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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록/에세이

경영의 합리화 = 맥도날드화 = 비합리성

나는 경영이란 합리화 과정이라 생각해왔습니다. 경영에서 합리화란 더 빠르게 더 많이 생산해내서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배웠고 아무 의심 없이 경영현상을 그런 시각에서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어느 정도 경영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합리화에 관한 내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그렇지만, 우선 제대로 된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내가 한국은행에 근무할 때는 전()근대적인 관리관행을 보다 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바꿔야 했습니다. 부드럽게 표현해서 전근대적이라는 용어를 썼지, 좀 심하게 말하면 '봉건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기 전에는 우리나라 경영관리의 특징을 한마디로 얘기한다면 봉건적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한국은행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성과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설계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성과를 관리한다는 개념 자체가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목표설정에서부터 평가보상에 이르는 전()과정을 정교하게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면 직원들이 그 시스템의 취지에 맞게 행동해 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이 너무나 순진했다는 사실은 금방 밝혀졌습니다. 내가 의도했던 대로 경영진과 직원들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성과관리 시스템을 자기 자신의 이해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원들이 제도와 시스템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교육훈련프로그램을 잘 만들어서 열심히 교육하면 성과관리의 취지를 이해하고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해줄 것으로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도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경영자로서 오랫동안 부하직원을 관리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스템 개편이나 교육을 통해서 직원들의 태도와 행동이 변화된다는 주장이 매우 순진한 생각이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를 바꾸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면, 겉으로는 어쩔 수 없이 바뀐 척 해도 속으로는 잘 바뀌지 않습니다. 그것도 자신보다 권력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자신을 바꾸려고 한다고 생각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왜 시스템이 당초의 의도 대로 작동하지 않을까? 직원들을 불러다 야단을 치거나 혼내면 될까? 때로 그런 방법을 써보기도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부하들과 점점 멀어질 것입니다. 야단 맞은 직원들은 아마도 평생 속으로 이를 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시스템으로 강제해도 안 되고, 교육을 해도 안 되고, 야단을 쳐도 안 되면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조직운영은 뭐니뭐니 해도 시스템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은 점점 형식과 규정, 규칙과 지침들이 많아지고 관료화 되어 갔습니다. 산더미 같은 서류를 분석하고 평가하고 사실여부와 진위여부를 가려내는 일을 지루하게 해야 합니다. 잘 가꾼 정원에는 잡초가 없듯이 조직을 잘 닦고 조인 기계처럼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은 기계가 아닙니다. 그 조직 속에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기계가 아닙니다. 성과관리 시스템이라는 것은 기계적인 제도일 뿐입니다. 제도는 생명과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맥도날드와 같은 패스트푸드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조직과 시스템에 결코 적합하지 않으며 만족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물샐 틈 없이 정교한 시스템과 제도를 만들수록 조직구성원들은 조직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조직이 점점 맥도날드화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영자들이 맥도날드식 경영을 추구하면서, 직원들에게는 우아한 프랑스요리를 만들어내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맥도날드화의 장점

 

막스 베버가 관찰한 인간의 합리화 현상은 세계를 보는 눈을 확 열어주었습니다. 어째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형태를 꾸준히 합리적인 방향으로 바꿔가는 걸까? 그리고 그것을 추진하는 원동력은 뭘까? 베버의 통찰력은 이런 의문에 어느 정도 답을 줄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습니다.

 

교회와 교회가 믿고 있던 신앙이 합리화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속의 영역, 특히 정치와 경제 영역에서 지난 수백년간 합리주의 이데올로기가 점점 더 강력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합리화, 합리성, 합리주의 관념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선 정치부문의 합리화는 관료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관료제(bureaucracy)는 막스 베버의 전매특허처럼 알려진 정치행정형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매우 효율성이 높고, 예측가능하며, 권력자의 통치이념에 따라 쉽게 통제할 수 있는 형태로서 매우 합리적인 조직운영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관료조직이라는 말이 마치 번문욕례(繁文縟禮, red-tape)와 같은 비효율의 대명사로 알려졌지만, 행정조직이 만약 벤처기업처럼 움직인다면, 시민들은 오히려 더 비효율을 느낄 것입니다.

