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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록/에세이

경영의 맥도날드화가 비용을 절감한다고?

경영자들이 자신의 회사를 합리화하려는 궁극적인 목적은 이윤최대화입니다. 더 많은 이윤을 내려면 영업이익을 올리거나 비용을 줄이거나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실행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습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합리화 작업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동안의 경험에 의하면 기업에서는 합리화를 위한 합리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합리화가 너무 과도하게 추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됩니다. 앞서 경영의 <합리화 과정을 맥도날도화>로 설명했습니다. 나의 이런 우려는 합리화에 따른 혜택보다는 그 폐해가 더 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난 외환 위기 이후 우리나라 기업의 대부분은 BPR, ERP, BSC, 6시그마 운동과 같은 경영합리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습니다. 그 결과 많은 성과가 있었다는 믿음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기업의 경우에는 이런 시스템을 깔고 제대로 운영하게 되기까지,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씩 걸립니다. 여기에 드는 비용도 수십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이르는 액수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계산해도 별로 남는 것이 없습니다. 물론 사무처리 과정이 자동화되었다는 정도의 혜택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필요인력이 감소되어 인건비가 줄었는가? 나는 아직 그런 회사를 본 적이 없습니다. 노동생산성이 올랐다는 연구보고서만큼이나 그렇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연구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장경험에서 나오는 직관입니다. 직원들의 얼굴을 보면 압니다. 그들은 맥도날드화가 얼마나 자신의 잠재력을 갉아먹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 더 정직해진다면, 그런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서 얻는 혜택은 경영자들의 불안심리를 다소나마 해소해준 것 말고는 거의 없습니다. 경영자들은 뭔가 하지 않으면 자신의 경영방식이 뒤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경영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지요. 성과가 안 오르면 무능한 경영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제일 두려워합니다. 성과를 오르게 하려면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립니다. 하나의 맥도날드화 프로젝트가 끝나면 또 다른 프로젝트를 구상합니다. 끊임없이 경영합리화를 위해 뭔가 하지만, 결국은 시중에 유행하는 온갖 맥도날드화 프로젝트들이 돌고 돌아 제자리에 옵니다. 경영의 지속적인 맥도날드화는 부드럽게 말해서 경영자의 불안심리 해소방안이라고 했을 뿐입니다. 사실은 혜택이 아니라 오히려 폐해를 가져다 줍니다. 조직구성원들에게 정신적 안전망(mental safety net)도 없이 시행하는 맥도날드화는 기업에 거의 재앙과 같습니다. 경영자 자신이 정신적 안전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맥도날드화 프로젝트에 전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구성원들의 정신적 안전망이 튼튼하다면, 맥도날드화가 필요 없겠지요. 우리가 맥도날드에 들어가는 이유는 햄버거의 맛에 중독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Slow Food에 담긴 정신적 토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맥도날드화에 집착하는 것은 구성원들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황폐화되었는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맥도날드화 프로젝트가 대형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심지어 병원이나 연구소 조직에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가 일단 시작되면, 멈출 수 없습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못합니다. 합리화의 끝까지 가야 합니다. 프로젝트가 끝나더라도 그것을 유지 보수하는데 막대한 비용을 지출해야 합니다. 인력을 줄이는 게 아니라 더 비싼 인력을 채용하거나 외주를 주어야 합니다. 일단 맥도날드화의 유혹에 말려들면 계속 그 길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비용절감과 효율화를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비용을 천문학적으로 쏟아 붓고 얻는 것은 쥐꼬리만한 혜택뿐입니다. 흔히들 정보시스템을 깔면, 수작업으로 하던 것을 자동화함으로써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논리가 가장 설득력 있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에 관한 실증적 근거를 나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지식산업에 종사하는 경우에는 ERP BSC와 같은 맥도날드화 조치를 추진할수록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파편화된 시각으로 비즈니스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치를 무시한 채 가격으로 사물을 보는 아주 근시안적인 인간으로 바뀝니다. 구성원들의 능력은 맥도날드화의 틀에 맞추어 줄 뿐 그들의 잠재력은 오히려 점점 퇴화됩니다.
 

