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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이야기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8)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8)


먼저 읽어야 할 글: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1)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2)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3)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5)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6)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7) 



6. 인사(人事, Personnel)이란 무엇인가?

 

인사론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논란이 많은 영역이 평가보상이다. 평가와 보상, 이 두 가지 영역에는 참으로 다루기 까다로운 이슈들이 많다. 대학원 한 학기 강의로도 학습하기 부족하다. 인간과 조직에 관한 풍부한 식견을 갖지 않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일단 핵심적인 몇 가지 이슈만 논의해보자.

 

우선 평가에 대해 살펴보자. 역량평가는 이미 역량론에서 다루었으니 여기서는 성과평가에 관해 얘기해보자. 평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왜 평가하는가?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평가의 목적은 무엇인가? 직장인들의 대부분은 잘한 사람과 못한 사람을 구별하여 차별적으로 보상하기 위해 평가는 불가피하다고 대답한다. 잘한 사람에게는 동기부여가 되고, 못한 사람에게는 더 잘하려는 의욕을 북돋우게 된다는 주장이다. 성과급을 차등지급하기 위해서 평가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평가면담을 한 후의 느낌을 물어보면 거의 모든 직장인들이 입을 내민다. 기분이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평가시즌만 되면 밉보이지 않기 위해 다들 몸을 사린다. 평가자 또한 평가면담을 통해 평가등급을 매기는 일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토로한다. 평가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기부여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기분 나쁜 상태가 된다. 평가시즌이 지나면 이직을 생각하는 임직원들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진심으로 물어보자, 왜 평가하는가? 무엇을 위해 평가하는가? 과거를 반성하여 미래에 더 잘 하기 위해서, 라는 대답이 옳다. 그렇다면 평가시즌 이후에는 다들 신바람이 나서 더 잘해야겠다는 의욕이 넘쳐야 할 것이다.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왜 이렇게 되었나? 차등보상을 하겠다는 발상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출발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돈으로 차별하겠다는 발상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감을 훼손함으로써 일에 대한 동기를 갉아버리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보상이슈에서 다룰 예정이다.

 

더구나 상대평가를 택하게 되면 평가대상자들을 일정비율로 강제 배분해야 하기 때문에 공정한 평가가 불가능하다. 상대평가야말로 직원들을 서로 불신하도록 유도하면서 서로 경쟁하도록 부추기기 때문이다. 조직의 경쟁력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생겨난다.

 

상대평가 vs 절대평가

 

반드시 평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절대평가를 해야 한다. 일부 인사담당자들은 절대평가를 하면 과도한 관대화 현상이 나타나서 성과급 예산을 초과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절대평가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가와 성과급을 연결시켜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에 자꾸 평가결과에 신경을 쓰고 있다. 평가결과와 성과급 사이에는 방화벽이 있어서 둘 사이에는 서로 넘나들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 성과급에 관한 이슈도 보상에서 다룰 예정이다.

 

우리는 상대평가에 익숙하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직장생활까지 모든 평가는 상대평가를 통해 시험점수나 고과점수로 서열을 매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열화를 강요하는 상대평가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회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 평가방식이다.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미국에서 소위 WASP로 상징되는 기득권층이나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식민지를 관리해야 했던 영국은 상대평가를 통해 기득권층의 지배와 통제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그런 전통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서열화시킴으로써 지배와 통제를 손쉽게 하려는 것은 영미식 전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본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미국식 서열화를 강요하는 상대평가제도를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지금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다. 상대평가 방식이 기득권층의 지배와 통제를 수월하게 해주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서유럽 국가 대부분은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절대평가방식으로 평가한다. 학생들을 시험점수로 서열화하지 않는다. 일반기업의 성과평가, 공직자들의 업적평가, 정치인들의 정책평가에 이르기까지 평가대상자들을 서열화하는 방식의 상대평가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 절대평가를 실시한다.

 

서유럽 국가들이 절대평가를 실시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상대평가는 협력보다는 경쟁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조직론에서 설명했던 연대의 원칙(principle of solidarity)을 실현할 수 없으므로, 경쟁을 강조하는 상대평가보다는 서로 배려하고 협력할 수 있는 절대평가를 선호한다.

