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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록/에세이

한국은행, 참 잘했어요!

나는 한국은행에서 20년을 일했습니다. 한은을 떠나기 전 3년 간은 이코노미스트가 아닌 경영학자로서 조직개혁작업을 했었습니다. 지금도 한은의 역할과 그 중요성이 추호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정치가들은 당장의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본비용을 낮추려고 하기 때문에, 그리고 정부관료들은 통화정책으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려고 하기 때문에, 중앙은행을 손아귀에 넣고 싶어 안달을 합니다.

 


나는 한은에서 일하는 동안 수없이 그런 시도를 봐왔습니다. 한국은행은 사실상 외부의 그런 시도에 저항할 아무런 방어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은행법에서 정한 이외의 어떠한 권한과 권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들은 이코노미스트 집단으로서의 전문성과 국민적 신뢰 이외의 어떤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한은이 어제(2008.12.11) 기준금리를 연 4%에서 3%로 낮췄습니다. 1%포인트 인하는 사상 최대폭이고, 기준금리는 사상 최저수준이라고 합니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우리 경제가 상당 기간 아주 낮은 성장률을 보이고, 고용도 크게 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고 언론은 보도했습니다.

10
년 전 외환위기 시절 한은 조직개혁작업을 할 때, 나는 당시 이성태 부총재보를 모시고 일한 적이 있었는데, 내 경험에 의하면 그 분은 개인적으로도 존경할만한 분입니다. 한은 후배들도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번 조치는 정말 잘 한 일입니다.

 

내가 만난 존경할만한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엄살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그들은 10년 전 외환위기와 비견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이 몇 달만 더 지속되어도 살아 남을 기업이 몇이나 될까 걱정스러웠습니다. 물론 내가 만난 경영자라야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극히 적은 부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겪는 고통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금의 위기가 세계경제와 밀접히 연동되어 있는 한국경제로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하더라도, 지금의 기업현실은 미래의 물가불안 때문에 그냥 참으라고 하기에는 너무 잔인한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한은은 인플레이션을 우려하여 금리 내리는 것을 주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후일을 염려할 단계가 아닌 듯 합니다.

통화정책을 집행할 대상과 장(
)이 사라지면 한은은 아무 역할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심각한 실행불가능성(impracticability)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금융기관들과 기업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가던 외환위기 때 한은이 거의 속수무책이었던 경험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환자를 일단 살려놓은 후라야 재활치료가 가능하지, 죽은 후에는 소용이 없습니다. 우선 기업과 금융기관들을 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더 과감한 정책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살아 난 다음에 서서히 그 동안의 방만한 경영행태에 대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도록 정책적 수단을 발동해도 좋을 것입니다.

 

아무튼, 한국은행의 1%포인트 금리인하는 참 잘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