1990년대 초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관리회계담당 리처드 캐플란(Richard S. Kaplan) 교수와 컨설턴트인 데이비드 노턴(David P. Norton) 박사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Balanced Scorecard(BSC, 균형성과지표)개념이 점차 확대되면서 최근에는 경영관리의 전략적 실행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매우 합리적인 경영관리방안입니다. 기업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들을 지표화하여 몇 가지 관점에 따라 지표들간의 인과관계를 관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문제점은 추후에 상세히 설명될 것입니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통해 합리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시스템을 통해 인간의 태도와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인간을 기계장치와 같이 합리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인간은 합리화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합리화되지 않습니다. 근대 문명의 비극은 인간을 합리화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경영학은 온갖 기술과 방법을 동원하여 인간을 합리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전혀 합리화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존재를 위한 존재입니다. 무엇을 위한 존재가 아닙니다. 존재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존재를 <실존한다>(exist)고 말합니다. 현상적 존재(being)을 넘어(ex~) 초월적 세계에까지 의식의 지평이 닿아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경영의 맥도날드화를 전문적으로 하는 수많은 컨설팅 회사와 컨설턴트들로부터 욕 먹을 소리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지식근로자들이 일하는 곳에 합리화 또는 자동화되는 온갖 시스템을 깔아도 회사는 결코 합리화 되지 않습니다. 인간들의 모임인 조직 역시 합리화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컨설팅 회사에서는 나에게 숫자를 들이대면서 내 주장에 근거 없음을 보여주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숫자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영혼이 없는 숫자는 인간과 조직을 파멸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사회과학에서 제시하는 숫자는 (전부는 아니지만) 대개의 경우 조작된 것입니다. 전제와 가정을 기반으로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보여주고 싶은) 숫자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숫자를 멋대로 거짓을 지어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정과 전제를 바꾼다는 뜻입니다.) 숫자는 인간의 가치를 드러내지 못합니다. 상품의 가격이 상품의 가치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치와 가격의 문제에 대한 내 경험을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아주 오래 전의 얘기입니다. 어느 회계법인 소속 컨설팅 책임자가 Value-based Management에 관한 세미나 발표가 있어서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value-based”를 쉴새 없이 말하고 있었는데, 그가 말하는 밸류가 재무제표의 숫자를 말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고는 무척 당황했습니다.

 

세미나 중간에 내가 질문을 했습니다. ‘가치를 숫자화하면 가치가 아니지 않는가라는 요지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는 경영의 모든 가치는 숫자화해야 하고, 그래야 관리가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측정되지 않으면 관리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무제표의 숫자와 지금 발표된 가치개념은 어떻게 다른가를 또다시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그게 그거라는 것이었습니다!

 

현대경영학계와 경영실무계가 이런 정도까지 왔습니다. 가치를 가격화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아내와 연애시절부터 주고 받은 편지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20년도 넘은 과거에 가난했던 독일 유학시절 찍은 사진도 아직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와 사진의 가치는 얼마일까요? 어떻게 계산할 수 있을까요? 옥션에다 판다? 경매에 부쳐본다? 정답은 측정할 수 없다입니다. 이 편지와 사진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치는 이렇게 주관적인 것입니다. 가치는 측정할 수도 없고, 측정해서도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value)입니다. 어떤 사물의 가치가 화폐가치(가격)로 측정되는 순간 그 사물은 단 하나의 가격으로 붕괴됩니다. 이것은 마치 소립자가 관찰자의 의도에 따라 붕괴되어 소립자의 다른 특성들이 사라지는 현상과 같습니다. 그 사물의 가격 이외의 모든 가치는 사라집니다. 가격은 어떤 경우에도 가치를 반영하지 못합니다.

                                          

비용절감과 효율화를 목적으로 맥도날드화를 지속하면, 오히려 비용이 증가하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즉 기업의 가치(value)가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마치 다이어트를 너무 과도하게 하면 건강을 해쳐 치료비용이 더 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구조조정과 명예퇴직으로 유능한 핵심인재들을 내보내고, 회사에는 충성심이 강한 무능한 사람들이 회사에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입장에서 보면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아주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B급이나 C급 인재들만 내보낼 수 있다고요? 누구 맘대로? 구조조정이나 명예퇴직에는 대개의 경우 회사를 떠나서도 생존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들이 나갑니다. 경기가 나쁘다고 이윤이 줄어들었다고 감원하는 기업에서 구성원들이 어떻게 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을까요? 신뢰가 사라지면 모든 사물과 구조가 무너지게 됩니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은 외부환경 통제에 의해 강제로 변화될 수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일 뿐 아니라 효율이 매우 낮습니다.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비효율을 가져옵니다. 장기적으로 높은 성장과 발전을 기획한다면, 구성원들에게 통제를 풀고 <마음을 서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전을 세워서 느슨한 가이드만 제공해야 합니다. 이런 방식의 경영이 훨씬 더 높은 성과를 냅니다. 그런 예는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대표적인 기업이 브라질의 셈코그룹(Semco Group)입니다. 이런 방식의 경영을 지향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구글, 버진그룹 등도 이런 방식의 경영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통제하기 위해 맥도날드화함으로써 지불해야 하는 직간접적인 비용을 감안하면,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얻는 혜택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시스템이 의사결정을 하면, 인간의 두뇌는 멈추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은 그 어떤 것도 창조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