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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록

아름다운 은퇴, 그리고 용기있는 시작

시골학교출신인 나는 70년대 초반 서울로 올라와서 가난한 동네인 한양대학교 뒤편의 조그마한 교회에 다녔습니다. 교회이름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홍익교회(www.hongic.or.kr)였습니다. 복음으로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몇 년을 다니다 이리저리 이사를 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유학가고 하는 통에 더 이상 그 교회에 출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시무하시던 김태복 목사님께서 최근 은퇴하셨습니다. 은퇴식과 함께 원로목사 및 서울노회 공로목사 위임식에 초대되어 참석했습니다.

 

은퇴식이 감동적이어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예식이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았지만, 40년간의 목회생활을 정리하는 마지막 예배에서 많은 감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겸손, 온유, 섬김의 미덕을 갖춘 분입니다. 한결 같은 목소리로 40년간 목회를 해 왔습니다. 한국기독교가 성공지상주의와 물질숭배로 물들어가고 있을 때도 흔들리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정년이 70세인데도 후배 목회자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조기은퇴를 결행했다고 합니다.

 

목사가 되지 않았으면 소설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목사님은 후배 목사들을 위한 『마라톤 목회론』이라는 자그마한 책을 은퇴와 동시에 출간했습니다. 읽어보면 문장도 단아합니다.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소박함에 감동합니다. 목회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며, 마라톤을 뛰는 선수처럼 에너지의 분배를 잘 해야 한다고 충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장거리 목회를 향해 뛰려는 마라토너들은 목회의 비전이 분명해야 한다. 목회철학과 목표가 분명해야 성공적인 목회를 할 수 있고, 때로 난관이 온다 할지라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신념과 용기를 발휘할 수 있다.

 

단거리 경주처럼 살아온 나의 생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김 목사님 역시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과 똑 같은 말을 합니다. 삶의 철학과 비전을 먼저 세워야 함을 강조합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분명한 목회의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너무나 평범하고 단순하지만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행동은 목전의 이익과 자존심에 의존합니다.

김 목사님은 개인적 카리스마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협동하는 공동체가 되도록 이끌었고, 그리스도의 희생의 복음을 교인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백화점에서 버스로 고객을 실어 나르듯하는 대형교회들처럼 교인들의 수를 늘리는 경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작은 그리스도’(christian)로서의 삶을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솔선수범했습니다. 그런 겸손과 섬김의 철학으로 또 다른 홍익교회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은퇴식 인사말에는 다음과 같이 답례하면서 또 다시 겸손해 하셨습니다.

교인들이 목사를 쫓아내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데, 저는 수십 년을 한 교회에서 쫓겨나지 않고 계속 목회할 수 있게 되었으니, 우리교회 교인들은 참 좋은 분들입니다.

 

교인들은 목사를 닮는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이 특히 부정부패에 많이 연루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요?

김 목사님은 은퇴 후에 완전히 새로운 기획을 시작하셨습니다. 한국교회를 향하여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웹진 소리지(www.cry.or.kr)를 발간하기로 했습니다.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들이 초호화판 생활을 하면서 목사직을 세습하는 등 세속적인 풍습으로도 손가락질 당할 일들을 앞장서서 하는 것을 보면서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양식 있는 기독교인들은 제2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목사님은 그래서 인터넷 시대에 새로운 목회방식으로 소리를 외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물신숭배사상에 빠져 드는 것을 경계하고 교회의 거듭남을 위해 불특정다수인을 위한 새로운 목회방식을 시작했습니다.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을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의 성품처럼 아주 작게 시작했지만 한국교회에는 많은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야 하는 데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향하여 손가락질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무척이나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소리>가 한국교회를 거듭나게 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김 목사님의 은퇴식을 보면서 내 삶의 은퇴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감응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어떤 방식으로 남은 생애를 목회해야 할까 생각하게 했습니다. 김태복 목사님, 존경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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