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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이야기

기업윤리,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

기업윤리,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

 


이 자료는 서강대학교 지속가능기업 윤리연구소와 딜로이트가 주최하는 국제포럼(2015년 8월 26일, 그랜드 하얏트 호텔 남산 III룸)에서 토론자료로 발표한 것입니다.


핸슨 교수님 발표를 잘 들었습니다. 윤리개념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실천전략까지 포함된 매우 유용한 내용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윤리란 무엇인가? 그중에서도 오늘 주제인 기업윤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

 

이런 주제는 특히 한국사회에 너무나 시급하고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기업의 존재목적을 생각하기 전에, 그 기업에서 일하는 인간에 대한 성찰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인간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그러고 나서 그런 인간들이 모인 기업조직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를 따져봐야 합니다. 우리는 개개인의 복지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복지를 지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 사상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돈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미신을 믿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인간을 자원이나 수단이나 도구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Human Resource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미국에서 나온 말입니다. 기업인들은 그 리소스에서 더 많은 것을 뽑아낼수록 더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노동자를 더 쥐어짤수록 돈을 더 많이 번다는 생각은 아주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아주 천연덕스럽게 자기 자신을 자원이라고 부릅니다.

 

그 결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서로 갑과 을로 나뉘어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누가 더 갑질을 스마트하게 잘하느냐가 곧 경쟁력인 것처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되었나요? 최근에는, 그러니까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부의 불평등이 생겨났듯이, 그런 방식을 그대로 모방한 한국에서는 양극화가 미국처럼 심각해졌습니다. 한국이 미국보다 더 불행한 것은 일부 재벌기업들의 불법행위와 비윤리적 행태는 이제 도를 넘었다는 점입니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을 봅시다. 불법으로 선거를 치른 정치인들이 버젓이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고위관료들 중에는 국가정책을 자신들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기획하고 집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국방의무를 기피하고, 논문을 표절하고, 공금을 사적으로 유용하고, 위장전입한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심지어 사법부까지 전관예우라는 돈에 포획되어 버렸습니다. 고위법관들에게 따라 다니는 전관예우는 현대판 매관매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집니다. 그런데 윗물이 더럽단 말입니다. 이런 판국이니 기업윤리 같은 말은 아주 거추장스런 장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핸슨 교수님이 제시한 기업윤리를 회복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실천전략은 우리에게 커다란 의미를 준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생각해봅시다. 박정희 정부 이후 지금까지 돈을 벌고 경제를 성장시키려고 했던 모든 행위는 결국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 Human Wellbeing, Human Welfare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얼마 전에는 연극배우가 굶어 죽었습니다. 자살이 아닙니다. 굶어 죽었단 말입니다. 그 전에는 시나리오 작가가 굶어 죽었습니다. 이웃이 굶어 죽어도 모르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자살률 세계 1위의 나라라는 오명을 얻었습니다. 정말이지,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부정부패가 만연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공동체정신이 무너진 겁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런 것이었나요? 근본부터 뭔가 잘못되었음을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행동을 규정하는 윤리강령이나 법령이 없어서 기업윤리가 지켜지지 않는 걸까요? 강령을 더 세게 바꾸고, 법령을 더 촘촘하게 만들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법령이나 규정으로 과연 인간의 비윤리적 행동을 통제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합리와 부조리는, 인간이 인간으로 존중되지 않고 한낱 돈벌이를 위한 자원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병남 원장님이 쓰신 책 경영은 사람이다에서 제시하고 있듯이, 인간에 대한 관점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인간을 노동하는 존재로서의 자원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을 실존하는 존재(existential being)로 보는 관점도 필요합니다. 인간은 실존적으로 평등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노동하는 불평등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을 실존적 관점(existential view)에서 보면, 인간은 언어를 통해 이 세계를 자유로이 규정하면서 문화를 만들어 냅니다. 한마디로 상징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컵에 있는 물을 성수(聖水)라고 상징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가 바로 인간입니다. 이것이 실존(existence)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실존적으로 평등합니다.

 

그러나 인간을 자원활용의 기능적 관점(functional view)에서 보면, 심각한 기능적 불평등이 존재합니다. 으리으리한 사무실에서 전용응접실과 비서실이 따로 있고 기사가 딸린 전용차량에서 의전을 받으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엉덩이 하나 붙이고 앉을 자리 없이 남대문시장에서 장사하는 노점상도 있습니다. 이렇게 노동하는 인간의 모습은 기능적으로 매우 불평등합니다. 이제 한국의 지성인들은 이런 인간의 실존적 평등(existential equality)과 기능적 불평등(functional inequality)을 조화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유럽의 지성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참혹한 현실에 직면하여 노동하는 인간에 대한 기능적 측면보다는 영혼을 가지고 있는,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이 세계를 자유로이 규정하면서 문화를 만들어내는 인간으로서 실존적 평등성을 보다 더 강조해왔습니다. 그 결과 기업인들의 윤리의식은 주주의 이익보다는 이해관계자 그룹, 즉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는 올바른 인간관에 기초해서 공동체의식을 갖게 하는 사회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자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집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우리 사회를 이끄는 고위층은 부패했습니다. 어떤 사회든지 고위층이 부패하지 않고 그들의 행태를 맑게 해주는 역할을 맡은 그룹이 있습니다. 그것을 사회적 4대 천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교육계, 종교계, 사법부, 언론계가 그것입니다. 한 나라를 맑게 해주는, 절대로 부패해서는 안 되는 집단입니다. 4대 천왕에 속한 사람들이 나타나서 기업계의 불합리와 부패를 질타하는 것을 보면 한숨이 나옵니다. 이들도 똑같이 부조리와 부패에 연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윗물이 더러워지도록 방치하면서 자신들도 떡고물을 뜯어 먹었던 사람들입니다.

 

기업은 오로지 이들이 뿌려주는 물을 마시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더러운 물을 마시고 있는 셈이죠. 기업에서 마시고 있는 이 더러운 물을 우선적으로 깨끗하게 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업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제가 보기에는 몇몇 재벌가족을 제외한 기업계는, 우리나라를 이끌고 있는 고위층들의 행태에 비하면 오히려 더 양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컨설팅 현장에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애쓰는 기업인들을 가끔은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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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런 것처럼 참석자의 질문시간에 좋은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늘 시간은 부족합니다. 내가 보기에 아주 인상적인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결국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얘긴데, 윗물을 맑게 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핸슨 교수와 패널토론자의 답변이 끝나자 예정된 시간이 모자라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하려고 했던 답변은 이랬습니다. "행동강령과 규정을 강화해야 할 필요도 있겠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성역과 금기를 깨야 합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성역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오너 가문에 관한 것을 언급하는 것은 금기입니다. 성역과 금기가 존재하는 한 그 조직은 결코 민주화될 수 없으며 결코 기업윤리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겁니다. 경영을 민주화하면 기업윤리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마음 속에 담은 이 답변이 내가 이 포럼의 토론자로서 하고 말하고 싶었던 핵심내용이었습니다. 


갤러리

(참고로 이 사진들은 서승현 군이 찍어준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