 

절대평가는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어떤 성취와 발전이 있었는지를 스스로 반성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런 기록이 10, 20년 쌓이면 자기 스스로 어떤 직무와 어떤 역할이 자신에게 적합한지 그리고 어느 정도 성취할 수 있을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언명이 사회적으로 자연스레 실현된다. 구태여 권모술수와 아첨과 배신을 통해 윗자리에 올라서려고 하지 않아도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현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절대평가는 상대평가보다 훨씬 쉽다. 출발의 초기조건을 비교적 상세히 기록해두면 된다. 그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 초기조건에서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면 절대평가 결과가 나온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학습목표를 사전에 정의하고 그 목표에 어느 수준까지 도달했는지 기록하면 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그 결과를 피드백해주면 그만이다. 성적에 따른 서열은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도 모른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맘껏 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1986년도 여름, 한국은행에서 보내준 첫 해외연수를 서독연방은행에서 보내고 있을 때였다. 나의 관심사이기도 해서 평가와 관련된 문서를 살펴볼 수 있도록 연수담당 직원에게 부탁했더니 안내해 주었다. 바인더에 묶여 있는 평가문서들이 마치 평가대상자의 사건기록과 같았다. 그런 기록이 개인별로 묶여 있는 것을 보았다. 서열화하고 강제 배분하는 상대평가 방식을 채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충격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사건에 대한 묘사는 없고 대부분 고과점수가 기록되어 있는데 반해, 서독연방은행 직원들의 평가기록문서에는 아예 숫자가 없었다. 그 후 어째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절대평가와 함께 꼭 알아 두어야 할 유용한 지식은 코칭이다. 인사고과를 실행하는 상사는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며 구체적인 코칭방법까지 습득해 두어야 한다. 여기서 코칭의 본질과 그 방법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고 꼭 읽어야 할 문헌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개롤드 마클, 이용석 옮김, 성과관리시스템의 패러다임을 바꿔라(교보문고 2007).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성과급과 급여제도

 

보상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돈에 대한 기독교 전통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신약성서 디모데전서 610절에 명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이 언명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돈에 대한 욕심이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저주하거나 가난한 삶이 더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돈이 부족하면 파산하기 때문에 돈을 필요로 하지만, 돈을 위해 기업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물을 필요로 하지만, 물을 위해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돈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돈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 보상에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이 가능하다.

 

왜 보상하는가?

무엇을 보상할 것인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우선, 왜 보상하는지 생각해보자. 기업은 무엇을 위해 보상하는가? 기업이 보상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세 가지다.

 

첫째, 자긍심과 성취동기를 고양하기 위하여

둘재, 내부 공정성과 외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셋째, 경영철학적 메시지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첫 번째 가치부터 살펴보자. 기업은 하나의 공동체로서 공동의 목적/비전/가치를 추구하는 협동체라고 할 수 있다. 조직이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조직으로 거듭나려면 조직구성원들 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조직 내에서 협동이 없으면 어떤 성과도 창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협력을 방해하는 것이 경쟁인데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바로 성과급의 차등보상이다. 이 성과급의 차등보상을 없애면 내부경쟁은 상당부분 사라질 것이다. 경쟁심이 점차 사라지면 조직 내에는 점차 창의성과 성취동기가 살아난다. 물론 이것은 경영자의 올바른 리더십을 전제로 한다.

 

내가 한국은행에서 조직개혁업무를 담당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까 1998년에서 2001년까지 3년간 온갖 고생을 하면서 그 일을 했다. 당시 글로벌 컨설팅회사의 일본지사에서 자문을 하고 있었는데(당시에는 한은을 자문할 국내컨설팅 회사가 거의 없었다), 그 사람들은 한은의 성과주의적 개혁을 위해 성과급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어사무사하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다. 임원회의에서 브리핑을 하던 일본인 컨설턴트에게 당시 박철 부총재와 이성태 부총재보(2003년부터 부총재로, 2006년부터 제23대 총재로 재임)가 성과급 차이라야 몇 푼 안 되는 것인데, 그걸 가지고 직원들을 기분 나쁘게(또는 치사하게) 만들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본인들은 이런 말을 했는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 발언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 동안 컨설턴트들과의 토론에서 성과급의 차등지급에 대해 꺼림칙하게 생각했던 것이 일순간 명료해졌기 때문이다.

