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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이야기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5)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5)

 

먼저 읽어야 할 글: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1)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2)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3)


3. 전략(戰略, Strategy)이란 무엇인가?

 

전략개념은 주로 전쟁, 정치, 기업에서 사용된다. 고대의 전쟁국면에서 사용된 전략개념을 기술하자면 많은 분량이 필요하다. 전략에 대해 보편적으로 합의된 개념도 없으려니와 시중에서는 전략에 대해 다양한 개념과 정의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은 전략을 통해 마치 기업 활동의 전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전략개념은 개인, 가정, 기업, 국가의 흥망에 매우 중요한 요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전을 위한 수단으로 묘사되어 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략이란 비전/목적/방향을 실현하는 힘을 창조하는 기술 또는 방법이라고 개념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내가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할 때, 그러니까 1970년대 중반에는 전략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았다. 기획 또는 계획이라는 말이 주로 쓰였다. 1980년대를 넘어서면서 경쟁(competition)이니 "전략(strategy)"이니 하는 살벌한 용어들이 자주 등장하더니 오늘날에는 이 용어가 없이는 경영을 설명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 만큼 기업들 간의 경쟁이 격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온통 성장전략, 경영전략, 마케팅전략, 인사전략, 영업전략, 신성장전략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전략경영이라는 말도 있다. 전략을 경영한다는 말인지, 전략적으로 경영을 한다는 말인지 불분명하지만 하여튼 전략이라는 말을 단어의 앞뒤로 붙여서 그럴듯하게 쓰인다. ○○전략 또는 전략적 ○○이라고 할 때 사용하는 전략이라는 용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경영학 문헌을 보면, 어떤 이는 전략을 기업이 난관에 처했을 때 이를 너끈히 극복할 수 있는 묘안쯤으로 생각하고, 어떤 이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자원배분방법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전략과 관련해서 경쟁우위, 가치사슬(value chain), 이니셔티브(Initiative), 핵심역량(core competence) 등과 같은 개념을 만들어 낸 사람도 있고, 소위 SWOT분석, BSC(균형 잡힌 성과지표), Strategy Map, 포트폴리오 이론 등과 같은 방법론을 정립한 사람도 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전략이라는 용어가 갖는 다양한 의미 때문에 헷갈렸다. 특히 나를 헷갈리게 한 문헌은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1947~)가 쓴 "What is strategy?"(HBR November-December 1996)라는 논문이었다. 포터는 전략이란 경쟁사와는 다른 행동을 실행하는 것쯤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략이 계획과 어떻게 다른지 질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케팅계획과 마케팅전략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전략이라는 용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마케팅 책임자는 경쟁사의 마케팅계획을 파악하여 이에 대응하는 자신의 마케팅계획을 세울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마케팅전략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계획과 전략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전략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단기적인 안목에 의해 사고하고 행동한다. 이익을 좇는 행동은 자연스럽다. 그것도 목전의 이익이라면 너무나 당연하다. 특히 경쟁이 심한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익을 따라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앞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기업 간의 경쟁이나 기업내부에서 일어나는 각종 갈등양상을 보면 당장의 이익을 얻기 위해 먼 훗날에 돌아올 더 큰 이익을 버리는 경우가 꽤 많다. 그것은 인간에게 고유한 욕망의 근시안(近視眼)과 차안대(遮眼帶) 현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근시안은 목전의 이익에 급급한 현상이고 차안대는 좌우를 보지 않고 이익을 향해 무모하게 돌진하는 행태를 가리킨다.

 

주변(이해관계자들)을 잘 살피지 않으면서 멀리 보지 못하면(당장의 이익만 추구하면)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사라진다. 나는 오랫동안 사회로부터 존경받고 소비자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기업들을 검토해왔다. 이런 기업들의 공통점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근시안이나 차안대와 같은 불합리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전략(strategy)이라는 개념을 활용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전략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다. 전략은 기업의 자원과 잠재력을 확장시켜 지속가능한 조직으로 만드는 중요한 방법론이다. 인간은 당장의 이익에 과도하게 현혹되는 경향이 있어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을 바라보도록 할 필요가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전략개념이 생겼다.

