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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록/에세이

욕망하는 인간

인간의 욕망과 비전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입니다
. 어떤 사람은 너무 큰 욕망에 사로잡혀서 스스로 파멸에 이르고, 어떤 사람은 너무 적은 욕망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썩힙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미래에 더 좋은 상태를 욕망합니다. 그 욕망을 드러내는 방식에 의해서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이 욕망이 미래를 향하여 구체화 된 상태가 곧 비전(vision)입니다.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물론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미래를 상상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상상의 뇌에서 일어나는 아주 독특한 기능입니다.

 

어린 아이에게 잠자리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아기의 뇌가 새로운 상황을 상상하여 뇌세포의 연결망(neural wiring)을 새롭게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상상하게 하는 훈련이 가장 좋습니다. 상상력의 결핍은 인간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적입니다. 상상력이 결핍되었음을 드러내지 않는 방법은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상력의 결핍은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활동의 함정(activity trap)을 만들어 냅니다. 열심히 일하지만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이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활동의 함정이란 일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일 자체가 목적이 되어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세일즈 책임자는 매출액을 늘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해서 세일즈활동을 강화합니다. 이 경우 판매는 증가하겠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줄어듭니다. 판매가 목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비전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자기 스스로 비전을 향하여 한 발짝씩 전진하는 셀프리더십을 발휘해 나가는 방법도 철저한 비전을 세워서 실천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욱 비전/목적/방향의 중요성을 잃지 않습니다. 누구나 좌절의 순간이 있지만, 그 순간을 극복하게 하는 것은 비전입니다. 자포자기하거나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경영리더십과 비전, 그리고 자아

 

조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직은 비전/목적/방향이 어느 정도로 매력적이냐에 따라 조직구성원이 잠재력을 발휘하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리더십의 출발은 비전/목적/방향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들을 정비해야 하고, 나아가 그 조건에 부합하는 인재를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리더십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비전(vision)을 향하여 시스템(system)을 정비하고 인재(talent)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런 정의를 한 마디로 말하면, 리더십이란 시스템을 정비하고 인재를 확보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반드시 비전/목적/방향을 전제로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비전이 없이는 시스템 정비도 인재확보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비전이야말로 리더십을 가능케 하는 출발점이 되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도자들이 뚜렷한 비전도, 합의된 방향도 없이 시스템을 설계하고 좋은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떱니다. 물론 비전이 없이도 시스템을 정비하고 인재를 확보할 수는 있지만, 조직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코 나아갈 수 없습니다. 비전은 인간사 모든 것의 전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비전(vision)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독특한 비전이란 내적 자아(intrinsic self), 즉 분석심리학에서 자기(self)라고 부른 것이 활성화된 상상력의 결과를 말합니다. 인간은 내적 자아가 강력하게 원하는 상상(vision)만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내적 자아(intrinsic self)의 실체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외적 자아(extrinsic self), 즉 분석심리학의 에고(ego)와 구분되는 내적 자아가 진정한 의미의 자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적 자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적 자아가 외적 자아의 통제를 받기 때문입니다. 외적 자아는 태어나서 사회화 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자아인데, 주로 경험과 교육적 배경에 의해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 사고를 당한 경험이 다시는 지하철을 타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외적 자아의 작용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인 것으로 보이기 위해 형성된 자아이기 때문에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이렇게 외적 자아는 내적 자아를 통제하기 때문에 외적 자아가 강할수록 내적 자아가 원하는 것을 실현하지 못할 수도 있고, 내적 자아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외적 자아(ego)와 내적 자아(self)를 이해하라

  

운동을 할 때, 코치들이 힘을 빼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내가 테니스를 배울 때도 그랬고, 골프를 배울 때도 역시 그랬습니다. 수영을 배울 때도 몸에 힘을 쭉 빼고 자연스럽게 스트로크를 하면 앞으로 잘 나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물 속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을 주게 되는데, 그것은 아마도 물 속에서 헤엄치다 물먹은 경험, 물속에 빠져서 혼난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갓난 아기들은 물 속에서 헤엄을 아주 잘 칩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물에 대한 좋지 않은 경험이 쌓여서 외적 자아를 형성합니다. 그 좋지 않은 경험으로 인해 외적 자아가 발동하여 더 이상 물을 먹지 않도록 온 몸에 힘을 주게 됩니다.

 

외적 자아는 내적 자아를 감싸는 깁스(Gibs)와 같아서 그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내적 자아의 발현이 힘들게 됩니다. 외적 자아가 아니라 내적 자아가 나를 콘트롤하게 하면 됩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무시하면 됩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가끔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매우 엉뚱한 짓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와 같은 천재뿐만 아니라 빌 게이츠, 워렌 버핏, 아브라함 링컨, 정주영, 백범 김구, 이순신 등과 같이 그 시대의 물결을 거슬러 거꾸로 살아간 위인들도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별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기꺼이 해낼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내적 자아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무시한 것이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았고, 남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그 길을 꾸준히 실천해 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내적 자아가 활성화된 상상력의 결과를 곧 비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비전까지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자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