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딸은 나를 또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번에는 런던 북쪽에 있는 캠든(Camden)의 재래시장을 꼭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카나리 워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여서 볼만한 게 많다고 합니다.
런던의 서북부에 위치한 캠든까지 지하철로 가서 걸어 다니기로 했습니다. 서울 남대문 시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비슷한가 봅니다. 씨끌벅적하고 애교 넘치는 짝퉁들이 즐비하게 있습니다.
오리지날을 그대로 복사하는 불법 짝퉁이 아니라 위트가 넘치는 짝퉁들입니다. 활기찬 Puma상표는 의식을 잃은 Coma상태로, iPod은 iPood로, 새출발을 의미하는 결혼식 상표는 game over로, National Geographic은 National Pornographic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펑크머리의 진수도 볼 수 있었습니다. 삶의 방식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습니다.
씨끄러운 시장통을 지나가는데 한 구석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습니다. 넋을 놓고 있었습니다. 소리 때문인지 금발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한번 들어 보실까요.
나는 잠시 보고 있었을 뿐인데, 아내와 딸이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나는 구석구석을 뒤졌습니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보물찾기를 마치고, 우리는 Primrose Hill을 향해서 걸었습니다. 서울로 말하자면 북한산 정도 되는 위치인데, 높이는 나즈막한 언덕입니다. 런던 주변에서 이곳이 제일 높은 곳이라는군요. 그나마 런던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유일한 언덕입니다. 저 아래 보이는 푸른 숲이 리젠트 파크(The Regent Park)입니다. 그 너머에 런던시내가 보입니다.
우리는 리젠트 파크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공원을 가로질러 내려오는 길은 정말 추웠습니다. 바람도 많이 불어서 햇볕이 드는 벤치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서울에는 찌는 듯한 더위일텐데, 런던에서 추위에 떠는 모습입니다. 담요를 덮어도 춥군요. 여름 피서로는 런던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공원 내에 있는 장미의 정원(공식 이름은 Queen Mary’s Gardens)에서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딸은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고 있군요. 옷이 임신복 같다고 했더니, 오늘의 컨셉이라는군요.
이제 다시 런던의 중심인 피카딜리 서커스(Picadilly Circus)로 돌아왔습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지요. 아내는 “세일”이라고 써 붙인 가게는 일단 들어가 봅니다. 사지도 않을 것을 왜 발품만 파냐고 투덜거리면, 그게 휴가와 여행의 재미 아닌가 되묻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인가 봅니다.
배낭을 하나씩 메고 상점가를 순례하느라 녹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해 떨어지려면 아직도 시간이 남았습니다. 여름의 런던은 저녁 9시가 돼도 훤합니다. 훤한 시간에 집으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죠. 우리는 뮤지컬을 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라이온 킹(Lion King)을 공연합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극장은 런던의 3대 명물(공원과 이층버스를 포함하여) 중에 하나입니다.
뮤지컬보다 런던의 극장을 체험하기 위해 제일 싼 좌석 표를 샀습니다. 그래도 그 유명한 Her Majesty’s Theatre의 3층 맨 위 구석자리였습니다. 영국에는 변변한 산업이라곤 금융과 관광뿐인데, 부시와 월 스트리트 애들의 불장난으로 전세계 금융이 쪼그라드는 바람에 관광산업도 맥을 못추고 있으니, 요즘 영국 경제는 말이 아닌 모양입니다.
아내는 극장에 들어가 앉자마자 골아떨어졌습니다. 나 역시 비몽사몽간이었습니다. 라이온이 나오는지 타이거가 나오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극장에서 조는 아내의 모습, 이쁘지 않나요?)
졸면서 봐도, 라이온 킹을 뮤지컬로 제작한 사람들의 상상력은 돋보였습니다. 역발상의 진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스토리도 감동적이지만, 애니메이션에서나 가능할 동물들의 액션을 배우들이 재현해 내는 모습은 창조적 상상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무대의 화려함과 조명, 의상, 그리고 음악…… 뮤지컬은 종합예술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래 전에 뮤지컬 캐츠(Cats)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는데, 라이온 킹도 그랬습니다. 아무리 뮤지컬이 좋아도 생리적 현상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나와 아내는 아깝게도 반 이상 졸았습니다.
라이온 킹은 디즈니가 만든 최고의 히트작입니다. 이 작품 하나로 수억 달러를 벌었다고 하죠.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는 얼마나 벌어들였을까요? 그렇게 벌려면 현대자동차 몇 대를 팔아야 하나요?
나는 이런 작품들이 얼마를 벌어들였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작품을 기획하고 만들었던 사람들이 내뿜었을 정신적 에너지가 수많은 사람들을 공감시켰고, 그들의 정서와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입니다. 그 과정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경험했을 행복감을 우리는 중시해야 합니다. 설사 라이온 킹이 흥행에 실패했더라도 그 과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행복감은 그것 자체로 소중한 가치를 갖기 때문입니다.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그들의 상상력과 창조성이 부럽습니다. 손끝의 재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 잘 보고 좋은 대학을 나온다고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시험성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시험은 상상력을 죽입니다.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 리처드 브랜슨, 조앤 롤링 ......
나는 우리나라 교육이 점점 살벌해지고 있는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교육부처 고위층과 서울시 교육감의 교육정책을 보니까, 아이들에게 시험성적으로 경쟁을 시켜서 학력을 올리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사들에게는 성과급을 더욱 차등화하여 교사들끼리도 서로 경쟁시키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교사들이 더 잘 가르치게 될 것이라고 믿는 모양입니다. 그것은 환상입니다. 성과급이 인간을 어느 정도로 타락시키는지를 최근의 월스트리트 붕괴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를 다시 살리는 혁명적인 처방을 생각해야 합니다. 핀란드와 같은 교육방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라이온 킹과 해리포터가 과연 성과급을 차등 지급했기 때문에 나온 것일까요? Her Majesty’s Theatre를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이런저런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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