 

전략은 장기적 이익만을 중시하지 않으며 단기적인 이익도 등한히 하지 않는다. 전략은 단기적 이익과 장기적 이익을 조화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시장점유율이나 생태계 조성과 같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높일 수 있는 이니셔티브(initiative)도 필요하지만, 당장의 생존을 위한 영업이익이나 자산이익률과 같은 이익률(profitability) 지표도 높일 수 있는 이니셔티브들이 필요하다. 이런 장단기 이니셔티브들의 조합이 바로 전략이다.

 

여기서 이니셔티브(initiative)라는 생소한 용어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니셔티브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업무가 아니라 미래에 직면하게 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발굴해낸 것으로서 비교적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특별한 과제를 말한다. 예를 들어, 현재 생산하고 있는 제품과 달리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기획해야 한다면 그런 제품기획안이 바로 이니셔티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단기적인 시급한 사안도 이니셔티브가 될 수 있다.

 

대한항공의 조현아 부사장이 저지른 행태로 기업의 브랜드이미지가 추락하고 있을 때 이런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단기적인 이니셔티브를 실행할 수 있다. 기왕에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은 정직하게 고백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니셔티브다. 누군가 그 회사에 그런 이니셔티브를 발휘할 수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처참한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라도 대한항공은 사태를 미봉책으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시스템적 치유를 시도하는 이니셔티브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롭고 다양한 이니셔티브가 생성되어야 한다. 전략적 경영이란 이러한 단기적인 이니셔티브와 중장기적인 이니셔티브를 조화시켜 추진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전략이란 무엇인가?

 

이제 전략을 정의해보자. 전략이란 기업의 비전달성을 위해 자원획득과 자원배분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런 개념적 정의를 보다 실천적으로 바꾸면, 전략이란 "기업 가치(corporate value)와 장기적인 성과(long-term performance)를 향상시키는, 서로 잘 어울리면서도 환경변화에 따라 진화하는 이니셔티브들의 조합"(A coherent, evolving set of initiatives that drives corporate value and long-term performance)이라고 할 수 있다(McKinsey & Company). 전략적 경영 또는 전략경영이라는 의미는 이런 이니셔티브들의 우선순위를 조절해 나가는 행위를 말한다.

 

이것은 다음 그림을 보면 명백해진다. 이 그림을 보면 1990년대의 IBM이 루 거스너(Lou Gerstner)가 추진한 이니셔티브들과 전임자인 존 에이커스(John Akers)의 이니셔티브들을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거스너는 단기, 중기, 장기적인 관점에서 익숙한 것, 생소한 것, 불확실한 것 등 다양한 이니셔티브들을 추진했다. 그러므로 전략이란, 다시 반복하지만, 실무적으로는 이니셔티브들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개념적으로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자원획득과 자원배분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개념은 내가 전략의 개념에 대해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에 어느 세미나 장소에 갔다가 맥킨지 컨설턴트의 발표를 보다가 "이거다"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전략이란 이니셔티브들의 조합이라는 것이다. 이니셔티브들의 조합을 통해 조직이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힘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그 후로 내 나름대로 고민을 거듭하여 전략이란 비전성취의 수단으로서 이니셔티브들의 조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자원획득과 자원배분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전략이라고 한다면, 전략적 변화가 곧 비전을 달성하는 것을 보장하는가, 하는 질문이 있다. 답은 전혀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략이 실패하는 경우가 성공하는 경우보다 더 많다. 오히려 전략만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 때문에 멀쩡한 회사가 갑자기 파산하는 경우도 있다.

 

전략은 과거에 대한 반성, 현실의 직시, 그리고 앞으로의 비전으로부터 나온다.