 

바로 그거다. 성과급 차등지급은 사람을 돈으로 치사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시에는 그것이 한은직원들의 보편적 인식이었다. 성과급을 차등화함으로써 직원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치사한 느낌 갖게 하는 것이 조직 전체의 효율성과 생산성에 좋을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국가는 IMF의 통제하에 있었다. 국가적으로 조직개혁의 기본방향은 성과급을 신설하고 그것을 향후 확대해가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급여보상설계에서 최소한의 차이, 즉 무의미한 차이로 시작하도록 누그러뜨린 것으로 기억한다. 의미 없는 성과급 차이는 서로 무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련의 조직개혁 작업을 끝내고 나는 한은을 떠나 컨설팅 시장으로 나갔기 때문에 그 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당시 내가 걱정했던 것은 성과급의 차등지급은 개별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장점과 단점을 비교 관찰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상대평가에 따른 성과급 차등지급이 한편으로는 업무수행에 대한 긍정적 효과를 끼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적 효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일정기간 조직과 사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같은 조직에서 거의 같은 경력으로 비슷한 일을 하는 경우 성과급을 차등지급한다면, 쪽팔림, 치사함, 열등감, 시기심 등은 오히려 조직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떨어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보상차별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감에도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나는 한은을 떠나 컨설팅과 기업실무를 하면서 보상제도는 고객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설계해 주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17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평가하자면 성과급을 차등지급하도록 설계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었음이 확실해진 것처럼 보인다. 성과급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보상차별을 넘어서는 신분차별은 우리 사회에 아주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 1980년대까지는 그래도 옳고 그름,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어느 정도 명확한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다. 민주화를 위한 목숨을 건 투쟁이 있었고, 재벌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분노와 인권의식의 표출로 각종 시민단체가 만들어졌다. 아울러 공동체를 위한 배려와 헌신을 상징하는 아름다운가게와 같은 단체와 재단들이 생겨났다. 그런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사회에 희망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IMF가 우리나라에 경제와 사회정책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면서 자본과 부의 축적은 옳고, 선하며, 아름다운 것으로 변했다. 우리 사회는 오로지 돈을 중심으로 움직이게끔 변화되었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돈을 버는 것이 세상의 모든 것이 된 셈이다. 돈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 돈이 있으면 건강도, 행복도, 사랑도, 신앙도 구입할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실로 우리는, 심지어 종교인들조차 돈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것이 IMF사태 이후 성과급의 차등지급이라는 작은 사건이 빚어낸 거대한 비극이다.

 

이것을 바로잡는 길은 성과급의 차등지급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구성원들의 자긍심과 성취동기를 높이는 방식으로 급여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둘째, 내부공정성 측면에서도 성과급은 옳지 않다. 공정하려면 기준이 타당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기준이라는 것이 매출액과 같은 계량화된 성과지표들인데, 이것이 문제가 많다는 점은 이미 성과론에서 설명했으므로 참조하기 바란다. 여기서는 성과지표의 문제가 아니라 성과창출과정에 대해 생각해보자. 조직에서 성과를 낸다는 것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모든 일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독불장군식으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조직의 성과는 시스템적으로 네크워크화된 모든 가치사슬의 연쇄작용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의 협력이 없이는 성과창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그 네트워크의 한 구성요소로서 다른 구성원들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홍길동이 있을 수 있다. 홍길동의 그런 재능은 어디서 온 것인가? 무인도에서 혼자 태어나서 혼자 기량을 갈고닦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런 기량과 역량을 가지고 태어났고, 사회 속에서 우연히 그런 지위에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자신의 노력이 전혀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누구나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갈고닦은 기량과 타고난 역량을 발휘한다. 누구나 더 좋은 성과를 내려고 노력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홍길동에 대한 성과급의 차등지급은 타당성을 잃게 된다. 다함께 협력하고 다 같이 노력했는데 단순히 타고난 재능이 우수하다는 우연적인 요소에 의해 차별대우를 받은 것이 정당한 일인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홍길동의 재능도 우연의 산물이라면 말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굳이 개별적으로 따지자면 홍길동의 성과는 아주 좋았는데,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인물이 큰 잘못을 저지르는 바람에 매출액이 크게 줄었다고 치자. 물론 홍길동은 전혀 잘못이 없다. 이때 홍길동에게 이전과 동일한 성과급을 주어야 하는가? 아니다. 회사 전체의 매출이 줄어들었으므로 성과급도 그만큼 줄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홍길동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의 잘못에 대해 홍길동도 연대하여 책임을 묻는 셈이다. 이것은 결국 성과급 차등지급의 신뢰성에도 의문이 있다는 말이다.

