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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이야기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3)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3)

 

먼저 읽어야 할 글: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1)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2)



1. 성과(成果, Performance)란 무엇인가?

 

성과는 퍼포먼스(performance)의 번역어다. 퍼포먼스는 공연이나 연주회 등을 가리키는 용어다. 특히 예술가들의 길거리 예술행위를 지칭하기도 한다. 조직에서 팀 과제나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도 이 용어를 쓴다. 퍼포먼스는 어떤 행사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체 과정을 아우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의 인풋(input), 프로세스(process), 아웃풋(output)을 포괄한다. 퍼포먼스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일의 전체를 포괄하여 드러내야 하며, 그것이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조직의 존재목적은 성과를 창출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성과가 무엇인지 미리 사전에 명확히 정의해 두어야 한다. 그러나 성과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일이야말로 중요하지만 매우 어렵고 매우 논란이 되는 일이다.

 

성과와 성과지표

 

기업에서는 성과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작업이 어렵기 때문에 이것을 쉽게 전환하곤 한다. 그것이 바로 핵심성과지표(Key Performance Indicator, KPI)라는 대용물이다. 성과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일을 포기하고 기껏해야 핵심성과지표가 무엇인지를 찾는 작업을 할 뿐이다.

 

직장인들 대부분은 성과지표의 노예가 되어있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성과지표는 그 자체로서 매우 위험한 것이다. 어떤 성과가 성과지표로 환원되는 순간, 성과는 사라지고 성과지표만 남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성과지표가 아니라 성과가 아니었던가.

 

예를 들어보자. 세일즈맨에게 매출액은 좋은 성과지표가 될 수 있다. 성과지표는 대개 계량화되므로 일정액의 매출이 성과지표로 주어졌다고 치자. 세일즈맨 홍길동은 10억 원어치의 상품을 팔았는데, 세일즈맨 홍길서는 5억 원어치밖에 팔지 못했다고 치자. 그러면 대뜸 홍길동이 홍길서에 비해 두 배 더 잘 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래서 성과급도 차등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과지표 이외의 다른 기준이 없으니까.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홍길동은 세일즈 경력 20년이 넘었고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팔았다. 홍길서는 이제 갓 입사한 신출내기에다가 달동네에서 팔았다. 누가 잘했을까? 그래도 홍길동이 두 배쯤 잘 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매출액이 그렇게 된 이유는 홍길동을 포함한 경력직 세일즈맨들은 텃세를 부리면서 신참인 홍길서를 가장 힘들고 어려운 지역으로 밀어버렸기 때문이다. 신참 홍길서는 악전고투하면서도 지난해보다 매출이 10퍼센트 정도 더 올랐다. 노른자위를 누리던 홍길동은 10억 원을 팔았지만 지난해보다 더 많은 매출을 일으키진 못했다. 이제 누가 더 잘했는가? 홍길서? 아직도 홍길동? 아니면 모르겠다? 판단하기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면, 매출액이라는 지표로는 구성원들의 성과를 평가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지표체계를 다양화하여 판단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성과지표는 성과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매출액이라는 계량화된 지표는 매출액 이외의 모든 가치를 삭제해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계량화의 속성이다. 만약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서 취직한 첫 월급으로 몇 만 원짜리 만년필을 선물로 받았다고 치자. 그 만년필은 단순히 몇 만 원으로 치부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다. 매출액도 이와 비슷하다. 실제로 매출액은 세일즈맨의 기량에 영향을 받지만, 세일즈맨들 간의 신뢰와 협동수준, 회사의 마케팅전략, 제품의 품질, 판매지역 주민들과의 유대관계, 그들의 성향과 소득 수준 등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여러 성과지표를 적당히 섞으면 보다 더 원하는 성과를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의 지표든 여러 개의 지표든 상관없이 계량화된 성과지표는 그 숫자 이외의 가치에 대해서는 삭제해버린다. 심지어 하나의 성과지표는 다른 성과지표들을 훼손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매출액을 높이기 위해 대리점에 밀어내기식 판매를 한다면, 그것은 세일즈의 전 과정에서 특정한 이해관계인에게 과도한 희생을 요구하는 셈이 된다. 하나의 성과지표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 다른 성과지표를 나쁘게 만드는 멍청한 짓이다. 그러므로 성과지표로 성과를 표상하도록 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성과지표라고 하면 대뜸 계량화된 수치를 생각한다. 이런 성과지표가 갖는 또 다른 문제는, 수량화된 성과지표가 구성원들에게 명령과 통제, 지시와 복종, 억압과 착취의 느낌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성과지표로 목표를 부여하고 나서 그 목표달성을 위해 부하 쥐어짜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과란 무엇인가?

 

성과란 조직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말한다. 앞서 말했듯이, 성과란 결과를 만들어내는 전 과정을 포괄하고 있다. 구성원들이 자신의 직무를 성과주의(performance-orientation)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은 리더십의 핵심기능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조직의 성과로 볼 것인가조직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성과요소다.[각주:1]

 

첫째, 고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물을 제공하는 것(산출물)

둘째, 조직의 역량이 신장되는 것(조직역량)

셋째, 구성원에게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구성원 학습)

 

이 세 가지 요소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곧 조직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져오는 핵심요소이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은 고객이 원하는 결과물을 제공하기 위해 특정한 프로젝트에서 서로 협력하면서 몰입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조직의 역량이 확장되어야 하며 구성원 개개인은 학습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이런 성과요소들을 수량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다. 이 세 가지 성과요소를 억지로라도 수량화된 성과지표로 변환시키려고 한다면, 성과가 오히려 왜곡될 것이다.

 

따라서 조직의 발전에 공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사전에 정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구성원과 고객, 그리고 그를 둘러싼 이해관계인들이 한꺼번에 그 즐거움에 동참하는 프로젝트여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비틀즈(Beatles). 영국 리버풀의 조그마한 클럽에서 1957년부터 밴드를 만들어 연주하던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는 앨범을 내려고 시도했지만 음반사로부터 대부분 거절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앨범을 냈지만 거의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록음악에 대한 즐거움은 가시지 않았다. 1960년 독일 함부르크로 옮겨 로큰롤 클럽도 아닌 곳에서 연습과 공연을 하루 8시간씩 했고, 거의 2년간이나 계속했다.

 

함부르크 시절의 공연에 대해 존 레논은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우리의 연주 실력은 점점 좋아졌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밤새도록 연주를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죠. 우리는 그곳에서 더욱 열심히 노력했고 노래에 마음과 영혼을 담으려 애썼습니다. 리버풀에서는 고작 한 시간만 연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잘하는 곡만 반복해서 연주했죠. 하지만 함부르크에서는 여덟 시간씩 연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곡들과 새로운 연주방법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각주:2]


 

그렇다. 기업도 마찬가지로 고객이 원하는 산출물을 제공하면서도 조직의 능력을 확장하고 구성원들 개인의 기량이 향상되어야 한다. 이 산출물, 조직역량, 구성원학습이라는 세 가지 성과가 동시에 충족되어야지 어느 하나만 충족되어서는 기업은 지속가능한 경영을 유지할 수 없다.


  1.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리처드 핵크만, 성공적인 팀의 5가지 조건, 교보문고 2006, 59~74쪽 이하를 참조할 것. [본문으로]
  2. 말콤 글래드웰, 아웃라이어, 김영사, 67쪽.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