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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

하이데거와 경영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독일의 관념적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포스트모던적인 생활세계 속의 인간존재를 드러나게 한 철학자입니다. 하이데거 자신은 실존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의 사상은, 자기 자신을 실존주의자라고 표방한 사르트르보다 더 실존주의적이었습니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철학이론을 체계화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체계화된 이론이 얼마나 생활세계와 동떨어져 있는지를 끊임없이 밝혀주려고 애썼습니다. 이론과 개념의 합리성 확보에 매몰되어 있는 학자들이 스스로 깨우치도록 전통적인 학문방법을 비판했습니다.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Consilience)이라는 책에 이오니아의 마법”(Ionian Enchantment)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기원전 6세기 이오니아 지방에 살았던 탈레스는 모든 물질이 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변화하지 않는 본질은 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이오니아학파는 변화하지 않는 만물의 근본을 탐구하려 했습니다. 그 후에 플라톤은 그것을 이데아라고 생각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이라고 보았습니다. 피타고라스는 그것을 수(number)라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불변하는 본질 또는 동일성을 찾아내려는 사유의 방식은 후대의 모든 학문에 그대로 전수되었습니다. 이것을 에드워드 윌슨은 이오니아의 마법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서양사상과 학문전통은 이 마법에 걸려있습니다.

 

서양학문은 변화무쌍한 세계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서 진리를 발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현상과 존재를 넘어서는, 변화하지 않는 보편성, 동일성, 객관성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려고 애썼습니다. 그 결과, 모든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보지 못하고, 분석해 들어가서 실증해내야 하는 학문방법, 즉 실증주의적 환원주의(reductionism)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경영학도 이런 이오니아의 마법에 걸려있습니다. 최근에 공전의 히트를 친 경영관련 문헌들은 다 이 마법에 걸려있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높은 성과를 내는 보편적 원리를 발견했다고 공언했습니다. 위대한 성과를 내는 블랙박스를 해독했노라고 장담했습니다. 수십 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추출해낸 결과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성공적인 원리들을 실천한다고 해서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며, 그 책에서 언급된 기업들도 몰락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벤치마킹 대상이 될만한 기업들조차 시간이 지날수록 평균 수준의 기업으로 추락합니다. 이런 전례는 이전에도 많았습니다. 80년대에 열광했던 톰 피터스의 『초우량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라는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소개한 기업들 중에는 아직까지 살아남지 못한 경우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자기계발서 중에서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The 7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도 역시 이오니아의 마법에 걸린 책입니다. 여기서 제시하는 7가지 습관을 잘 익히면 성공적인 사람이 된다는 불변의 공식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어떤 보편적 법칙을 추출하여 가르치는 방식이야말로 칸트나 헤겔이 추구했던 이성중심적인 학문방법입니다. 헤겔이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듯이, 서양학문은 사물과 현상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중시했습니다. 분석적 이성이야말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이해는 이오니아의 마법을 점점 더 강화시켜 줄 뿐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하이데거는 진리는 분석적, 추상적, 객관적, 이성적 작업을 통해 도달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일상적이고도 구체적인 생활세계 속에서, 즉 매순간 벌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진리를 체험합니다. 추상화된 교과서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의미부여가 곧 진리인 셈입니다. 진리는 불변하는 본질이 아니라 일상에서 부딪치는 모든 것에 대한 의미부여입니다. 매순간 내 영혼을 순수하게 만드는 나 자신에 대한 정직한 고백이야말로 진리의 사건입니다. 진리를 인식하게 하는 일상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세계를 투명하게 이해하고 세계와 연결하게 됩니다.

 

나 역시 오랫동안 서양학문적 전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당연히 이오니아의 마법에 걸려있었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분석 결과를 보아야 안심했습니다. 실증적 결론을 도출해서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이런 방법이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하이데거, 키에르케고르, 사르트르, 들뢰즈, 라캉과 같은 철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서였습니다.

 

분석하고 쪼개서 그것을 추상화함으로써 변하지 않는 본질을 규명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더 근본적이고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생활체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점차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을 갖도록 인도했습니다.

 

경영은 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에 의해 좌우됩니다. 마음은 분석의 대상일 뿐 아니라 연결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연결되어 있도록 해야 조직이 진정한 협동체(공동체)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이오니아의 마법에 걸린, 연결 없는 조직은 무한 경쟁의 긴장과 파벌싸움의 연속일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