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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록

아들이 제대하다

아들이 사병으로 군대를 마쳤습니다. 이등병에서 병장으로 승진을 거듭하더니 오늘 드디어 제대했습니다. 외국에 유학하는 아이들은 대개 면제를 받거나 공익요원으로 빠지고 싶어합니다. 그게 안 되면, 장교, 카투사, 통역병 등으로 복무하고 싶어합니다. 어떻게든지 군대생활을 쉽게 하려고 합니다. 외국유학 중인 학생들이 군대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길을 찾는다는 몇 가지 사례를 알고 있습니다. 나의 아들은 스스로 군대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기를 바랐습니다. 해병대를 가면 어떨까 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포기했습니다.


세 살 때 모습

두 살 때 모습. 이랬던 아이가 군대를 갔으니, 나도 많이 늙었지요.


그런데 2년 전 묵묵히 제 발로 걸어서 신병훈련소에 입대했습니다. 자대에 배치되고 얼마지나지 않았을 때, 부모의 직업을 어떻게 알았는지 부대장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장병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만한 강의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있는 부대에서 부탁한 것인데 못할 리가 있겠는가? 일정을 조정해서 부대를 찾아 갔습니다. 인생을 풍요롭게 잘 사는 법에 대해 강연했습니다. 예전에 컨설팅할 때 국방부 장성들을 상대로 강연한 적은 있지만, 실무에서 떠난 후에 장병들에게 강연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장병들에게 강연을 마치고 부대원들과 함께... 가운데가 아들, 그 오른쪽이 부대장


약관의 나이에 있는 20대초반의 병사들 중에 약 10%는 졸고 있었습니다. 20대 후반~ 30대초반의 장교들은 그래도 메모를 하는 시늉을 보였습니다. 병사들이 얼마나 피곤해 보이는지 가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풍요로운 인생의 길에 대해 열변을 토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강연이 끝난 후 중대장의 말에 의하면 오늘 강연은 아주 양호한 편이었답니다. 강연회에서는 대개 2/3가 존답니다.

 

생활관에서... 생활관 말반이라서 정신 없을 때입니다.

 

군대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만 보아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군대를 피해보려고 애쓰는 사람은 인간의 사회에 대한 도덕적 의무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역량의 용어로 말하면, 정직성 또는 성실성(Integrity, ING)의 수준이 낮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활관 복도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군대는 정말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한반도의 현대사가 남긴 시대의 아픔입니다. 군복무를 정상적으로 마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국가에 대한 마음의 응어리가 남아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에게 군대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거론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일입니다. 병역을 필하지 않은 사람은 지도자가 될 자격을 상실한 것이죠. 병역이 불투명한 사람들이 지도자의 자리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굳건히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군 복무가 그렇게 힘든 일로만 채워지지 않습니다. 휴가를 나왔을 때, 마침 킨텍스에서 서울모터쇼가 있었습니다. 차안을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들은 이제 앓던 이를 뽑은 것만큼이나 시원할 것입니다. 군대생활이 조금은 삶에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군생활에서 무좀에 걸린 것, 이마에 여섯 바늘이나 꿰매야 하는 큰 상처를 입은 것 등 부정적인 아픔도 있었습니다. 부대청소차 뒤꽁무니에 올라타고 쓰레기 국물을 뒤집어 쓰면서 따라가야 했던 이등병의 설움을 겪었습니다.


평소 스포츠카를 좋아하더니만, 역시 포뮬러 원에 출전하는 괴상하게 생긴 차 앞에 섰습니다.

 

그런 일은 사회에서는 돈 주고도 해볼 수 없는 값진 경험일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긍정적인 면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서부터 유학생활과 미국대학에서의 공부과정이라는 남다른 특혜를 입고 자란 아들이, 앞으로 생애를 거쳐 언제 그런 쓰레기 국물을 뒤집어 쓸 일이 있겠습니까? 험한 일, 지저분한 일, 위험한 일을 군대에서 쫄병이 아니면 해볼 수 없습니다. 이보다 더 소중한 경험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대강연을 마치고, 역 대합실에서 헤어지는 순간


이런 귀한 경험을 하게 하는 군생활은 정말이지,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아들이 더 열심히 잠재력을 연마하고 일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의 마음을 갖고 그들을 돕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기 이익만을 챙기지 말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일에도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본연의 공부와 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장하다, 우리 아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