 

인사조직론의 큰 틀과 내부 공정성의 차원에서 보면, 둘러치나 메치나, 성과급의 차등지급은 타당성과 신뢰성에 크나큰 문제가 있다. 성과급의 차등지급은 오로지 부하들에 대한 인사권자의 통제와 지배수단으로 작용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성과급의 차등지급은 폐지되어야 한다. 물론 급여제도 설계에는 외부 경쟁력 확보라는 또 다른 가치가 있지만 이것은 매우 복잡한 논의를 거쳐야 하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셋째, 급여제도에는 경영철학적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한다. 급여를 받은 구성원들이 왜 내가 그 급여를 받아야 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급여 속에 조직의 비전/목적/방향/가치, 즉 경영철학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히 전달되어야 한다.

 

자동차가 오른쪽으로 간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면서 왼쪽 방향으로 나아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다음과 같은 경우를 보자.

 

경영자는 인재를 중시한다고 하면서 매출이 줄어들면 희망퇴직이라는 명목으로 구조조정과 해고를 수시로 실시하는 경우

불법행위자는 일벌백계를 하겠다고 천명하면서 경영자 스스로 탈세와 같은 불법행위를 하는 경우

경영자는 구성원들에게 끊임없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성과급을 차등지급하는 경우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했을 것이다. 더구나 급여보상으로 구성원들의 마음과 행동을 조작하려는 경영자야말로 커다란 문제를 일으킨다. 구성원들은 경영자가 쏟아내는 말은 신뢰하지 않는다. 그가 추구하는 것이 구체적인 의사결정과 행동으로 나타나야 신뢰한다. 구성원들은 경영자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경영자가 구성원들에게 신뢰를 얻는 방법은 조직의 비전/목적/방향에 충실하면서 일관성 있게 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급여보상에도 이런 정신이 담겨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주로 개인에 대해 논의했지만, 개인들이 모인 팀 단위에도 성과급을 차등지급한다면 마찬가지로 역효과가 나타난다.

 

보상은 내적 동기를 약화시킨다

 

보상을 성과에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경우, 구성원의 내적 동기를 약화시킨다는 것은 수많은 연구결과로 이미 밝혀졌다. 여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리처드 해크만, 성공적인 팀의 5가지 조건, 교보문고 2006 참조. Alfie Kohn, Punished by Rewards, Houghton Mifflin 1993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더 큰 보상이 더 큰 동기와 더 큰 의욕을 북돋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여기서 실험연구를 하나 소개해야겠다. 스탠포드대학 심리학자 마크 레퍼와 그 동료들이 수행했던 연구다. 연구원들은 유치원 아이들에게 크레용을 나눠주고 그림을 그려오라고 했다. 일부 아이들에게는 그림을 그리면 '선행상'을 주겠다고 말했고,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연구원들은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며 보낸 시간량을 조사했다. 결과는, 보상에 대한 얘기를 들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서 그림 그리기에 훨씬 더 적은 시간을 쓴 것이었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내적으로) 흥미로운 활동을 하기 위해 보내는 시간이 (외적인) 보상을 받을 때는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이다.[각주:1]

 

이런 실험연구는 수없이 많지만, 가장 많이 알려진 사례를 유투브와 테드 강연에서 볼 수 있다. 알피 콘이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와 대담한 동영상과 다니엘 핑크가 테드에서 강연한 동영상이 있다.

