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이야기/영국여행 이야기

영국여행 이야기(1)_카나리 워프(Canary Wharf)

딸의 아파트 발코니에서... Boardwalk Place, Canary Wharf

삶은 여행입니다. 공간적 여행이기도 하지만, 시간여행이기도 합니다. 딸이 벌써 훌쩍 커버렸습니다. 멀리 떨어져 사니까 더 보고싶어집니다. 잘 지내고 있는지 늘 걱정이 됩니다. 또 딸을 보러 갔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딸이 사는 아파트 발코니에서 런던의 여름을 한가로이 즐기고 돌아 왔습니다.

어른들이 나이들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결혼할 나이가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작년에도 여름휴가를 영국에서 보냈는데, 올해도 7월 30일부터 8월27일까지 영국을 여행했습니다. 나는 애초에 열흘이나 아니면 길어도 2주간 정도 피서를 겸해서 영국에 다녀올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늘 여행을 좋아해서 이번에는 내가 양보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길게 여행과 피서를 겸해서 다녀왔습니다. 일수로 따지면 29일간 근 한 달을 영국에서 보냈습니다. 물론 그 중에서 8일간은 동구라파를 여행했으니까 20여일을 영국에 있었던 셈입니다. 이번 여행을 시간 나는 대로 시리즈로 정리할 예정입니다.

런던은 여름날씨가 생각보다 덥지 않습니다. 선선하기 때문에 피서하면서 역사를 배우기에는 아주 좋은 여행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사, 특히 유럽의 역사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행하면서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은 나에게 과외의 소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은 생각했던 것보다 개방적인 나라였습니다. 나는 독일에서 유학했던 경험 때문에 영국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독일사람들은 영국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 역시 그런 영향을 받았겠지요.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장인정신으로 일하는 독일인의 모습보다는 지팡이 든 신사복 차림의 영국인들에게 친숙하기는 그렇게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작년과 금년의 여행을 통해 영국과 영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물론 딸아이가 살고 있는 나라라는 것 때문에 더 인상이 좋아졌는지도 모르지요. 딸은 영국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애비가 경영학을 공부한 데 영향을 받았는지 파이낸스와 매니지먼트를 전공하고 지금은 런던의 유럽계 투자은행에서 business analyst로 일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동안 치열했던 내 삶의 환경 때문에 아들과 딸의 교육에 크게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어느 부모나 늘 그러하겠지만, 아이들에게 충분히 지원해 주지 못한 것에 늘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공부하는 기간이 더 길었던 탓에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했어야 했습니다. 부모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진로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어려서부터 배웠는지도 모릅니다. 지나놓고 보니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지만 교육적으로 그런 정책이 더 좋았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내가 돌보지도 않았는데 어느덧 아이들은 다 성장했고, 이제 자신들만의 인생의 갈 길로 당당히 들어섰습니다.

 

일류대학을 보내기 위해 아이들에게 책가방까지 싸주고 하루 일정표까지 일일이 챙기는 부모가 점점 늘고 있는 상황을, 그리고 아이들의 대학등록금은 물론이고 결혼자금까지 마련해주는 것이 일반화되어 가는 세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독일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듯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과연 부모로서 우리 아이들에게 더 많이 지원했더라면 더 크게 성장했을까? 부모가 아이들에게 얼마만큼 지원해 주어야 아이들이 당당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지원해 주었을 때 그들의 성장에 진정으로 도움이 될까? 비행기 칸에서 이런저런 잡념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행기 창문을 열었더니 런던시내가 선명히 보였습니다

어느덧 창 밖으로 런던 시내가 들어오더니 런던아이(London Eye)가 나타났습니다. 왼쪽 아랫쪽에 보이는 휠이 런던아이입니다. 영국항공(British Airways)이 새천년을 기념하여 건축한 것으로 자전거 바퀴모양으로 만든 세계에서 가장 높은 135미터의 순수 관람용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런던탑(Tower of London)과 타워브릿지(Tower Bridge), 빅벤(Big Ben) 등과 함께 이제는 런던의 상징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하철을 타고 히드로에서 런던 시내로...

히드로 공항에 딸아이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딸이 사는 런던의 카나리 워프(Canary Wharf)로 갔습니다. 런던의 지하철은 아주 비좁고 공기도 좋지 않습니다. 100년도 훨씬 이전에 건설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요금에 비해 쾌적함은 서울 지하철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운행방식은 매우 합리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와 같은 이방인이 지하철 노선을 갈아탈 때도 거의 실수하지 않도록 표시가 잘 되어 있습
니다. 서울 지하철에서도 가끔 잘못 타는 바람에 당황한 적이 많은 나로서는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또 다시 영국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전형적인 카나리 워프의 주거지 모습. 멀리 밀레니엄 돔이 보입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은 벌써 어스름했습니다. 여기가 전형적인 카나리 워프(Canary Wharf)입니다. 요트 계류장을 곳곳에 만들어서 물과 시민이 함께 어울리도록 건설되었습니다.

