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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록

<술 먹는 사회>에서 <책 읽는 사회>로


지난 여름 휴가를 다녀온 이후에 처음으로 주말에 23일간(2008.10.24~26)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 위치한 드르니오션리조트(www.deureuni.com)에서 보냈습니다. 소나무 숲에다 아름다운 통나무집을 지어서 펜션처럼 운영되는 곳입니다. 13천 평의 해안가 언덕에 지어서 양쪽으로 바다가 보입니다.

영어교육회사인 하이잉글리시(www.hienglish.com) 제이윤 사장의 도움으로 그곳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둥글래>라는 통나무집에서 잤는데 아래층은 온돌난방이 되지만, 이층에는 전기장판으로 난방을 합니다. 뜨끈하게 잘 잤습니다. 이번에 가져간 책은 두 권이었습니다.


엘렌 랑어, 이양원 옮김, 『마음챙김』(Mindfulness), 동인 2008

데보라 프라이스, 진우기 옮김, 『머니 테라피』(Money Therapy), 양문 2001


다 읽지 못했지만 많은 것을 얻고 돌아왔습니다. 삼봉 해수욕장, 가경주와 안면도 끝자락에 있는 영목항까지 들려 어촌을 구경하면서 해변을 걷기도 하고 오랜만에 바닷바람을 쐬었습니다. 태안군 고남면 고남리에 들러 굴 까는 노부부에게서 굴을 2kg이나 샀습니다.


여러분은 굴 까는 이 부부의 연령대를 맞출 수 있을까요? 50? 60? 70대?

나는 50대 후반쯤으로 생각했습니다. 잠깐 동안의 대화에서 할아버지는 39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70세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바닷가에서 굴 까는 것을 천직으로 살아 왔을 노부부는 그 일을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늙을 리가 없겠지요. 시장의 주문에 따라 꿀을 까서 납품하고 있었습니다. 단순 가공업을 하는 셈이죠. 이 시대의 장인(匠人)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시골 노인들이 도회지 노인들보다 더 늙어 보이는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생각이 편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2kg이면 충분할 텐데 저울금도 아주 후하게 주었을 뿐 아니라 옆에 있는 텃밭에서 고추 무 파 등을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고까지 했습니다. 아내는 신나서 한줌씩 캐왔습니다. 저녁상이 상상외로 풍성했습니다.

<수선화>라고 이름 붙인 옆집에는 젊은이들 여러 명이 투숙했습니다. 아침 일찍 산책 삼아 나갔다가 깜짝 놀란 것은 그 옆집 발코니에 빈 소주병 수십 개가 모여있는 것이었습니다. 밤중에 좀 시끄럽다 했더니 술 마시면서 밤새 놀았던 모양입니다. 왜 젊은이들이 모이면 술로 밤을 샐까요? 제정신으로는 서로 할 말이 없어서일까요? 술이 과하면 정신을 혼미하게 하기 때문에 횡설수설 중언부언을 마구 해대는 데, 그들은 그것을 맹자가 말하는 호연지기(浩然之氣)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6,70년대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술보다는 사회적 이슈를 토론의 대상으로 여겼던 것 같은데, 지금은 독재와 같은 사회적 이슈가 사라졌기 때문일까요? 직장에서도 술을 먹어야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되기 때문일까요?

 

아무튼 술을 잘 먹어야 비즈니스가 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독특한 문화인데, 제정신이 아닌 상태라야 비즈니스가 된다는 것은 뭔가 앞뒤가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술이 아니라 책에 취한 채 사회적 이슈에 대해 토론하는 문화가 젊은이들 사이에 정착되게 할 수는 없을까요?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 처음으로 가르치는 것이 술 문화입니다. 선배나 상사 앞에서는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마시지 못하고 옆으로 돌려서 먹는 못된 버릇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생겨난 건지 모르겠습니다. 술잔을 부딪칠 때도 상사의 술잔보다 더 높여서는 안 되는 규칙도 있다지요. 폭탄주 제조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달하고 있습니다. 그걸 잘해야 리더십이 있는 줄 아는 세상이 됐습니다. 술좌석의 예의도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한 달에 책 한 권도 읽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도록 가르치지는 못할 망정, 못된 술버릇부터 가르치는 이 엽기적인 문화를 우리는 왜 반성적으로 보지 못할까요.


일본인은 벌써 노벨상을 16명이나 받았습니다. 우리는 평화상 한번 외에는 아직 없습니다. 단순히 숫자로만 비교하면 우리의 16배나 됩니다. 인구는 대략 3배 정도밖에 안 되는데 말이죠. 그것도 남북한 합치면 두 배밖에 안 됩니다. 위계질서를 잡으려고 술 먹는 것부터 가르치는 사회에서 노벨상을 더 기대할 수 있을까요? 학문적인 발전은 그 사회에 그 만한 저력을 축적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술 먹는 문화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책을 읽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어떤 책이라도 좋으니 책을 읽는 것을 어려서부터 습관화할 수는 없을까요? 그것이 직장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도록 할 수는 없을까요? 은퇴 후에도 책을 떠나지 않도록 할 수는 없을까요? 우리 민족이 책을 읽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만드는 어떤 묘수는 없을까요? 굴 까는 노 부부처럼 20년은 젊어지려면 자기 분야에서 장인(
匠人)이 되어야 한다고 연구결과로 발표하면 안 될까요? 아니, 책을 읽은 것만큼 무병장수한다는 연구결과는 어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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