 

(Youtube) Alfie Kohn on Oprah


(TED) Daniel Pink_The Candle Problem


 

록스텝 페이 시스템(Lockstep Pay System)

 

성과에 따라 개인적으로나 팀으로도 차별하여 보상하지 말라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가장 좋은 방법은 소위 "록스텝 페이 시스템(Lockstep Pay System)"이다. 공무원 보상체계처럼 경력에 따라 같은 스텝으로 급여가 올라가는 방식을 록스텝 시스템이라 한다. 급여도 보조를 맞춰서 함께 가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IMF로부터 통제를 받기 전에는 대기업에서도 호봉제와 같은 급여제도를 사용했었다. 정부가 주관하고 있는 공공기관 또는 공기업 경영평가 편람을 보면 모두 연봉과 성과급 제도를 시행하도록 되어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공공성이 크면 큰 조직일수록 구성원들이 그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조직을 운영해야 하는데, 오히려 구성원들을 성과급 몇 푼 더 받기 위해 일하는, 영혼 없는 인간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면 급여제도를 과거로 되돌리자는 말이냐? 그렇다. 차라리 호봉제가 훨씬 간명하고 수평구조와 협력적 조직문화를 수행하는 경영철학에도 부합한다. 그런데 IMF가 간섭하기 이전에 썼던 이런 록스텝 시스템이 당시에는 왜 문제가 되었느냐, 그 이유를 살펴야 한다.

 

서양에도 급여에서 록스텝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 기업의 경영자들은 한결같이 조직에서 개인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경우란 거의 없고 서로 협력함으로써 시너지와 레버리지를 일으켜야 하기 때문에 록스텝 시스템이 잘 작동한다고 말한다. 국제적인 법률회사인 슬로터 앤 메이(Slaughter and May)의 파트너는 "록스텝 시스템은 동료들의 압력에 의해 잘 작동하고 있으며, 경영진이 서비스 품질에 대한 탁월함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적당주의는 배겨날 수 없다"고 말한다.[각주:2]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급여보상제도가 아니라 경영자나 고위공직자의 자질이 문제인 것이다. 인간과 조직에 대한 철학적 성찰도 없고 비즈니스에 대한 혜안도 없으며 리더십의 본질도 이해하지 못하는, 오직 사적 이익추구를 위해 아첨하며 충성심 보이기, 배신과 권모술수에 능한 인물들만 윗자리에 올라설 수 있도록 구조화된 시스템 때문에 조직의 창의성과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호봉제와 같은 록스텝 시스템은 무임승차 현상에 대한 염려가 있는데, 이것은 경영자의 리더십과 조직문화에 관한 문제일 뿐 급여보상제도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 이제 정리해보자. 상대평가는 하지 말아야 한다. 평가를 굳이 해야 한다면 절대평가를 하되, 인사고과자는 반드시 코칭의 정신과 그 기량을 익혀서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성과급 제도는 가급적 폐지하고 보상도 경력에 따른 록스텝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을 권장한다. 상대평가에 의한 차별보상은 협력을 깨뜨리고 경쟁을 부추긴다. 경쟁은 창의성과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조직의 경쟁력은 구성원들의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협력을 통해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경영자와 관리자들이 리더십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리더십은 인간과 조직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리더십을 발휘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많은 경영자들이 가장 손쉬운 쥐어짜는 성과관리방식을 택한다. 그것이 바로 계량화된 성과지표를 부하들에게 목표로 부여한 후,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해내도록 족치는 방식이다.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지속가능하지 않다. 명령과 통제와 억압으로는 구성원들의 창의성도 생산성도 높일 수 없기 때문이다.



  1. 리처드 해크만, 『성공적인 팀의 5가지 조건』, 교보문고 2006, 251쪽 이하 참조 [본문으로]
  2. http://www.cass.city.ac.uk/news-and-events/news/2011/july/lockstep-pay-ideal-remuneration-model-or-barking-mad-professional-service-firm-leaders-debate-lockstep-vs.-eat-what-you-kill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