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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록/에세이

합의하는 민주주의_집단지성의 발현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독일어권을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그들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찾아 끊임없이 토론한다는 점이다. 그 문제의 본질을 파악했으면 그 다음에는 솔루션을 만들어낸다. 이때 좌익과 우익의 해법은 완전히 다르다. 다시 길고긴 토론으로 이어진다. 합의되지 않는 한 특정한 정책을 밀어붙일 수 없다. 지겨운 토론으로 이어진다. 이런 토론의 과정에서 완전히 다른 솔루션이 생겨나기도 한다. 헤겔의 정반합의 원리가 적용된다. 좌와 우를 포괄하는 새롭고 창의적인 솔루션이 신테제(Synthese)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집단지성(Wisdom of Crowds)을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길고긴 토론의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졸속으로 해결책을 밀어붙인다. 그러면 상대방은 격렬히 저항한다. 양쪽은 죽기살기로 싸운다. 이런 식으로는 집단지성이 발현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10년 이상 토론했어야 할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깊이 있는 토론도 없이 밀어붙이는 바람에 4대강을 죽이는 것으로 끝났다. 이것을 다시 살리려면 엄청난 공력을 들여야 한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은 은폐되었고 조작되었으며 판사는 보편적 상식을 뒤집는 판결을 했다. 세월호 사태의 본질은 박근혜 정부가 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하려는 데 있다. 무엇이 두려워서 유족들의 뜻에 따라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지 못하는가? 전작권 반환연기 사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 전작권 반환결정을 도대체 누가 어떤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 연기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사회적 정치적 외교적 결정인데도 말이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민주주의가 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명박과 박근혜는 국민에 대한 정신적 테러를 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집단지성은 고사하고 토론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들이 토론과 합의를 하지 못하고 밀실에서 결정하여 밀어붙이는 이유는 그것의 이면에는 검은 돈과 관련을 맺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럼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토론과 합의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 예를 들어 독일인들은 국가적인 아젠다는 대개 10년 이상 토론한다. 핵발전소의 위험성은 체르노빌 사태(1986) 이후 지속적으로 토론해왔다. 독일에도 원전마피아가 있기 때문에 쉽게 결론나지 않고 있었다. 독일이 핵발전소를 2022년까지 완전히 폐쇄하기로 한 결정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2011) 이후에 거의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그동안 이 사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토론해 왔고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부족한 에너지를 채우겠다는 계획을 추진해 왔었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시대를 맞아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에 살면서 에너지인터넷(Internet of Energy)으로 에너지의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강력한 포부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독일을 여행하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시골의 농가지붕에는 거의 대부분 시커먼 태양광집열판으로 덮여있다. 독일이 태양광에너지를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최첨단으로 올라섰다는 증거다. Kw당 생산원가도 전통적인 전기 생산 방식에 근접해가고 있다. 모든 기술발전과 비즈니스의 핵심은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정신이다. 토론과 합의의 정신은 이렇게 중요하다.

 

과학기술도 토론과 합의의 원칙을 지키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하물며 사회정책이야 말할 게 있겠는가. 박근혜 정부에 부탁하건데, 공무원 연금개혁 등 사회적 현안들을 그저 밀어붙이지 말고 핵심이슈가 무엇인지 다양한 의견이 드러나도록 서로 토론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설득력을 발휘해 주기를 바란다. 설득력을 발휘할 자신이나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