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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이야기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2)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2)

 

우선 읽어야 할 글: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1)


시스템적 치유

 

시스템적 치유는 항상 철학적 사유에 근거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사안에 대한 철학적 논의도 없이 실용적인 대안들을 제시한다는데 있다. 예를 들면,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의 문제는 전형적으로 철학적 사유와 관련되어 있다. 복지문제는 철학적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과제라는 말이다. 하지만, 철학적 논의는 사라지고 복지는 곧바로 실용적인 예산문제로 환원된다.

 

복지와 같은 중대한 과제를 철학적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채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화 되지 않은 정부에서는 철학적 논의는 고사하고 토론조차 하지 않는다. 철학적 논의를 계속하다보면, 민주주의를 도외시하는 자들의 인간과 조직에 관한 가치관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철학적 논의는 인간을 실존적 존재로 보는가, 아니면 인간을 생산자원이나 수단으로 보는가가 극명하게 드러나게 한다. 독재자들은 복지를 철학적 논의와 연결시키는 것을 두려워한다. 복지와 관련된 철학적 논의는 잔인한 인간관의 문제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국가경영보다 철학적 사유를 두려워하는 곳은 기업경영이다. 경영자들은 대부분 철학적 사고란 생산성을 훼손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재벌기업이 인수한 대학들에는 대부분 인문학 분야를 축소하고 학생들에게 회계학을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강제하는 등의 몰상식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 밖의 대학에서도 기업의 입맛에 맞는 인재를 만든답시고 기업의 인재상을 그대로 답습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학은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다. 대학은 부패한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학생들이 스스로 비판적 사고를 연마하는 곳이다.

 

기업은 더욱 인간과 조직에 대한 근원적 성찰 없이 즉각적인 효험이 있는 이론이나 수단을 요구한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개념이나 방법론, 대박 날 수 있는 전략을 세우라고 요구한다. 대부분의 경영이론이나 개념들은 기업의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진정으로 생산성을 높이려면 비판적 사고를 연마한 인재를 채용해서 조직하고 그들의 재능을 맘껏 발현하도록 환경조건을 정비함으로써 기업의 비전과 전략을 실현해 갈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적 치유다. 현실을 직시하면 현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그런 불편함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다.

 


 

가정경영이든, 기업경영이든, 국가경영이든 규모와 복잡성의 차이가 있을 뿐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라는 동일한 원리에 의해 이루어진다.

 

인류가 직면한 문제는 실존적 평등과 기능적 불평등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이 위대한 과제를 실무적으로 풀어낼 때는 철학적 사유를 기반으로 시스템적인 치유를 매우 세심하게 정비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인류가 당면한 철학적 사유의 결론은 인간존중의 원칙과 민주적 합의의 원칙을 인류사회와 모든 조직에 실현하는 것이다. 첫째, 인간존중의 원칙을 지키려면 인적자원관리(Human Resource Management)를 인간존중관리(Human Respect Management)로 그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이것을 시스템적으로 치유하려면, 조직을 피라미드식 수직구조에서 로마식 수평구조로 바꾸고 각 직무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 이런 작업을 통해 명령과 통제, 지시와 복종의 군국주의적 조직문화가 존중과 배려, 나눔과 상생의 민주적 정신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이 그림을 보자. 한국은행은 기본적으로 피라미드형 수직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정부조직을 포함한 공공조직은 이렇게 되어 있다. 장관, 차관, 차관보 등으로 설계되어 있는 정부에서부터 기업조직의 회장, 사장, 부사장 등으로 이어지는 구조도 동일하다.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1인이 모든 권력을 차지한다. 그의 의도대로 조직이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반면에, 독일연방은행은 총재, 부총재, 이사들이 횡렬로 각자 자신이 맡고 있는 분야에서 타분야에 영향을 끼칠만한 사안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합의하는 관행을 지키고 있다. 총재라고 해서 모든 사안을 자신의 뜻대로 결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없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각자 자신의 맡은 일이 있을 뿐이다. 총재라고 해서 총괄하는 일만 하지 않으며 자신의 고유한 업무가 있다위아래의 개념은 거의 없고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서로 다른 전문성을 가지고 서로 토론하고 합의하여 의사결정해가는 구조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등으로 피라미드식으로 계급화한 사람이 바로 모세였다. 열흘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가나안땅을 시나이반도에서 40년의 세월 동안 헤맸다. 모세를 포함한 1세대는 시나이 반도에서 다 죽었다. 피라미드 조직이 효율적이었다면 그랬을 리가 만무하다. 피라미드조직은 단기적으로는 장점이 있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폐해가 매우 큰 조직형태다.

 

그래서 서로 견제와 균형의 묘를 살릴 수 있는 합리적 조직구조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것이 수평구조다. 이런 수평구조의 뿌리는 고대 로마공화정에서 찾을 수 있다. 정무관을 매년 선출하여 국가운영을 맡긴 공화정의 정신이 오늘날에도 서유럽의 민주화된 국가에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모든 탁월한 조직운영의 기본 틀은 민주적이고 공화적인 정신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집정관, 법무관, 감찰관, 조영관, 재무관, 호민관 등의 정무관을 뽑아 그들이 서로 협력하고 견제하면서 조직운영의 균형을 잡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굳이 그림으로 표현하지만 다음과 같다. 우리는 지금 피라미드화된 계급구조에 익숙하지만, 계급이 역할과 책임의 차이로 전환된 네트워크화된 조직을 생각하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계급을 위계질서가 아니라 역할과 책임의 크기로 전환하여 마치 위계가 없는 것처럼 시스템을 설계한 나라가 바로 스위스다. 그 결과 대화와 토론, 합의와 존중과 배려, 나눔과 상생의 정신으로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이런 스위스 모델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나중에 상세히 다룰 예정이다.)


 

둘째, 민주적 합의의 원칙은 대화와 토론을 전제로 한다. 상사와 부하 사이에서는 온전한 토론이 이루어질 수 없다. 권력의 차이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권력이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배분되어 있을 때 가능하다. 토론과 합의의 원칙은 기본적으로 경영의 민주화를 지향한다. 아무리 민주화된 경영관행이라도 조직운영의 효율성을 고려할 때, 현실에서는 늘 그렇듯이 계급적 구조를 완전히 제거할 수도 없다. 때문에 부하들에게는 상사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상사에 대한 일종의 반대의무(obligation to dissent)를 부하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부하들이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비리와 적폐는 상당히 사라질 것이다.


이렇게 계급이 있지만 그것이 권력의 차이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역할의 차이로 느끼도록 하는 인간존중의 경영이야말로 생산성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인간존중의 경영 사례: 빌 메리어트 회장 이야기

 

이러한 원칙을 시스템적으로 구현하려면 정비해야 할 핵심개념은 여섯 가지다. 성과, 비전, 전략, 조직, 역량, 인사 등과 같은 개념을 시스템설계(system design)를 통해 면밀히 조절해나가야 한다

이 개념들을 하나씩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