 

전략은 조직의 비전을 성취하기 위한 힘을 창조하는 기술 또는 방법이다. 기업이 목표하는 것을 성취하려면 일상적인 업무를 추진하는 것만으로는 곤란하며 비상한 방법론을 확보해야 한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매력적인 비전은 일상의 반복을 통해서는 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전이 조직 내의 각 직무(부문)로 분해되고, 조직의 강점이 전략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의 역량과 그를 둘러싼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현실은 항상 당사자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늘 경험하듯이,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상 매우 넘기 어려운 장애물이다. 수많은 기업이 이 장애물을 넘지 못하고 초라한 성과나 실패로 마감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직의 책임자들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 용기가 바로 비전을 달성할 수 있는 힘을 창조해낸다. 그런 용기가 있는 조직은 창조적 이니셔티브들의 조합인 전략을 마련하고 실천해낼 수 있다. 비전으로부터 그런 전략을 도출할 수 없는 조직은 위험해진다.

 

전략 성공의 사례: 보불전쟁의 압도적 승리

 

1870~1871, 프러시아와 프랑스 간에 벌어진 소위 보불전쟁에서 프러시아는 압도적으로 완벽하게 승리했다. 이 전쟁을 통해 독일통일의 길을 연 프러시아가 지난 50~60년간 어떤 이니셔티브들을 실행해왔는지 살펴보면 전략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이 전쟁은 헬무트 폰 몰트케(Helmuth von Moltke, 1800~1891) 장군이 이끌었다. 대략 64년 전, 그러니까 1806~1807년 프러시아 군대는 예나(Jena)와 아우어스테트(Auerstedt)에서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에게 참혹하게 패배했다.[각주:1]

 

몰트케는 왜 패배했는지 그 원인을 면밀히 분석했다. 그가 파악한 원인은

 

부랑배, 술주정뱅이, 좀도둑, 건달 등과 같은 하층민으로 구성된 지리멸렬한 병사들,

야전훈련이 아닌 연병장에서의 기계적인 이론교육과 동작훈련밖에 없는 잘못된 장교교육훈련,

전투현장의 지휘관이 전혀 자율성을 발휘할 수 없는 엄격한 작전지시,

병사들이 적군보다 상관을 더 두려워할 정도의 억압적인 군기 등이었다.

 

몰트케는 그의 스승인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 1780~1831)의 아이디어에 따라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선했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개혁하기 위한 장단기 이니셔티브들을 실행했다. 1860년이 되자 도로망이 개선되었고 철도가 부설되었다. 대규모 부대를 신속하게 이동시킬 수 있을 때 전쟁에서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 면밀히 검토했다. 아울러 그는 지휘관이라면, 상관의 기대나 명령보다는, 전쟁의 목적을 머릿속에 담고 있으면서도 본인 스스로 가장 적절한 판단에 따라 전투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쟁에서 적군을 굴복시키는 힘은 현장지휘관의 능력과 자율성에서 나온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몰트케에게 전략은 '자유롭고 실천적이며 예술적인 활동'이었고 또 '즉각적인 임시방편의 체계'였다.[각주:2] 몰트케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은 힘으로 적을 굴복시키는 행위'라는 사상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함으로써 소위 "위임형 전술(Auftragstaktik)"개념을 정립했다. 이 전술의 기본정신은 "명령에 복종하려고 할 때, 그것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판단되면 불복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몰트케는, "복종은 원칙이나 인간은 원칙 위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각주:3] 전투현장을 지휘하는 장교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런 정신이 1870년에 있었던 프랑스와의 결정적인 전쟁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게 했다. 독일은 프러시아에 의해 독일제국으로 통일된 것이다.

 

전략 실패의 사례: 스위스에어(Swissair)의 파산

 

전략을 중시하여 멋있는 전략으로 조직을 성장시켜보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는 우리나라의 많은 사례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크게 실패했기 때문에 여기서 언급하면 관련된 기업들의 명예가 훼손될 수 있어서, 외국사례를 들어 설명하겠다.

2002년 부도를 낸 스위스에어(Swissair)의 사례를 보면 극명하다. 스위스에어는 70여 년간 영업이나 재무구조상에서 가장 안전한 항공사라는 브랜드이미지로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지켜왔다. 심지어 "날아다니는 은행(Flying Bank)"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러던 스위스에어가 90년대부터 전략컨설팅회사인 맥킨지(McKinsey & Company)의 자문에 따라 인수합병시장에 뛰어들었다. 중소항공사를 대거 사들였고,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결국 파산의 종말을 맞았다.

