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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

사로잡힌 영혼

몇 년 전에 읽은 감동적인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Marcel Reich-Ranicki, 1920~)라는 희한한 이름의 독일 문학평론가를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신문에서 그의 자서전이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그의 책을 주문해서 읽었습니다. 자서전이 장기간 베스트셀러의 지위를 얻기는 힘든 일인데, 이 책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로잡힌 영혼』, 정인수 서유정 옮김, 빗살무늬 2002]

 

우선 나치 시대상에서 오는 체험을 잔잔하지만 박진감 넘치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폴란드계 유대인으로서 독일로 넘어와서 고통을 받던 이야기, 문학에 대한 인연과 열정, 여인들과의 사랑이야기, 독일문학을 비평하던 이야기, 비평으로만 밥 먹고 살던 이야기다른 일을 할 수 있었을 법도 한데, 그는 오로지 문학을 평론하는 일만 했습니다. 독일의 대표적인 일간지 <디 벨트 Die Welt><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Frankfurter Allgemeine>에 기고한 그의 평론은 독일문학을 결정하다시피 했습니다. 스웨덴의 노벨문학상 선정위원들도 그의 평론을 보고 결정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위상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문학이 곧 그의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말합니다.

 

결국 문학에 대한 사랑이, 때로는 오싹하기조차 한 이 열정이 비평가라는 직업을 가능케 해주며 이 직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이 사랑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비평가라는 사람을 참아주고, 예외적인 경우에는 호감조차 갖게 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학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비평을 할 수 없다.이 말은 아무리 되풀이해도 지나침이 없는 말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사랑하도록 열정을 불살랐습니다.

 

나는 신문의 비평을 통해 독자들에게 내가 좋다고 여기는 책이 왜 좋은지 설명하고 싶었고, 독자들에게 그 책을 읽히고 싶었다.

 

그는 독일문학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 사로잡힌 아름다운 영혼의 궤적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독일문학과 상관없이 성숙한 인간의 인생역정을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읽을거리입니다. 읽는 내내 나의 일생은 무엇을 사랑했고 또 무엇에 사로잡혀 여기까지 왔는지를 생각했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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