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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이야기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7)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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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5)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6)

 


5. 역량(力量, Competency)이란 무엇인가?

 

인사가 만사라고 한다. 이는 직무에 부합하는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면,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직무에 부합하는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나온 개념이 바로 역량(competency)이다. 역량과 유사한 용어로 능력(ability, capability)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이 있지만, 능력 중에서 직무수행과정에서 높은 성과를 창출하는 데 작용하는 고유한 성향만을 추출하여 개념화한 것이 역량이다. 그러니까 능력은 역량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쓰이며, 역량은 능력의 여러 요소 중에서 특히 직무성과와 연관성이 깊은 독특한 기질(traits)을 몇 가지 요소로 선별한 개념이다.

 

역량이란, 개념적으로 간단히 정의하자면, 탁월한 성과(superior performance)의 원인이 되는 개인의 내적 속성(underlying characteristics)이다. 탁월한 성과란 평범한 성과를 월등히 넘어서는 성과를 말하며 개인의 내적 속성이란 평범한 사람에게는 나타나지 않지만 고성과자(high performer)에게는 나타나는 고유한 성향(disposition)을 말한다.

 

성향은 개인별로 가지고 태어난 고유한 것이다. 인간은 환경조건에 따라 행동패턴을 바꿀 수는 있겠지만, 타고난 성향 자체가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세 살적 버릇이 여든 간다는 옛 말도 같은 의미다. 정직성실성(Integrity, ING)과 같은 역량요소는 쉽게 바뀌지 않지만, 환경조건이 어떠냐에 따라서 행동패턴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에서는 고위공직자들의 위장전입, 군복무 면제, 다운계약서에 의한 탈세와 투기, 공금횡령 등과 같은 부정직한 행동패턴이 보편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투명하고 정직한 행동을 요구하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선진국에서는 같은 공직자라도 부정부패와 같은 부정직한 행동패턴을 보이는 것은 쉽지 않다.

 

 

인사의 두 가지 기본원칙

 

조직설계에 연대와 보충의 두 가지 원칙이 있었듯이, 인사실무에도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역량에 따른 선발

성과에 따른 보상

 

다음 그림을 보면 인사의 두 원칙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역량개념은 채용, 이동, 승진, 퇴출 등과 같은 선발에 활용되며, 성과는 보상에 활용된다.


 

성과와 보상 개념은 다음 장에서 설명하고, 여기서는 역량개념에 집중해보자. 앞서 정의했듯이, 역량개념은 직무에 부합하는 고성과자들에게 고유한 성향 또는 기질을 의미한다. 사람마다 신장, 얼굴모양, 몸무게 등과 같은 신체적 용모가 다양한 것은 생물학적인 DNA가 다르기 때문인데, 역량도 이와 같이 일종의 정신적 DNA(mental DNA)라서 사람마다 다르다. 젖소와 뱀이 같은 물을 마시더라도 젖소는 우유를, 뱀은 독소를 배출하는 이유는 생물학적 프로그램(biological program)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프로그램이란 (생물학적으로 DNA들이 뿜어내는) 명령어들의 조합을 말한다.

 

인간에게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있다. 동일한 직무를 수행하더라도 평범한 성과자(average performer)와 고성과자(high performer)는 서로 다른 멘탈 프로그램(mental program)을 사용한다. 어떤 사건에 직면했을 때 마음에서 뿜어내는 명령어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마음에서 내리는 명령어들의 조합은 타고나는 경향이 있어서 역량은 교육훈련을 하더라도 잘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식이나 기량(skill)은 교육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향상시킬 수 있지만, 역량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렇게 역량이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끊임없이 역량개발, 역량강화, 역량증진, 역량활성화 등과 같은 교육을 실시한다. 역량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왜곡되어 있는 부분이 채용이다. 출신학교, 전공 성적, 심지어 영어토익점수 등을 기준으로 신입사원을 선발한다. 선발한 후에 그들의 역량요소인 정직성, 도전정신, 대인관계 등과 같은 역량요소를 훈련시킨다. 직원채용을 거꾸로 하는 셈이다. 역량중심으로 채용하고 나서 지식이나 기량을 가르치는 것이 순서인데 말이다. 이렇게 거꾸로 하는 바람에 신입사원들의 회사 정착률이 매우 낮으며 기업의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게 된다.

 

나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잘못된 행태를 지적하면서, 다람쥐에게 적합한 직무를 위해 코끼리를 채용한 후, 강력한 교육훈련을 통해 코끼리를 다람쥐로 만들려고 노력한다는 점을 언급하곤 한다. 처음부터 다람쥐를 채용한다면, 나뭇가지에 기어 올라가는 것과 같은 직무에는 굳이 교육훈련을 할 필요가 없다. 조직의 비전과 전략에 대한 간략한 교육만으로도 충분하다. 인사담당자들이 역량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온갖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훈련시키지만 효과는 거의 없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거니와, 역량은 개인의 내면적 속성 또는 성향이기 때문에 교육훈련을 통해 잘 바뀌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키 작은 사람이 아무리 훈련을 해도 키가 커지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인사담당자와 경영자는 역량에 따라 선발한다는 인사의 첫 번째 원칙을 잘 지켜야 한다.

