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기록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다 키워놓으니까 이런 재미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 아내와 둘이서 사는 일에 어느 정도 적응되어 갑니다. 오늘도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서로 통하는 데가 있었는지 아들과 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들은 지금 군복무중이라서 가끔 외박과 휴가를 나올 때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주말이라서 전화를 했습니다. 금년 7월에 제대입니다.

 

휴가중인 아들의 모습

그 동안 군 복무하느라 고생이 많았을 겁니다. 다들 군대 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데, 그래도 장교나 카투사나 통역병으로 빠지지 않고 사병으로 지원해서 갔습니다. 군대는 국방의 의무보다는 남자를 만들어주는 좋은 훈련장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들도 군에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이등병 시절 첫 휴가를 나와서 쓰레기차 뒤에서 떨어지는 국물을 맞으면서 청소했던 얘기, 생활관 정리와 청소 얘기, 그때는 온통 청소 얘기였습니다. 군대에서 쫄병들은 청소만 시키는 모양입니다. 그 다음에는 선임병들이 갈구는 얘기, 군화 닦는 얘기, 축구 얘기, 축구하다 다친 얘기, 총각 중대장 리더십 얘기, 싸우다 영창 간 동료들 얘기, 집안에 있는 세면기 수도꼭지 위에 물방울이 떨어진 것을 보고 즉시 닦아낸 얘기(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을 법한 일인데 군대에서 하도 닦는 훈련이 돼서 집에 와서도 습관적으로 닦으려고 했다는 뜻), 야간 근무 얘기, 끝없이 이어지는 군대 얘기를 아내와 나는 열심히 들어주었습니다. 흥미진진하고, 나름대로 재미있는 얘기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병장이 된데다 생활관에서 고참이 된 모양입니다. 전화를 해도 사무적으로 할 뿐, 별로 군대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군대가 재미없어진 모양입니다. 외박이나 휴가를 나와도 군대얘기는 별로 없습니다.



 

군복무 성실히 수행해서 우리나라 국방을 더욱 튼튼히 해야 한다고 습관적인 충고를 하고는 아들과 전화를 끊었는데, 이번에는 런던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딸 아이 말로는 오늘 314일이 우리나라에선 White Day라네요. 엄마 아빠가 심심할까봐 미리 준비해 둔 게 있답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 선물을 주고 받은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선물인지 뇌물인지가 구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무슨 발렌타인 데이나 빼빼로 데이와 같은 상술에 놀아나는 것은 더욱 좋아하지 않는데, 딸이 전화에서 보물찾기를 하라고 해서, 따라 했습니다.

내가 번역한 책 『His Needs Her Needs』 사이에 카드를 적어두고 갔답니다. 그리고는 카드에 적힌 대로 따라가보니 책장의 아프리카 인형 뒤에 사탕과 초콜릿을 숨겨놓았습니다.

 
카드에는 요한일서 4 18절이 있었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같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 안에 온전케 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사탕과 초콜릿에는 다음과 같은 경구가 적혀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과업 중에 가장 어려운 마지막 시험이다. 다른 모든 일은 그 준비작업에 불과하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친척 결혼식에 참석한 딸

내 삶이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 준비해왔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릴케의 말대로 사랑이 우리 삶의 완성입니다. 남은 기간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더욱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딸은 잔재미가 있고, 아들은 굵은 재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얘긴데, 젊은 부부들은 가능하다면 아이들을 많이 낳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나는 삶의 두려움 때문에 둘 밖에 못 낳았는데, 요즘 후회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일곱은 낳았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