겉보기에는 전략을 잘못 세우고 실행하는 바람에 스위스에어가 망한 것이므로 조직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역시 전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 보면, 공유된 확고한 비전/목적/방향이 조직성쇠의 독립변수이며, 전략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종속변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경영자들은 항공사의 비전/목적/방향을 확고히 하지 않았다. 특히 항공사의 존재목적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그저 시장점유율을 높여 스위스에어의 영향력을 확보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2001911테러 사건 이후 항공시장은 얼어붙었고 스위스에어는 파산했고, 결국 독일 루프트한자에 인수되고 말았다.

 

스위스에어의 파산은 전략부재나 전략실행의 실패가 원인이 아니었다. 경영진의 조직과 구성원, 고객과 시장에 대한 경영이론과 철학의 부재를 전략으로 메워보려고 했던 것이다. 경영진의 비전/목적/방향의 결여에 그 원인이 있었는데도 그것을 "사냥꾼 전략(hunter strategy)"으로 해결하려 한 멍청한 해결책 때문에 그 동안 쌓아왔던 스위스에어의 명성과 브랜드는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전략수립과 실행이 조직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전략수립과 실행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전략컨설팅을 받은 조직들이 형편없는 성과를 내거나 아니면 도산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렇다고 내가 전략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전략은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거나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영자들이 전략에 몰두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경영자들의 흐리멍텅한 마음의 상태를 깨어있도록 만드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강조하겠지만, 경영자와 구성원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비전/목적/방향이 훨씬 더 중요하고 그것이 모든 것의 기반이 된다. 그러므로 전략이란 비전/목적/방향을 실현하는 힘을 창조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구체화한 것이 곧 이니셔티브들의 조합인 셈이다.


<참고> 전략과 균형 잡힌 성과지표체계(Balanced Scorecard, BSC)

 

기업경영은 전략을 필요로 한다. 전략 없는 경영은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최근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전략의 정의를 살펴보자.

 

전략이란 어느 한 조직을 경쟁우위에 서도록 포지셔닝시키는 일을 의미한다. 그것은 기업이 어떤 산업에 참여해야 하는가, 어떤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가, 자신이 보유한 자원들을 어떻게 할당해야 하는가의 의사결정과 관련된다. 그리고 전략의 최우선 목표는 고객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주주들과 여타의 이해관계자들을 위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코렐리스 클뤼버, 조 피어스 2(2007), 송재용 외 옮김, 전략이란 무엇인가?, 3mecca, 23]

전략적 사고는 지난 수십 년간 다양한 형태로 진화되어 왔다. 처음에는 산업(industry)의 중요성과 제품(product)의 품질을 강조했고, 자원(resource)과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이 각광을 받았다가, 최근에는 기업의 비전(corporate vision), 가치(value), 신념(belief) 등 인적자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전략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전략계획과 전략실행은 기업의 장기적인 성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의 전략이란 그저 운명에 불과하다고 보는 비관론이다. 전자는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교수처럼 경영전략론을 가르치는 학자들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지만, 후자는 스탠포드대학의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교수처럼 전략이란 고작해야 사람의 문제에 종속될 뿐이라고 생각하는 인사조직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입장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입장인가? 전략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후자에 속한다. 페퍼의 견해에 공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의 성패는 소위 운칠기삼(運七技三)의 원리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성공의 전략적 요소가 3할 정도라면, 성공할 것인지의 7할 정도는 행운에 달렸다는 말이다. 결국, 기업의 성패는 전략에 따라 좌우된다기보다는 구성원의 마음가짐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다. 자신의 인생을 전략적 방향에 따라 커리어를 설계해서 그대로 실천해 온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멀리 보면서, 매순간 닥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길이 열린다. 기업의 현재 위치를 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과거에 세웠던 전략계획을 잘 실행했기 때문이라기보다 기업가의 직관적 판단과 구성원들의 헌신, 그리고 외부환경의 우연한 도움에 의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성공한 기업가들과 학자들 역시 그렇게 말한다.