 

앞에서 논의한 조직론에서 직무와 직무담당자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직설계를 위해서 특히 직무개념과 성과책임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역량론에서는 사람을 진단하고 평가할 때 그 사람의 부, 배경, 지위, 경력 등에 현혹되지 말고 그가 진실로 어떤 성취를 이루어왔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역량요소를 발휘했었는지 역량중심으로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구성원들의 역량을 판단할 때, 홍길동은 '능력이 있다', '기획력이 좋다', '똑똑하다', '무능하다' 등과 같이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평가는 듣는 사람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머리(IQ)가 좋다/나쁘다는 말도 되고, 강력한 추진력이 있다/없다는 뜻도 되며, 윗사람에게 고분고분하다/반항적이다는 얘기도 된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에 오류가 발생하고, 때로는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구성원들을 역량개념으로 평가하면 그 판단근거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구성원들의 능력을 진단하거나 평가할 때, '분석적 사고수준이 높다', '유연성이 2 레벨이다', '대인영향력이 4 수준이다', '미래지향성이 1 레벨이다' 등과 같이 역량요소와 그 수준으로 평가하고 서로 피드백할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은 장점을 누릴 수 있다.

 

  • 동일한 시각에서 구성원의 능력과 태도를 바라보게 된다.
  • 개인에 대한 인격적 판단과 주관적 편향을 줄일 수 있다.
  • 개별적인 코칭이 가능하다.
  • 구성원의 장기적인 성취를 예측할 수 있다.

 

성취예측모형(Achievement Prediction Model)

 

출신학교와 전공 성적, 해외어학연수와 토익점수, 마음에도 없는 봉사활동 실적과 같은 스펙 위주로 선발하거나 적성검사와 같은 심리검사 결과를 위주로 선발하는 것은 예측력이 낮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진다. 물론 이런 정보를 완전히 무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표피적인 정보와 자료에만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미래에 후보자가 이룩할 성취를 거의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무수행에 적합한 선발의 준거와 방법을 정비하는 것은 인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독일 유학시절 역량진단에 대한 개념을 공부하긴 했지만 전문적으로 파진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역량중심의 성취예측모형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03년부터였다. 우리나라 기업에서 역량중심의 선발과 교육훈련 체계를 살펴보면서 뭔가 잘못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역량은 사람이 거의 타고난 특질과 같기 때문에 교육훈련을 통해 개발되기가 어려운 것인데, 기업의 인사담당자와 경영자들은 역량개발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훈련시키고 있었다. 역량개념의 출발은 독일 나치시대에 친위대 장교들을 선발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이것이 일종의 우생학이 아니냐는 비난이 있긴 했다. 2차 대전 후 나치시대의 모든 습속을 재현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약 때문에 역량개념과 그에 따른 선발과정을 연구하던 학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갔고, 미국에서는 이 개념이 매우 실용적으로 발전했다. IBM, GM, AT&T 등과 같은 대기업에서 인재선발 방법으로 활용되면서 미국 사회에 널리 퍼졌다. 이 개념이 미국계 컨설턴트들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너도나도 역량개념을 컨설팅에 활용하는 바람에 선발에 활용되던 본래의 취지가 많이 왜곡 되었다.

 

나는 대기업의 경영실무를 하면서부터 관리자들 중에 동일한 환경조건에서도 탁월한 성취를 지속적으로 이룩하는 관리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면서 각종 자료를 모아 정리했다. 컨설팅과정에서 인터뷰를 통해 수집한 자료들, 대학에서 영재성이 있는 우수한 학생과 평범한 학생들로부터 수집한 자료들, 그리고 노벨상을 받았거나 같은 수준의 평가를 받는 인물들의 자서전이나 평전을 통해 얻은 자료들, 혁신적인 사업을 통해 탁월한 성과를 이룩한 사업가들의 자료를 정리했다. 그들의 능력과 역량요소들을 분류하여 <성취예측모형>을 만들었다. 해 아래 새 것이 어디 있으랴. 기존의 연구결과들을 참조하고 실무적으로 적용해보면서 점차 개량되어 왔다.

