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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이야기

경영학과 철학


 

 

경영학은 지독하게도 실천적인 학문이다. 강의에서도 지금 당장 실용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리더십 스킬을 요구한다. 하지만 내 리더십 강의에는 철학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내 강의를 듣는 사람들 중에는 가끔 왜 어려운 철학이야기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학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곧바로 이해한다. 왜냐? 진짜 그런가, 하고 생각해보는 것이 철학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의심하기를 좋아한다.



대우조선해양 임원들, 1박2일 리더십 워크숍에서


 

리더십은 사람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책상이나 컴퓨터와 같은 물적 자원에 대해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리더십 스킬은 쓸모없이 힘을 낭비하는 것이다. 마치 어처구니없이 맷돌을 돌리려는 것과 같다. 이런 태도가 조직생산성을 낮추는 원인이기도 하다.



대우조선해양 사내MBA과정에서


 

오늘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등한히 하는 분야가 인간과 조직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잘 해왔고 그래서 그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인간과 조직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남양주 동화리더십센터에서, 삼성전자 간부 리더십 강의 중...


 

인간과 조직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리더십은 현실을 왜곡하거나 잘못 인도할 수밖에 없다. 상관이나 선배의 뒤통수를 보고 배운 리더십으로 조직을 운영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큰일이다. 바로 그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나라의 생산성이 서구 선진국에 비해 반토막 수준이다. 인간과 조직에 관한 기본지식은 학교에서 배우고 그것을 직업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 마땅한 수순이다.



남양주 동화리더십센터에서, 삼성전자 간부 리더십 강의 중...


 

그런데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구도가 곧 인간세계라는 것만 배운다. 성적순으로 줄 서야 하며 등급으로 나누어진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운다. 점수를 높이는 요령, 피라미드의 상층부를 올라가는 기술을 죽어라 배운다. 올라서지 못하고 낙오되면 정상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취직하면 동료를 밟고 올라가는 더 경쟁적인 조직문화를 익힌다. 협력은커녕 아첨과 배신을 비롯한 온갖 권모술수를 배운다.



아이쿱 생협 지역협동조합 운영 책임자들, 사회적 기업 경영론 시리즈 강의중...


 

갑과 을로 뚜렷이 나누어진 세상에서 그 먹이사슬의 말단에 있는 삶이란 상상하기도 싫다. 그러니 부정한 방법으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어쩌다 우리나라는 이 모양이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그것은 인간과 조직에 관한 우리의 이해가 군국주의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제식민시대에나 저질러졌을 법한 만행들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아이쿱 생협 지역협동조합 운영 책임자들, 사회적 기업 경영론 시리즈 강의중...


 

유럽의 지성인들에게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철저한 반성이 있었다. 적어도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의 사고체계는 인간에 대한 제국주의적이고 군국주의적인 이해에서 휴머니즘의 정신모형(mental model)으로 바뀌었다. 과거를 청산한 것이다. 그들은 표현의 자유가 완벽하게 주어진 오늘날에도 과거의 파시즘이나 나치즘 등의 관행과 습속은 물론이려니와 나아가 그 따위의 사상적 기류를 용납하지 않는다.



아이쿱 생협 지역협동조합 운영 책임자들, 사회적 기업 경영론 시리즈 강의중...


 

2만 달러의 소득과 이에 걸맞은 기술문명은 이룩했지만, 우리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의 인간에 대한 정신모형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인간을 노동과 생산을 위한 생물학적 차원에서만 취급한다는 점과 조직을 위해 인간을 자원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보면 일제식민시대와 비교해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생물학적 인간학이 아니라 철학적 인간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망연자실해 있던 유럽의 지성인들이 자신의 과거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그 후에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 반성의 계기로부터 인간관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나타났다. 인간은 무엇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위한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인간에 대한 이러한 유럽 지성인들의 반성적 성찰, 즉 인간은 존재를 위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 경영자들이 알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택한 내 강의 전략은 우선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인간이해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 다음 그들의 철학과 사상이 어떻게 조직운영시스템에 스며들게 만들었는지 알도록 하는 것이다. 유럽 대륙 국가들이 추구해왔던 생산성과 창의성의 기반이 바로 그들의 정신모형에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조금 과장한다면 철학적 사유의 자도 모르는 기업인들에게 인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쏟아낸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것으로 생각했다. 객기에 가까웠다. 기업인들이 언제 제대로 철학을 배운 적이 있겠는가. 없을 것이기에 그냥 시도해보는 차원에서 시작했을 뿐이다.

 

놀랍게도 내 강의를 들은 참석자들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에 대해 상당한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강의가 끝나고 그들이 질문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1.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실현하려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2. 우리 사회는 어쩌다 이렇게 자살률 최고의 나라가 되었는가?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가? 이것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등등...

 

그들이 이런 수준의 질문을 하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는 있다.

 

아마도 인간을 한낱 자원으로 취급하는 기존의 주류경영학에 대한 불만이 깊어 있었을 것이고 진정한 인간학에 대한 목마름이 그들의 심연에 있었을 것이다. 내 강의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목마름의 실체를 자극했을 뿐이다.

 

나는 이제 철학자들이 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철학교수들이 나서야 한다. 헨리 데이빗 소로의 말대로 철학교수는 많지만 철학자는 드물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나 같은 경영학도가 나서서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이지만 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하지 않는 이런 시도를 금년에 몇 차례 시도해보았다. 우선 금년 상반기에는 대우조선해양의 간부들과 임원들을 대상으로 12일 워크숍에서, 하반기에는 삼성전자 간부들에게, 그리고 아이쿱 생협의 지역협동조합을 운영해야 하는 책임자들에게 철학적 사유와 진정한 인간학으로 이어지는 리더십에 대해 가르쳤다. 강의내용에 대한 참가자들의 이해의 측면에서 보면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럽다.


 학습내용은 대강 이렇다.

 

1. 인간본성의 이해/인간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

심리학적 증거

철학적 사유

종교적 관점

2. 조직생리의 이해/조직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

조직이 필요한 이유

경쟁과 협력

성장과 발전

3. 경영의 이해/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운 이유

리더십의 조건

목적/비전/가치

변화관리두 종류의 인간

 



물론 시간 제약에 따라 조절되지만, 기본적으로는 인간이해에서 출발한다. 인간이해가 전제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사상누각이 되며 지속가능하지 않다.

 

내가 인간존중의 경영철학에 몰입하는 이유는 조직의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은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