인텔의 전략수립을 이끈 앤디 그로브의 역할은 미래를 미리 내다보았다기보다, 전략적 중요성을 먼저 깨달았다는 점이다. 인텔에게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발명하는 행운이 왔을 뿐 아니라, IBM PC 디자인에 참여하게 되는 더 큰 행운이 주어진 셈이다.”

[제프리 페퍼, 로버트 서튼(2009), 김용재 옮김, 증거경영, 국일증권경제연구소, 288]

 

인텔이 성공한 것은 전략수립이 탁월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더구나 수립된 전략을 철저히 실행에 옮겼기 때문도 아니었다. 굴러들어온 우연한 행운을 놓치지 않고 이를 최대한 이용할 수 있었던 회사의 역량(competence)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쯤에서 BSC는 전략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BSC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관리원칙을 기반으로 구축되었다.

[로버트 캐플란, 데이비드 노튼(2009), 웨슬리퀘스트 옮김, 전략실행프리미엄, 21세기북스, 13쪽 참조]

 

1. 경영진의 리더십을 통해 변화를 활성화하라.

2. 전략을 운영적 용어로 구체화하라.

3. 조직을 전략에 정렬시켜라.

4. 동기부여를 통해 전략을 모든 사람의 일로 만들라.

5. 전략을 지속적인 프로세스로 만들라.

BSC는 이렇게 전략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하도록 고안되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가히 전략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략을 중시했다. 1990년대 이전에는 전략계획의 수립에 집중했으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전략의 실행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BSC가 각광을 받게 된 것은 기업의 전략실행이 성과를 좌우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던 시기였다는 행운 때문이었다.

이제 마음을 비우고, 과연 전략기획과 전략실행이 기업성과에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 냉정하게 살펴봐야 할 때다. 몇몇 연구결과에 의하면, 전략과 기업성과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낮게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보면, 전략이 재무적 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일치된 견해를 찾을 수 없으며, 전략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평가했거나 기업성과에 영향을 준 다른 우연적 요인들을 전략적 요인들과 구분하지도 않았다.

[제프리 페퍼, 로버트 서튼(2009), 김용재 옮김, 증거경영, 국일증권경제연구소, 278~281쪽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략이 중요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마이클 포터의 경쟁전략에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포터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소위 "경쟁세력 모델"(five forces model)을 개발했다. 장기간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는 현상을 산업구조과 업종구조가 가지는 특성과 연관 지어 설명했다. 디지털화 시대에 타자기와 필름카메라를 만들어 파는 회사는 아무리 용을 써도 실패하는 업종인 것은 분명하다. 포터 교수는 어떤 기업이 특정 산업 또는 업종에서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장기간 이윤을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이 진입장벽의 보호 때문이었는지, 제한적 경쟁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산업구조 특성 때문이었는지 그 원인을 밝히려 했다.

그래서 업종이 좋아야 회사가 성공한다.” 또는 위치가 좋아야 매출이 는다.”는 말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사양산업이 있긴 하지만, 그리고 위치가 중요하긴 하지만, 사양산업 내에서도 높은 성과를 내며, 같은 위치에 있는 회사라도 경이적인 이익을 장기간 창출하는 경우를 포터의 경쟁전략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또한 특허도 없고 진입장벽도 없는 회사가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것은 전략개념이 아닌 다른 패러다임으로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우스웨스트항공사와 월마트, 그리고 약품소매체인인 월그린즈의 성공적인 사례는 기존의 전략개념으로는 설명이 곤란하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된다. (물론 포터는 멍청하지 않기 때문에, 그 후에는 개별기업의 경쟁우위전략을 설명하기 위해 소위 밸류체인(value chain)개념을 만들어서 사용했지만, 이것 역시 기업 내 여러 기능들의 인과관계 또는 상관관계를 묶어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요즘 전략컨설팅회사들이,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기업들에게, M&A를 통해 인근 산업으로의 진출을 검토하도록 조언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런 식의 컨설팅을 통해 M&A시장에 뛰어든 기업들이 많다. 내가 아는 한, 일부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상당부분 실패했거나 당초의 기대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전략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스위스에어의 사례>는 이미 앞에서 설명했다.

