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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이야기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4)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4)


먼저 읽어야 할 글: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1)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2)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3)


 

2. 비전(Vision)이란 무엇인가?

 

대략 50여 년 전, 나는 비전(vision)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비전이 곧 상상력이라는 사실도 실감하지 못했다. 물론 아직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누구나 삼시 세끼를 제대로 먹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경이 극도로 어려우면 코앞에 닥친 생존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미래를 상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시 강원도 시골의 생존환경이 나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었을 것이고,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당장에 처한 궁핍함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벗어날 마땅한 방법도 없었다. 미국의 구호물자가 가끔 시골로 전달되고 있어서 다들 막연히 미국은 아주 잘 사는 나라라는 사실 정도를 부러워하고 있을 뿐이었다.

 

기억에 의하면 19762월 말, 나는 처음 서울 청량리에 도착했다. 시내버스에서 나오는 매캐한 매연가스, 바삐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청량리역 광장을 잊을 수 없다. 서울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시골과 완전히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서울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아가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치와 차이를 조금씩 배울 수 있었다. 시골에서는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누구 집에 언제 제사가 돌아오고 그 때는 어떤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을지, 누구네 집 뒤주에는 먹을 것이 어느 정도 있는지, 동네 청년이 이웃마을 누구와 눈이 맞았는지 다 알고 있다. 어느 집이나 누구나 다 그렇게 뒷담화하면서 그렇고 그렇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다들 이해를 넘어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서울은 시골과 완전히 다르다. 이웃집 제삿날도, 타인의 재산은 물론이려니와 그들의 행동의 원인도 알지 못한다. 이런 것을 알기 위해 관심을 기울여 공부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세계다. 서울은 학습의 대상이다.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말하자면, 누가 권력을 쥐고 기득권을 누리며, 누가 그 권력에 빌붙어 먹는지 알게 되려면 공부해야 한다. 말하자면 교사와 교장의 차이, 고등학교와 대학의 차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 남자와 여자의 차이, 미국과 한국의 차이, 조선시대와 일제시대의 차이, 해방 전과 후의 차이, 남한과 북한의 차이, 경제와 경영의 차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는 공부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세상에는 차이 나는 것이 아주 많다. 시골에서는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것이 거의 비슷했다. 굳이 차이를 느껴야 할 필요가 없다. 과거에는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서울에서는 큰 차이로 느껴진다. 옛말에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게 아마도 이런 차이를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실제로 차이가 엄청 컸다.

 

내가 공부를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한 이래로 이 차이개념은 지금까지 늘 붙어 다녔다. 시골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것을 서울에서는 심한 차이로 느끼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화두처럼 여겼다. 차이에 관한 느낌은 어디서 오는 걸까, 하는 질문은 독일 유학시절에도 잊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박사학위논문도 차이에 관한 것이었다. 전략경영에서 리더십 수요가 발생할 때 그 차이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가 주제였다.

 

차이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를 중심으로 하는 프랑스 현대철학자들의 견해도 알아야 했다. 그들이 만들어 내고 주장하는 개념들 하나하나를 이해하기까지는 힘들었다. 그 개념들이 새롭고 신선했지만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이제 나는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대강 정리할 정도가 되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환경조건에 대한 인간의 열망(Aspiration)으로부터 시작해서 상상(Imagination)을 거쳐 기억(Memorization)에 의해 차이(difference)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열망, 상상, 기억의 세 요소가 비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조금 더 자세히 쓸 예정이다)

 

비전의 차이가 삶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은 명백하다. 비전이 없는 백성은 방자히 행한다는 구약성서 잠언의 말씀대로,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들의 행태와 범죄율을 보더라도 우리 사회는 비전이 결여된 상태인 것만은 분명하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조직도 비전이 없으면 발전하지 못한다. 비전이 없으면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다.

 

매력적인 비전(compelling vision)의 개념

 

개념적으로만 보자면, 비전이란 구성원들 사이에서 합의된(또는 공유된) 조직의 미래상(未來像, future image)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전개념이 개인이나 기업에서 실무적으로 작동하려면, 미래상이 구성원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야 한다.

 

구성원들의 열망이 담긴 비전의 특성은 그 달성여부를 알 수 있어야 하며(consequential), 도전적이어야 하고(challenging), 명확해야(clear) 한다. 이런 비전은, 구성원들에게 가슴이 뜨거워져서 그 비전을 피할 수 없도록 해야 하며, 그 비전을 달성해야 할 자원이나 수단은 구성원들에게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공유된 미래상이다.

