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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록/에세이

존재와 의식

물질문명은 존재와 의식을 갈라놓았습니다. 의식의 외부에는 객관적인 존재가 있고, 그것을 내가 의식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배웠고, 이것에 추호의 의심도 갖지 않습니다. 이처럼 존재는 절대적이어서 우리는 그것을 실재(reality)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재(reality)는 어떻게 생성될까요? 최근 신경생리학의 연구결과에서 인간의 뇌가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경험과도 일치합니다. 눈을 감고 오렌지 조각을 입안에 넣고 씹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입에 오렌지 향이 퍼지면서 침이 고일 것입니다. 상상만 했는데도 우리의 뇌는 현실처럼 인식합니다.

 

그렇다면, 실재(reality)란 무엇인가? 존재는 무엇이고 또한 의식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의식은 실재를 창조합니다. 이것은 현대물리학자들, 특히 양자이론가들이 내린 결론과 유사합니다. 물질과 그 물질을 구성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입니다. 물질은 공간에서 스스로 생성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합니다. 현대과학은 아직 그 물질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아원자(subatomic) 수준의 입자들은 관찰자의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물질은 의식의 흐름이며, 존재는 단지 그 경향성(또는 가능성 또는 잠재성)을 나타낼 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철학적 사유에서도, 특히 쇼펜하우어는 이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Die Welt ist meine Vorstellung)라고 정의했습니다. 나의 의지적 표상이 곧 세계를 구성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하이데거의 철학에서도 사물은 그냥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부여하는 의미의 연관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내가 쓰고 있는 이 PC는 글을 쓰기 위해 나의 손가락이 자판을 두드릴 수 있을 때만 존재합니다. PC는 그냥 PC로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나의 두뇌와 의식에서는 PC의 성능과 사용목적, 그리고 사용법, 나아가 나의 책상과 연구실이라는 맥락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현대과학과 철학의 연구결과에서 얻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사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존재가 의식을 구성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존재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존재론과 인식론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경영자들의 사고와 현실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창조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경영자는 지금 당장 보이는 실적과 숫자에 현혹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경영자의 보이지 않는 의식의 흐름, 즉 마음의 상태가 조직의 문화를 바꾸고 경영의 성과를 창조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