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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이야기

시장, 기업,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시장, 기업,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LG인화원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시장>, <기업>, <인간>을 재조명하고 경영자들이 이 세 가지 개념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면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보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나 자신도 이병남 원장이 작년 말에 출간한 책 경영은 사람이다(김영사 2014)에서 제시한 철학적 사유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적 치유의 길을 찾아보고 싶었다. 매우 창조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모든 기업에서, 모든 산업분야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이런 시도가 일어나야 한다.  


나는 사실 그동안 그런 시도의 일환으로 책을 쓰고 강의를 해왔다. 다시 쓰는 경영학』(21세기북스 2013)과『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21세기북스 2014)이 그것이다. 미국식 월스트리트 경영(학)이 우리에게 주는 폐해가 너무나 심대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존중되지 않은 상황, 즉 인간을 한낱 자원으로 간주하는 상황에서는 결코 생산성과 창의성이 높아질 수 없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사회적기업이든. 심지어 교육계와 같은 공공분야에서도 내 주제의 지향점은 생산성과 창의성이다. 생산성과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에게 인간과 조직에 관한 어떤 정신적 토대를 필요로 하는가? 그런 정신적 토대가 갖추어지려면 조직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고, 조직운영은 어떤 패턴을 유지해야 하며, 조직구성원들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나아가 거기에는 어떤 경영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지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LG인화원은 나에게는 <인간>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시장과 기업의 관점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는 미국식 월스트리트 경영에 익숙하다. 월스트리트의 경영자들은 지금까지 돈 버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서슴없이 저질렀다. 정부 고위관료들, 하버드를 비롯한 유명대학의 경제학/경영학 교수들, 투자은행의 고위임원들이 삼각편대로 스크럼을 짜고 가난한 사람들의 고혈을 뽑아 먹는 잔인한 행태를 보였다. 주류경영학은 이런 월스트리트 경영을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시켜 왔다. (인사이드 잡<Inside Job>이라는 다큐멘터리를 꼭 한번 보기를 권한다. 유투브에도 나와 있다.)

 

그러다가 그들이 들고 있던 금융공학이라는 도끼로 자신들의 발등을 찍었다. 그들 스스로 삶의 터전을 붕괴시킨 것이다.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인 것이 분명해보였지만, 아무도 처벌 받은 사람은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월스트리트의 더러운 행태를 정당화해왔던 경영학자들이 반성은커녕 아직도 월스트리트를 찬양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경영학자들이 자본주의에 중독되어 있다. 중독은 자신이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중독이라고 한다. 일단 자본주의에 중독되고 나면 돈은 신()이 되고 선()으로 변한다. 잘잘못을 가리지 못한다.

 

인간이 조직을 만든 이유는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조직이 인간을 수단이나 자원으로 활용하는 상태로 변질되고 말았다. 오히려 조직이 인간을 쥐어짜는 불안과 고통의 원천이 된 것이다. 이것이 미국식 주류경영학의 특징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나는 <인간>파트에서 실존주의 철학을 통해 인간의 참된 모습이 무엇인지 성찰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었다. 인간은 실존하는 존재이며 언어라는 상징을 통해 만물에게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부여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을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사상을 들어 설명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유명한 언명은 인간의 위상을 명확히 알려주고 있다. 그런 인간존중의 철학을 실제로 실현하고 있는 스위스의 구체적인 조직운영사례도 들었다. 이것이 이번 교육과정의 <인간>파트에서 LG임원들에게 가르친 핵심내용이다.

 

<시장>, <기업>, <인간>, <시장 기업 인간의 공진화>를 맡은 모든 강사들의 강의가 끝나고 마지막 날 패널디스커션 형식으로 토론이 벌어졌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토론과정에서 월스트리트 경영학과 인간중심의 경영학은 확연히 구분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패러다임의 이슈이기 때문에 분명하게 구별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수치목표로 쥐어짜는 월스트리트 경영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인간존중의 경영()이 더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구현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그런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중독된 사람들의 특징이다. 월스트리트 경영학은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 돈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인간중심의 스칸디나비아모델(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이 가장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당장 이 모델을 따라가지는 못한다하더라도, 자본추구와 인간존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철학적 제도적 고민에 앞서 있는, 그래서 인간의 실존적 평등과 기능적 불평등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게르만모델(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독일 등)이라도 따라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피라미드형 수직구조에서 명령과 통제, 지시와 복종, 억압과 착취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수평구조에서 상생과 나눔, 협력과 배려, 토론과 합의의 패러다임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조직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며, 조직운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조직운영의 플랫폼(platform)이다. 이 플랫폼이 앞으로 내 강의와 토론의 핵심이 될 것이다. 적어도 나의 경영철학과 사상을 이해한 기업에게는 이것이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 과정에서 나도 배운 것이 많았다. 패널디스커션이 학술토론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월스트리트 경영학이 인간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져가고 있는지를 알게 된 것은 아주 큰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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