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순진했습니다. 임금님은 벌거벗었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던 어린아이처럼. 대학물도 먹어보지 못한 그는 위선으로 가득 찬 현실에서 진실을 말했습니다. 가진 사람이 헐벗은 사람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권력의 자리에 올랐을 때, 자신이 말한 대로 실천해 보려고 했습니다. 말하는 것은 그리 큰 힘이 없지만, 그것을 실제 정책으로 입법화하고 실행에 옮기게 되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그가 추진했던 대부분의 정책들은 그렇게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의 용기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래서 소위 가진 사람들은 그의 파격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온갖 이론을 갖다 대지만 결국은 자신들의 이득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심지어 노무현의 말투에서부터 건들거리는 걸음걸이까지 시비를 걸었습니다. 권좌에 있을 때도 그랬는데, 그 후에는 어떻게 됐겠습니까? 사돈의 팔촌까지 일망타진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법의 부재가 금지를 보편화한다”
그가 권좌에서 내려오자, “법의 부재가 금지를 보편화한다”는 라깡의 역설이 실현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심경을 건드리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잡아갑니다. 70년대 박정희의 유신말기로 되돌아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라깡의 후예인 정신분석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 1949~)은 문명비평가답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함으로써 우리는 단지 불필요한 위선과 가식으로부터 벗어날 것만을 기대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 난 후, 그러니까 너무 늦어버렸을 때 우리는 불현듯 우리가 기대한 것 이상의 짓을 하고 말았다는 사실, 즉 우리가 속한 공동체 자체가 붕괴된 것을 깨닫게 된다. 아마 이런 이유로 그 소년의 행위에 대한 통상적인 칭찬을 포기하고, (기존의 상호 주관적 네크워크가 그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코 말해서는 안 될 것을 불쑥 말해버림으로써 결국 자기도 모르게 파국을 초래하고 만다) 순진한 수다쟁이의 전형으로 인식해야 할 시간이 도래했는지도 모른다.” (슬라보예 지젝, 박정수 옮김,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인간사랑 2004, 159쪽)
노무현의 순수함과 순진함
그래서 그는 감히 말해서는 안 되는 암묵적인 관행을 깨고 진실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자신이 말한 이상을 실현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그가 없습니다. 지젝의 말처럼 노무현을, 결코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함으로써 자기도 모르게 파국을 초래케 한, 순진한 수다쟁이의 전형으로 인식해야 할 시간이 도래한 것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노무현의 부활을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요?
임금님과 사기꾼들, 그리고 순진한 어린이
우리가 지금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온 백성이 임금님처럼 사기꾼들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진실을 말하는 순진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는 그런 젊은이를 길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기성세대는 그런 젊은이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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