런던의 중심지인 시티지역이 너무 좁아서, 버려진 땅처럼 여겨지던 런던 동부의 템즈 강가에 있던 카나리 워프(Canary Wharf) 지역을 재개발했습니다. 카나리 워프는 템즈강이 런던의 동부지역을 말발굽처럼 꼬부라져서 흘러가는 바로 그 지점의 강북지역을 말합니다. 이 지역은 런던 중심지와 경전철로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구(舊)금융중심지인 시티지역에 있는 증권거래소, 영란은행(Bank of England), 로이즈보험사(Lloyd's), 유비에스(UBS), 도이치은행(Deutsche Bank), 스코틀랜드왕립은행(Royal Bank of Scotland) 등과는 15~20분 거리에 있습니다. 

런던에 관한 책은 꽤 많습니다.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압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런던 - 숨어 있는 보석을 찾아서』(전원경, 리수 2008)입니다. 카나리 워프는 이상하게 이 책에도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카나리 워프(Canary Wharf)는 런던이, 아니 영국이 21세기를 맞이하면서 가장 야심 차게 시작한 지역 개발프로젝트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합니다. 이렇게 새로 개발된 런던의 금융중심지가 카나리 워프(Canary Wharf)입니다. 영국의 금융감독청(Financial Services Authority)과 에치에스비시(HSBC), 뱅크오브어메리카(Bank of America), 바클레이즈 캐피탈(Barclays Capital), 시티뱅크(Citigroup), 모건 스탠리(Morgan Stanly), 크레딧 스위스(Credit Suisse), 로이터(Reuters) 등 세계적인 금융기관과 언론사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금은 명실 상부한 금융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부동산을 개발하려면 이렇게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단순한 땅파기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금융중심지로 변한 카나리 워프의 모습

런던은 템즈강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는 도시입니다.

수변도시 런던(Waterfront City London)! 

카나리 워프(Canary Wharf)의 건축물들은 사진에서 보듯이 마치 베네치아로 느껴질 만큼 물 위에 건설되었습니다. 빨간 경전철이 물 위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좌측에 라운드로 보이는 건물이 바클레이즈 캐피탈과 모건 스탠리입니다. 시티그룹은 가운데 높은 건물입니다. 멀리 한가운데 솟아있는 것이 클리포드 챈스(Clifford Chance)라는 법률회사 건물입니다. 오른쪽 높이 보이는 건물이 리만 브라더스(Lehman Brothers)입니다. 얼마 전에 파생상품을 잘못 다뤄 파산했는데, 당시 많은 기자들이 리만 직원들과 인터뷰하려고 카나리 워프에 몰려드는 바람에 그 일대가 난장이 되기도 했답니다.

고든 브라운 총리

영국의 노동당 정부가 1997년 들어선 이후 지금의 고든 브라운(James Gordon Brown, 1951~) 총리가 재무장관시절 런던시장과 함께 금융특화지역으로 카나리 워프(Canary Wharf)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당시 영국에는 관광 이외에는 변변한 산업이 없었습니다.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이 금융허브로서의 꿈, 상상력, 그리고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황무지였던 땅을 유럽의 금융중심지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영국은 이제 무력이 아니라 금융으로 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 사람의 꿈, 상상력, 그리고 비전이 사회를 이렇게 엄청나게 바꿀 수도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실제로 외화주식 거래, 외환거래, 장외파생상품 거래량은 이미 뉴욕의 월 스트리트를 넘어선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세계의 돈은 런던에서 돈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 세대에도 이렇게 꿈꾸는 지도자가 나올 수 있을까요? 글쎄요. 우리 세대는 솔직히 상상력의 결핍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다들 열심히 땅 파면 돈이 되는 줄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런던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물이 함께 하는 아름다운 수변도시입니다. 한강을 잘 치수하면서 서울을 수변도시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한강물을 끌어다 흘려보내는 방식 말고, 한강물 자체를 시민들이 바로 옆에서 즐길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런던처럼 말이죠.

전형적인 카나리 워프의 주거지 모습

저녁 어스름한 시간이라 사진이 어둡게 보입니다. 사무실로부터 걸어서 10분 거리에 딸이 사는 아파트가 있습니다. 왼쪽의 6,7층짜리 아파트인데, 템즈 강에서 물을 끌어와 요트가 정박할 수 있는 계류장이 보입니다. 물가라서 그런지 항상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딸의 아파트 발코니에서 보이는 전경

아파트의 발코니로 나오면 템즈강 건너편에 있는 밀레니엄 돔이 보입니다. 이 돔은 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해 런던의 명물이 되도록 야심적으로 만들었는데, 결국은 런던의 흉물이 되었다는군요.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문외한인 내 눈에는 멋있어 보이는데. ……

밀레니엄 돔

템즈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밀레니엄 돔이 그로테스크한가요?  런던의 잿빛 하늘아래 뒤집힌 대형접시에서 솟아오른 크레인은 뭘 의미하는 걸까요?(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