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에서 며칠을 지내고 우리는 다시 고속도로 M6를 타고 리버풀(Liverpool)로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좁은 시골길을 지나야 합니다. 윈더미어 호수가에 도착하면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페리를 타기로 했습니다.
페리를 타고 윈더미어(Windermere) 호수를 건너는 것도 천연의 모습입니다. 물론 차들이 페리에 실리지만 이런 곳에서 살면 백 살도 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고속도로 M6의 모습을 감상하면서 육교 위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랑카스터(Lancaster)를 지나 리버풀로 가는 중입니다.
우리는 윈더미어를 떠나는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이곳에서 초막집을 짓고 살았으면 했습니다.
윈더미어 호수
호수의 페리 선착장도 아름답습니다.
윈더미어(Windermere) 호수에 있는 페리 선착장
저녁 때가 돼서야 리버풀에 도착했습니다. 숙소를 미리 정하지 않고 왔기 때문에, 지나가는 길목에 보이는 유스호스텔에 들어갔습니다. 내가 유스호스텔에서 잠을 자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입니다. 값싸고 시설도 좋은 편이지만, 전혀 모르는 여행객들과 함께 자야 하는 게 다소 불편할 뿐입니다. 내 옆에 침대에 자리잡은 젊은이는 호주에서 온 여행객이었습니다. 한 달간의 계획으로 영국전역을 돌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비틀즈를 보러 나갔는지 아직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유스호스텔의 아침은 젊은이들을 위한 식사라서 B&B 조식보다 더 푸짐했습니다.
항구 부속 건물들 멀리 한가운데 뾰족뾰족하게 솟아 있는 건물이 메트로폴리탄 카톨릭 성당 리버풀은 1700년부터 1807년 사이에 수많은 흑인노예들을 거래한, 유럽에서 가장 큰 노예무역항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노예들이 거래되었겠죠 리버풀의 상징 알버트 독(Albert Dock) Harbour Board Building Albert Dock Harbour Board Building 멀리 보이는 Liverpool Cathedral, 세계 최대의 성공회 성당입니다. Harbour Board Building Salthouse Dock
리버풀은 영국 서부의 최대 항구도시이기도 하며 비틀즈(Beatles)를 낳은 도시이기도 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비틀즈가 리버풀을 낳은 것 같습니다. 요즘 고대가 김연아를 낳았느니, 김연아가 고대를 낳았느니 말들이 많습니다. 출산의 고통과 희생이 없이는 결코 아무 것도 낳을 수 없죠. 고통과 희생을 전혀 치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를 낳았다고 하니까...
어쨌든 아름다운 도시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리버풀은 노예무역으로 번창한 도시라는군요.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는 성장할 수 없지요. 부모의 희생이 없이 자녀들이 잘 자랄 수 없듯이 말입니다. 자본주의가 이토록 성장하는 것도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랐기 때문이죠. 18,9세기 영국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경제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인클로저(enclosure)운동을 통한 농민들의 희생과 노예무역 때문이었고, 20세기 미국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기반에도 흑인노예들과 아시아인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개인들이 부자가 되는 것도 노동이라는 값진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학생들이 공부에 몰입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미래의 성공과 발전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이 희생이 없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성공에는 자기 자신이 희생하든지 아니면 타인이 대신 희생해 주든지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공에 관한 자연법칙입니다.
성공이나 발전과 성장은 희생과 고통을 먹고 크는 열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공과 발전과 성장을 원하면서도 희생은 싫어합니다. 희생과 고통이 우리의 삶의 조건인데도 말입니다.
만약 내 몸의 어떤 세포가 죽지 않고 계속 살아있다면, 그것은 큰일입니다. 암세포는 생존의 근거인 숙주가 죽을 때까지 죽지 않고 성장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희생이 없는 열매는 없습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많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는 죽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비틀즈의 고향에 오자 아내는 신바람이 났습니다. 비틀즈의 모든 것이 여기 있습니다. 비틀즈가 활동했다는 캐번 펍(Cavern Pub). 맥주 한잔 하려고 했지만, 자리가 없었습니다.
리버풀에 도착해서 놀란 것은 도시를 비틀즈가 먹여 살리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온통 비틀즈였습니다. 예전에는 노예무역으로 번창했던 항구가 이제는 비틀즈로 먹고 산다? 로큰롤의 황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비틀즈에도, 그리고 그들의 음악에도 그리 큰 관심은 없습니다.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그냥 취향인데, 조용한 음악이 좋습니다.
비틀즈가 유명하게 된 이유를 최근에 읽은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비틀즈는 함부르크의 어느 클럽에서 엄청난 양의 공연과 연습을 통해, 어떤 음악도 소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기량이 향상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10,000시간 연습의 법칙이라고 했습니다. 이 숫자를 매직넘버라고도 했습니다. 어느 분야든 세계적인 거장들은 이 매직넘버를 거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0,000시간을 희생하면 그 분야에서 세계적인 전문가가 된다는 얘깁니다.
Anglican Cathedral Church of Christ, 사진에서는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무지하게 큰 성당입니다.
우리는 리버풀 대성당(Anglican Cathedral Church of Christ)으로 올라갔습니다. 영국에서 제일 큰, 아니 세계에서 제일 큰 성공회 성당입니다. 제일 높은 아치와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 그리고 가장 무거운 종이 여기에 있습니다. 1910부터 짓기 시작해서 1978년에 끝났으니까 대략 70년간 지은 성당입니다. 런던에 있는 세인트 폴(St. Paul) 대성당은 리버풀 대성당의 반밖에 안 된답니다.
유럽여행에서 늘 느끼는 것인데, 어디를 가든지 그 규모에 놀란다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왜 이렇게 크게 만드는 걸까?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들어서 얻는 게 뭘까? 사람들이 큰 것을 보면 경외감을 느끼기 때문일까? 교회가 신자들에게 크기로 경외감을 느끼도록 하려는 걸까?
이 지역에 이렇게 큰 성당을 지은 것은 노예무역에 대한 반성과 참회의 뜻일까요? 아무튼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의 소박함에 비해 유럽인들은 건축물의 규모를 압도적으로 크게 만들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몇 번씩 갈아탄 후에도 수십 계단을 걸어서 성당의 꼭대기에 올라왔습니다. 고생한 보람이 있습니다. 리버풀 시내와 대서양, 그리고 멀리는 북쪽의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까지 볼 수 있답니다.
집을 미음자로 지은 것이 특이하네요
가운데 붉은 벽돌 건물이 알버트 독(Albert Dock)
약간 오른쪽에 있는 깔대기 모양이 메트로폴리탄 카톨릭 성당, 현대식 건축물입니다. 리버풀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항구에 나가 바다와 배를 보았습니다
리버풀을 떠나 런던으로 내려 오는 길에 우린 뜻하지 않게 웨지우드(Wedgewood) 공장과 숍에 들렀습니다. 계획에 없던 일정입니다. 고속도로 길가에 있는 표지판을 보고 나는 그냥 가자고, 아내는 잠시 들려보자고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나이 들면서 아내의 말을 무시할 수 없게 됩니다.
웨지우드로 가는 숲 길 참 예쁜 그릇들이 많았습니다. 아내와 딸은 눈이 번쩍번쩍 했습니다. 눈요기감도 많았습니다 리버풀 사진책자 표지
웨지우드 공장은 숲 속에 있었습니다. 그 숲을 지나는 길이 '공장방문은 시간낭비'라는 내 생각을 상쇄했습니다.
웨지우드를 세운 창립자의 동상이 공장 정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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