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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록/에세이

사이비 인문학과 인문학 장사꾼들

인문학은 문학, 철학, 역사학을 포함한다고 합니다. 최근에 부쩍 “CEO를 위한 인문학강좌가 많아졌습니다. 실무에 재직할 때도 이런 부류의 강좌를 들었지만, 워낙 시간여유가 없어서 옳고 그름을 따질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습니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책을 쓰면서 우리나라 기업가 또는 경영자들의 인문적 소양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CEO를 위한 인문학 강좌 몇 개를 골라 일부러 다시 들었습니다. 어떤 강좌였는지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강사들은 대개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이거나 전공은 아니어도 인문학 근처에서 얼씬거린 사람도 있었고 꽤 이름이 알려진 철학자도 있었으니까, 외견상 인문학을 강의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봐야겠습니다. 어떤 강좌이든 그 강좌를 듣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인문학 강좌에서 기업가나 경영자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강좌들은 대개 기업가나 경영자들에게 기업에서 스마트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경영의 통찰력을 길러준다는 것을 목적으로 설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대철학자들에서부터 고대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사유가 오늘날 경영개념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역사적 사건들에서 위대한 리더십의 표본을 골라 해설해 주기도 하고, 고전을 풀어서 현대적 기업경영에 활용하기 위한 기초개념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경영자들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허전함을 느낍니다. 인간에게는 짐승과 달리 영혼이 있어서, 자신이 타인에게 뭔가 잘못한 게 있으면 꺼림직하기 마련입니다. 인문학은 바로 이 틈새를 파고들어 인간의 자기정체성을 찾아, 이 세계와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도와주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몇 개의 강좌를 들으면서 이건 아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인문학이란 사업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관한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과 명예를 얻을 것인가에서 벗어나,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를 성찰하게 하는 것이 인문학이기 때문입니다. 허황된 쾌락과 지배욕을 제어하면서, 인간이 처한 현실의 문제가 어떤 것이고, 그런 문제는 도대체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를 사유하게 하는 것이 인문학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시중에서 떠도는 CEO를 위한 인문학 강좌는 대부분 기업 오너와 경영자들에게 종업원을 어떻게 하면 힘들이지 않고 더 열심히 일하도록 동기부여할 것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울러 참석자들에게 사회지도층으로 올라서기까지 고생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자부심도 불어넣어 줍니다. 현대 경영의 기술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것인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참석자의 비위를 슬쩍 맞춰주면서 온갖 경영의 단편적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업세계의 비인간적 경쟁과 환경파괴적 행태에 대한 비판적 사유는 건드리지 못한 채, 그럴 듯한 미사여구로 경영자들의 사유세계의 천박함을 유식함으로 살짝 포장해 줍니다. 인문학 강좌를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강사의 해박함과 화려한 프리젠테이션 스킬에 탄복합니다. 그런 강좌를 들은 것 자체가 매우 유식해진 것처럼 느끼게 해 줍니다. 만약 중간관리자들이 이 강좌를 들었다면, 더 열심히 일해서 경영자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끔 합니다. 그리고는 명함을 나누면서 세상 사는 처세술을 교환합니다.

 

인문학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도록 돕는 학문입니다. 타인을 은근히 착취하도록 돕는 것은 인문학이 아닙니다. 그런 가르침은 인문학의 탈을 쓴 탐욕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권력의 기술, 유혹의 기술, 아부의 기술, 신뢰의 기술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참석자들은 진실을 외면한 채, 진실인 것처럼 보이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타고난 영혼의 능력을 고양시키는 인문학을 사이비 기술학으로 둔갑시켜 버렸습니다. 인문학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사이비 인문학으로 배운 기업인들과 경영진은 과거와는 변화된 모습으로 종업원을 쥐어짠다는 점입니다. 과거 경영진은 종업원들을 마치 망치로 내려찍을 듯이 위협함으로써 무자비하다는 얘기를 들었고 종업원들의 저항에 직면했었습니다. 그러나, 사이비 인문학으로 무장하게 되면 종업원들을 유압프레스와 같은 방식으로 부드럽게 서서히 누릅니다. 소리 없이 종업원들의 마지막 한 방울의 피와 땀까지 짓눌러 버립니다.

 

내가 너무 색안경을 끼고 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문학의 존재목적은 바로 기업세계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 현상을 고발하고, 그런 방식의 조직운영체제를 개혁하도록 힘을 실어주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인문학 강좌에서 경영자들에게 따끔한 회초리는커녕 그들에게 인문학의 마패를 손에 쥐어주고 있었습니다. 이 마패를 종업원들에게 들이대며 이렇게 말하겠지요. “소크라테스가 말하길,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던데! 그러니 딴 생각하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해!”

인문학마저 상업화에 물들었습니다. 교묘한 상술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갈 데까지 간 미국식 자본주의의 진면목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걸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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