 

한마디로 비전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compelling)이어야 한다. 이런 좋은 비전은 구성원들의 에너지를 불러일으키고, 그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정렬시키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매력적인 비전을 설정하고 그것을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기업의 비전은 대부분 겉으로 드러나는 공식적인 비전과 드러나지 않는 암묵적인 비전으로 나누어진다. 공식적인 홈페이지에는 '인간존중'이나 '인재중시'와 같은 멋드러진 비전을 게시해 놓았지만, 현실에서는 주먹이 더 가까운 경우가 아주 많다. 우리나라 재벌그룹의 대부분이 그렇다. 그래서 비전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조직구성원들은 이런 이중장부에 속을 만큼 바보 아니며, 어떤 비전을 따라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 잘 안다.

 

비전(vision)은 진정으로 원하는 상태(aspired state)를 말한다. 따라서 비전은 기업의 존재목적(purpose)과도 깊은 관련이 있으며,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direction)을 명확히 드러내야 한다. 물론 이 세 단어는 서로 조금씩 다른 뉘앙스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거의 한 단어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비전, 목적, 방향은 개인적 삶과 기업경영에 없어서는 안 될 엔진임과 동시에 나침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은 매출액 몇 조원 달성이 비전인 경우도 있고, 어떤 기업은 초일류기업이 되자는 구호를 내세우기도 한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것인가? 이런 선전과 구호가 과연 구성원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 수 있을까? 매출액이 올라가고 초일류기업이 되면 그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데? 우리나라와 같은 기업경영철학과 문화에서는 그 혜택이 모두 기업오너와 그 일가족에게 돌아가고 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런 것은 기업의 비전도 목적도 방향도 될 수 없다.

 

다음 표를 보면 각 용어의 차이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객을 가장 편하게 모시는 호텔이라는 표현은 호텔리어에게 아주 명확하다. 그 호텔의 시설담당자든 광고담당자든 영업담당자든 재무담당자든 누구라도 자신의 업무를 통해 고객을 가장 편하게 모시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런 비전은 구성원들이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피할 수 없지만 무한한 선택의 자율성도 누릴 수 있다. “우리는 인류의 질병과 싸운다”(제약회사) 또는 차별 없는 구호”(자선단체)와 같은 비전도 마찬가지다. 이런 예시는 그 기업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구성원의 마음을 뜨겁게 하면서도 그들에게 선택의 자율성을 부여하지 못하면 아무런 효험이 없다.

 

내가 방문했던 공공기관이나 공기업들의 대부분은 벽걸이용 비전이어서 인맥과 아첨과 줄타기와 주먹이 가까운 현실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교육부의 비전은 지난 수십 년 간 "수월성 교육", "꿈과 끼를 길러주는", "창의와 인성", "개개인의 행복구현"과 같은 화려한 수사학이 동원되었다. 하지만, 결국은 성적으로 학생들을 서열화 시키는 교육을 해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에 대한 비전인가, 그리고 누구를 위한 비전인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

 

 

비전의 명확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

 

"비전은 명확하여 구성원의 가슴을 뜨겁게 해야 한다"는 말을 정확히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두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비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가? 비전을 달성하는 수단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가?

 

 

비전은 명확하게 수단은 자율적으로(A)

 

가장 좋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비전/목적/방향이 구체적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도전해야 할 과제를 피할 수 없게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를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금년 여름방학을 통해 백두산을 등정하기로 합의되었다고 치자(비전). 구성원들은 그곳에 가는 루트와 장비와 숙소 등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자율성).

 

비전은 명확하게 수단도 명확하게(B)

 

백두산 등정이라는 비전과 함께 출발하는 날짜와 비행기, 가져가야 할 장비와 숙소, 등산코스까지 모든 것을 제시해주고 그대로 등반하라고 하면, 구성원들은 생각 없는 꼭두각시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등반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만약 대통령이 장관에게 특정한 국장과 과장을 인사조치하라고 지시한다면 장관의 자율성을 해치는 일이 되어 동기를 꺾어버리게 된다. 비전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말은 그 수단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라는 의미가 아니다.

 

비전은 불명확하게 수단도 불명확하게(C)

 

택시를 탄 손님이 기사에게 목적지가 어딘지를 말하지 않고 그저 앞으로 가라고만 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백두산인지 한라산인지 아니면 설악산을 등반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열심히 등반하라고 하는 경우와 같다. 구성원들은 무정부적 혼란상태에 빠지면서 나중에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게 된다.

 

비전은 불명확하게 수단은 명확하게(D)

 

무정부적 혼란상태를 방지하기 위해 구체적인 수단과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하는 것은 마치 택시를 탄 손님이 기사에게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은 채 30미터 앞의 편의점에서 우회전, 다음 신호등에서 좌회전, 1킬로미터 이후에는 지하터널로 들어가라고 계속 지시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기사가 알아서 갈 테니까 목적지를 대라고 소리를 칠 것이다. 매우 황당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최악의 리더십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A), (B), (C), (D)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민감하게 느낄 수 있다면 경영자(관리자)로서 기본적 자질을 갖추었다고 보아야 한다.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이 네 가지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자신이 속한 조직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정운영은 어떤 상황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