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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

치료란 무엇인가(1)_칼 야스퍼스의 경우

질병에 대한 치료행위는 의사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환자는 자신의 고통을 치료해줄 의사 앞에서 무기력합니다. 의사의 일방적 처방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의사와 환자는 결코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하지 않습니다. 의사는 질병에 대한 전문가지만, 환자는 그렇지 못합니다. 정보와 지식의 차이는 힘의 격차로 작용합니다. 정책입안자와 수혜자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의 실존적 사유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는 의사로서의 경력과 그 경력에서 오는 철학적 사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정신과 의사였습니다. 정신병리학 전문가로서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그로 하여금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 주목하게 했고, 철학적 문제에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치료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환자의 실존적 체험을 이해해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의사가 환자의 병력만을 보아서는 안 되고, 가족, 직업, 사회적 관계 등 개인사의 상황을 잘 이해했을 때, 비로소 온전한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과학문명은 인간의 육체에서 발생한 고통과 질병을 처치하거나 떼어냄으로써 온전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이것은 온갖 실험적 증거와 통계적 확률에 근거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처방이 어떤 환자에게는 들어맞을 수 있으나, 다른 환자에게는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들어맞지 않은 처방을 받은 환자에게는 그것이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완전히(100%) 잘못된 처방일 뿐입니다.

 

이것은 마치 서구의 정교한 수학적 모델이 이 세계를 잘 설명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결정적인 것은 하나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수많은 통계자료와 그 분석적 계량모형, 그리고 그것을 신봉하는 수많은 경제학자들은 세계적 금융위기 상황을 전혀 예견하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요즘과 같은 위기상황에서도 온전한 해결책 하나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경제학자들끼리도 갈팡질팡합니다. 가이트너와 크루그먼은 똑 같은 통계수치를 보고 서로 다른 얘기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 동안의 우리가 그토록 신봉했고, 또한 매우 합리적이라고 여겼던 수학적 모델들은 사실상 완전히(100%) 틀린 모델이었던 셈입니다. 각자 자기 입장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완전히 달리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동안 병원에 여러 번 신세를 진 사람으로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 책은 한국야스퍼스학회에서 엮은 논문집인데, 야스퍼스의 실존철학적 사유와 치료의 문제를 정리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야스퍼스가 말한 실존적 치료는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실존적 치료는 단순한 의학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학 전체의 문제이자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명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이번 금융위기를 통해서 근대문명이 추구했던 합리적이고도 차가운 해법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존적 이해와 체험을 중시했던 야스퍼스의 사유에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존적 체험이란 환자가 처한 구체적이고도 실제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환자가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아로서 치열하게 살아 왔던 상황이나 사업의 실패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면, 의사는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육체적 질병이든, 정신질환이든, 사회적 갈등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마치 정책입안자들이, 현장에서 시민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이해해야 제대로 된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통계숫자만으로 입안하면 사회적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상황이나 국가적 정책과제들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보면, 주장만 있을 뿐 이러한 실존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매우 부족한 상태입니다. 정책입안자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현장의 실존적 상황을 몸소 체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의사는 환자가 되어 봐야 합니다. 정책입안자들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판자촌과 옥탑방에서 살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카드빚에 내몰려 봐야 합니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봐야 합니다. 한두번 광고용이 아니라 매일 말입니다. 그러면 사회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의사도 환자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조건의 희생자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가 환자를 실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여러 가지 환경적 조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의사가 환자를 대면할 수 있는 시간과 충분한 의료수가, 양질의 의료인을 양성할 수 있는 의료시설과 의료장비가 충분히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는 것은 재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이자 철학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조건이 이루어져야 환자와 의사의 실존적 만남을 통해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적 갈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