비상장 소프트웨어 회사로서 업계 1위인 SAS연구소의 존 샐(John Sall)고객과 조직원들이 말해주는 것을 듣고, 거기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 ‘진실을 들어주는 것이 똑똑한 제안보다 더 낫고, 굉장한 해결책을 찾으려 하기 전에 고객과 직원에게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프리 페퍼, 로버트 서튼(2009), 김용재 옮김, 증거경영, 국일증권경제연구소, 302쪽 참조]

많은 경영자들이 자신의 회사에 경영실적이 떨어지면, 전략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새로운 전략을 세워서 실행에 옮기면 실적이 좋아질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다가 기대했던 대로 회사가 움직이지 않으면, 또 다시 다른 전략으로 옮겨간다. 말하자면, 고객중심 경영전략을 실천하다가 실적이 오르지 않으면 비용절감 전략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제품전략, 가격전략, 마케팅전략, 고객서비스전략, IT전략, 유통망전략, 인재전략 등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이전에 수립한 전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저 필요한 대로 전략이라는 용어를 갖다 붙인다.

사우스웨스트항공사의 CEO였던 허브 켈러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전략적 기획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낭비다. 석 달 걸려서 무엇인가를 생각해 낸 다음, 경영진에게 그렇게 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는다. 우리는 한 가지 일에 정신을 놓고 몰두하지 않는다. 거기에 빠져서 정신이 나가버리면, 기회를 놓치게 된다.”

[제프리 페퍼, 로버트 서튼(2009), 김용재 옮김, 증거경영, 국일증권경제연구소, 310]

 

이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요약해보자. BSC, 성공하는 기업들은 전략계획이라는 것이 미리 확고하게 세워져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그 계획을 강력하게 실행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고안된 개념이다. 그런데, 전략계획이 확정적으로 수립되어 있다 해도, 그 전략을 실행해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급격한 변화는 계획 자체의 무수한 변형을 요구한다. 현실적으로도 무엇이 전략주제(strategic theme)이고 무엇이 전략요소인지 잘 알 수도 없다. 그렇다면, 전략실행의 강력한 수단으로 개발된 BSC는 도대체 어디다 쓸 것인가?

사실 별로 쓸 데가 없다. 기업가와 경영진들의 리더십 결여를 화려하게 포장해 주는, 그래서 그들의 불안심리를 해소해 주는데 약간의 쓸모가 있을 뿐이다. 조직원들을 철저하게 통제하면서 숫자로 쪼아댈 수 있는 강력한, 그러나 전혀 비효율적인 수단으로 쓰일 뿐이다. 그렇게 쓰게 되면, 회사는 서서히 골병이 들게 된다.


  1. 1806년 나폴레옹 전쟁 때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 1780~1831)는 황태자 아우구스트의 부관으로 출정했는데, 1806년 예나전투에서 패배해 황태자와 함께 프랑스군 포로가 되었다. 프랑스에 억류됐던 1년간 그는 프리드리히 대제의 영광과 전통으로 빛나는 프로이센 군대가 어째서 뿌리도 없는 오합지졸 나폴레옹 군대에게 어이없이 패했는가,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 결과 군사학교의 책임자로 재직하는 12년 동안 전쟁론이라는 위대한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카를 폰 클아우제비츠, 허문순 옮김, 전쟁론, 동서문화사 2009 참조) [본문으로]
  2. 로렌스 프리드만, 이경식 옮김, 전략의 역사 1, 비즈니스북스 2014, 235쪽 참조 [본문으로]
  3. 디르크 W. 외팅, 박정이 옮김, 임무형 전술의 어제와 오늘, 백암 2011, 102쪽 참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