 

그렇게 대략 10년간을 연구하여 2012년에는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소위 <Assessor Training Workshop>이라는 역량진단을 위한 3일간의 훈련과정을 개설하여 두 차례 실시하면서 성취예측모형의 타당성을 확신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탁월한 성과를 내는 인재들을 평범한 학생, 직장인, 과학자, 사업가들과 비교 연구한 결과,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향인 아홉 가지 역량요소를 추출할 수 있었다. 이것은 크게 도구적 능력, 추상화 능력, 목적지향적 능력으로 분류할 수 있다. 각 능력에는 다시 세 가지 역량요소들로 세분할 수 있다. 이것을 <성취예측모형>이라고 한다. 이 모형은 개인의 역량을 진단하여 장기적으로 어느 정도 성취할 수 있을지 예측하는 수단으로 개발되었다. 기업에서 인재선발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사회적으로 고위공직자를 선출할 때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성취예측모형을 역으로 이용하면, 기업체의 경영자나 고위공직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서 어떤 역량요소가 잘 발현되고 있는지 스스로 검토해 볼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아래 그림에는 세 가지 능력(역량군)과 각각의 역량요소들을 정의해 놓았다.

 


우선, 도구적 능력(instrumental ability)이란 사물이나 현상의 구조를 이해하고, 핵심을 파악하며, 어떤 특정한 것에 과도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분석적 사고, 개념적 사고, 영재성 등의 역량요소가 포함된다.

 

분석적 사고와 개념적 사고는 지능수준(intelligence level)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영재성은 일반적인 이해와는 달리 특정한 사물이나 현상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몰입하는 성향을 말한다. 도구적 능력은 비유하자면, 목수에게 필요한 "좋은 망치"에 해당한다. 높은 성취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진정으로 높은 성취를 위해서는 망치를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판단하게 해주는 추상화 능력을 요구한다.

 

둘째, 추상화 능력(abstraction ability)이란 자신의 도구적 능력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결정하고 실제로 그 도구를 잘 활용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창의성, 학습능력, 미래지향성 등의 역량요소가 포함된다.

 

창의성과 학습능력은 "새로움""깨달음"을 나타내는 역량요소이며, 미래지향성은 일반적인 이해와는 달리 미래를 위해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추상화 능력은 비유하자면, 목수가 가지고 있는 좋은 망치를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를 찾아내어 망치를 활용하는 능력에 해당한다. 성취의 방향성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진정으로 높은 성취를 위해서는 망치를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판단하게 해주는 목적지향적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셋째, 목적지향적 능력이란 높은 목표나 기준을 세우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하면서 끊임없이 시도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성취지향성, 대인영향력, 정직성실성 등이 포함된다. 성취지향성과 대인영향력은 끈질김과 인내, 그리고 설득력을 나타내는 역량요소이며 정직성실성은 일반적인 이해와는 달리 공정성, 개방성, 투명성, 배려와 존중 등과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이상향(理想鄕)을 향한 열정의 정도를 의미한다.

 

목적지향적 능력은 비유하자면, 목수가 "좋은 망치""올바른 곳"을 찾아 활용하더라도 그것을 건축물이 "완성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능력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별로 나타나지 않으며, 높은 성취를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능력이다.

 

 

역량사전(competency dictionary)과 성취예측모형의 활용

 

이러한 성취예측모형은 기본적으로 역량사전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역량사전이란 인간의 직무수행과 관련된 성향 또는 기질을 19~20개의 역량요소로 분류하고, 각 역량요소의 정의와 그 정의를 나타내는 행동패턴의 수준을 5개로 세분하여 정리한 것이다. 다음 그림과 같다.

 

인간은 누구나 세 종류의 능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역량요소들을 가지고 태어난다. 어린 아이들은 다들 비슷하게 태어나지만, 성인이 되면 이목구비, 신장, 몸무게, 취향, 성격이 다 다르다. 능력과 역량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도구적 능력과 추상화 능력에는 탁월하지만 목적지향적 능력은 별로 높지 않은 경우가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 모형의 특징은 아홉 개의 역량요소가 각각 독립된 것이긴 하지만, 상호작용을 일으키기도 하여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들어낸다.




조금 더 이해를 돕기 하기 위해 우리가 잘 아는 인물을 예로 들어보자. 안철수 의원은 매우 높은 수준의 여러 역량요소를 발휘하였으나 대인영향력(Impact and Influence, IMP)이 낮기 때문에 그가 꿈꾸던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는데 실패했다. 그가 꿈꾸던 비전을 실현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핵심 인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탁월한 역량의 소유자들 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오히려 정치적 비전이나 출중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김한길 의원에게 설득 당하는 실수를 반복했다.

 

다른 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들 수 있다. 그를 역량요소로 평가하자면 성취지향성은 탁월한 수준이었지만, 정직성은 마이너스 수준을 보여주었다. 그는 현대건설에서 근무하던 시절과 서울시장, 국회의원, 대통령이라는 중차대한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일관된 성향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도구적 능력과 추상화 능력이 높으면서 동시에 성취지향성 수준이 높다하더라도, 마이너스의 정직성을 발휘하게 되면 조직 전체의 성과를 오히려 떨어뜨리게 된다. 이것이 부정부패가 심한 후진국의 전형적인 사례다.

 

현직 국회의원들과 고위공직자들의 과거 행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이 앞으로 어떤 역량요소를 어느 수준으로 발휘함으로써 어떤 의사결정과 행태를 보일 것이라는 점은 상당한 수준 예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