다.

 

궁극적인 진리, 궁극의 이데아를 머릿속으로 알고 있더라도 이를 삶에서 행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마키아밸리적인 게임의 정치학, 표피의 정치학이 현실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닌지 누구나 한번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융의 원형이론을 빌지 않더라도 인간의 깊은 무의식 속에 원형적인 진리의 코드가 공유되어 있다는 실체는 직관적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더 나가 아이 같은 소박한 마음으로 인지의 지시에 앞서서 본연의 모습으로 선을 행하는 분들도 자주 봅니다.

 

그럼에도 내 자신의 현실 속에서 연결되기 위한 노력이 무위로 돌아갈 때마다, 궁극의 선함을 믿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때로는 고도의 게임을 수행하듯 나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배제하고 정치 게임의 논리로 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 혼돈을 느끼곤 합니다.

 

지난 시간에 교수님께서 답변하신 것을 스스로 내면화해 본다면... 결국 하나의 명제나 의식 속에 떠오른 논리의 천명과도 같이, 모든 문제를 한 괘 속에서 풀어낼 수 있는 Universe한 언명의 존재를 전제하기 보다는 내 자신의 실체적인 대가를 치러 하나하나 현실 속에서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실존의 선택 속에서 답을 이루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Be가 아니라 Become의 지향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역시 아직도 수행이 부족한지라 몸따로 마음따로... 쉽지 않은 길이라 생각됩니다.

 

PS. 교수님, 한가지 부탁 말씀은... 부족한 내공으로는 객관식 문제... 어려웠습니다. 명확한 논점이 연상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는데요.(물론 공부도 부족했지만요.^^) 혹시 해설을 간단히 부탁드려도 될지요. 간단한 것들도 있었지만 좀 복잡해 보이는 것들은 답지라도 있으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답변내용>

 

내가 지난 주에는 감기기운이 있어서 사이버캠퍼스에 들리지 못했었는데, 좋은 질문이 올라왔군요. 답변이 늦어져서 미안합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질문을 해줘서 고맙습니다.

 

질문을 요약해보지요.

 

우선, 일과 관련하여 부하직원들이나 동료와 때로는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도록 노력하지만, 때로는 상황에 따라 쥐어짜는 방식으로 태도를 바꾼다는 말이지요. 현실적으로 부하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마키아벨리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는데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를 물은 것이지요?

 

다음, 중간시험이 객관식이었는데도 생각보다 어려웠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문제풀이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지요?

 

질문에 대한 나의 이해가 맞다면 대답해보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직장생활에서 고민하는 대부분은 인간관계의 갈등과 스트레스입니다. 조직이 원하는 성과나 실적을 위해서 쥐어짜는 조직문화에서는 더욱 심한 불안과 초조, 좌절과 낭패를 느낍니다. 여기서 조직이란 어떤 실체라기보다는 상사와 그를 둘러싼 분위기입니다. 이렇게 상사와 분위기가 인간을 수단으로 보는 문화적 세팅에서는 관리자들이 자기 혼자서 인간을 “영혼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실존적 존재”로 보기가 어렵습니다.

 

인간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의 전제에 직면합니다. 굳건히 그런 신념을 갖고 있다고 해도 상사, 동료, 부하들이 사람을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 본다면, 그 신념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남들이 하는 대로 넓은 문으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올바른 신념에 따라 좁은 문으로 들어갈 것인가?

 

넓은 문으로 들어가면 당장은 편안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이 살벌한 상황에서 아귀다툼을 해야 하고, 그런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여러분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문이야말로 여러분을 성공과 행복의 길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길에는 고난과 어려움, 그리고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깨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나는 이것을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라고 부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마음챙김이라고도 번역합니다. 중요한 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볼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물을 볼 때, 특정한 범주 또는 시각에서만 바라봅니다. 그리고는 그것에 몸과 마음이 얽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내거나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보지 못합니다. 문제가 생길수록 더욱 문제에 집착하면서 문제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닫힌 마음 상태가 더욱 공고해집니다. 문제가 생기면 문제에서 떨어져서 문제를 완전히 다른 범주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깨어있는 마음이라야 이것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흔히 어떤 사람에 대해 평가를 내릴 때,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에 대해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사실 다른 면에서 본다면, 매우 섬세한 사람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또한 완고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릴 때도 그에 대한 나쁜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면에서 보면, 한결 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 측면을 다 볼 수 있는 마음을 우리는 깨어있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범주와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서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원래부터 선하고 원래부터 악한 것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에 의해 이것은 선하고 저것은 악한 것이라고 사람들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선과 악은 그래서 시대와 장소, 그리고 문화적 습속에 따라 다릅니다. 인간의 영혼이 선한 것은 그것에 아무런 편견과 선입견이 없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런 영혼의 울림을 듣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고정된 관점과 범주의 틀이 자리잡고 있어서 항상 그 틀로 사물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굳어있는 마음의 상태에 있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깨어있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아무쪼록 깨어 있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자신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결코 엄청난 고난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깨어있는 마음을 갖는 것은 마음의 프로그램을 바꾸는 훈련으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물이 다시 보이게 되고, 늘 보던 풀 한 포기도 새롭게 보입니다. 내 폐부로 들어나는 공기도 새로워집니다. 그 동안 나를 괴롭히던 인간관계도 새롭게 변화됩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사상을 잘 이해하게 해주는 문헌을 소개합니다. 강의에서도 소개했는데, 다시 한번 더 소개하니 꼭 읽고 깨어있는 마음의 상태로, 즉 좁은 문으로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을 성공적이고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이미 많은 학자들의 과학적 검증을 거친 것이므로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리처드 보이애치스/애니 맥키, 정준희 옮김, 『공감리더십』, 에코의서재 2007

엘렌 랑어, 이양원 옮김, 『마음챙김』, 동인 2008

존 카밧진, 장현갑 김교현 옮김, 『명상과 자기치유 상, 하』, 학지사 1998

장현갑, 『마음챙김』, 미다스북스, 2007

 

끝으로 중간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사람도 있고, 쉽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시험에는 객관식이지만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시험문제가 유출되면, 문제의 정답을 외우려 할 뿐 책을 더 찾아서 읽고 공부하거나 사고력을 높이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험성적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데도 말이지요. 그래서 정답이 무엇인지 알려주거나 공개적으로 해설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시험성적을 알고 싶으면, 조교인 정종훈 선생(010-4920-6576)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째서 그런 성적이 나오게 되었는지 그 이유까지 알고 싶은 사람은 나에게 직접 개별적으로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질문 다시 한번 감사드리구요. 혹시 추가적인 의문이 있으면 메일 주시기 바랍니다. 최동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