 

만약 세무공무원이 조세행정을, 판사가 재판을, 경찰이 치안유지를, 교사가 학생들을 마치 소규모 벤처기업처럼 정해진 룰도 없이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기동성 있게 처리해버린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까요? 행정조직은 기본적으로 관료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억지로 기업처럼 효율화하려고 한다면 오히려 더 큰 비효율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계산가능하고 예측가능한 행정이 되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베버의 빛나는 통찰력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무원들이 관료제의 틀 속에 묻혀버리면, 그들의 영혼이 말라 비틀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합리화된 환경 속에서 자기 자신을 포기해야 하며, 명령과 통제의 메커니즘을 철저히 따라야 되므로 공무원들의 정신력이 억압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게 되어 비인간화 현상이 드러납니다. 막스 베버는 이런 현상을 합리성의 철창(iron cage of rationality, 독일어로 stahlhartes Gehäuse라고 쓰는데, 본래의 의미는 쇠 만큼이나 단단하게 만든 집이라는 뜻임)라고 하면서 매우 우려했습니다.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해도 잘리지 않고 정년퇴직까지 보장되기 때문에 철밥통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것은 베버가 염려했던 이 합리성의 철창이라는 말이 약간 비틀려서 쓰여지고 있는 용어입니다. 내가 잘 아는 공무원들을 보더라도 개인적으로 매우 유능한 사람들인데, 그들이 의사결정하는 것을 보면 멍청한 경우를 자주 봅니다. 관료제라는 합리성의 철창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똑똑한 관료들이 멍청한 짓을 하는 이유와 그 처방에 대해서는 나의 책, 똑똑한 자들의 멍청한 짓, 비봉출판사 1998을 참조하세요.)

 

아무튼 국가운영을 합리화할수록 공무원들을 관료제라는 철창에 가두어버리는 셈이 됩니다. 베버의 견해대로 정치가들의 지휘를 받는 행정조직이 합리화될수록 관료들은 관료제의 틀에서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되고, 나가서는 그들의 기본적인 인간성마저 부정됩니다. 그래서 합리화가 진행될수록 더욱 강력한 철창 또는 철밥통으로 변해갑니다.

 

합리주의 이데올로기, 즉 합리화의 관념이 지배적인 사상이 될 때 정치와 행정의 본말이 전도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합리화를 위한 합리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정치영역에 이어, 경제영역의 합리화는 기업경영에서 가장 두드러집니다. 레스토랑이 합리화되어 맥도날드가 되었듯이, 다방이 합리화되어 스타벅스가 되었듯이, 그리고 신발가계가 합리화되어 나이키가 되었듯이 기업이 일단 합리화의 과정에 들어서면, 끊임없는 맥도날드화 현상이 일어납니다. 효율화하고, 측정하고, 통제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이렇게 되면, 조직구성원들은 원하는 목적 또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수단을 선택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수단이나 대안은 이미 계산되어 있어서 가치판단 없이 선택만 하면 됩니다. 심지어는 대안까지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선택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규정과 지침 그대로 실행에 옮기면 됩니다. ERP, BSC, SEM, CRM, 6시그마 등에 의해 사무직 종사자들도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것처럼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효율화, 측정가능화, 예측가능화, 통제화의 특성은 기업경영에서 거의 불문율처럼 되었습니다. 아니 신성시 되어가고 있습니다.

 

기업이 이렇게 합리화함으로써 얻는 주요 혜택은 다음과 같습니다.

 

     비용절감

     고객서비스의 품질향상

     업무프로세스의 효율성 확보

     강력한 통제시스템의 구축

 

기업이 합리화되면 될수록 이런 결과를 향유할 수 있으니 경영자들이 합리화의 유혹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경영자들이 합리화를 하려고 온 힘을 기울이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될까요?

 

욕구가 욕망으로 확장되고, 욕망이 통제망을 벗어나 탐욕으로 나가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탐욕이 탐욕을 부르는 탐욕의 블랙홀(blackhole of greed)에 빠지는 것처럼, 합리화의 유혹에 일단 빠지면 합리화 자체를 위해 합리화가 지속됩니다. 이것이 곧 비합리성을 유발하여 합리화의 비합리성(irrationality of rationalization) 현상이 나타납니다.

 

어떤 비합리성이 나타나는지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