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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

『경영은 사람이다』를 읽고

2014-12-21


 

1. 들어가며

 

나는 언제부턴가 경영학 문헌들은 말라빠진 개념들로 가득 차서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인간성 회복이 중요한 시대에 사람들을 쥐어짜는 얘기가 대부분이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경영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영에 관한 글은 객관적 사실만 나열하는 것보다 주관적 체험을 담아 독자들에게 영혼의 울림을 주어야 한다. 주관적 체험이 빠진 글에는 건조한 명령과 지시, 소용없는 교훈들만 남기 때문이다.

 

최근 이병남 박사가 쓴 경영은 사람이다(김영사 2014)를 만났다. 감동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그는 인사관리, 노사관계를 전공하고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95년부터 LG그룹에서 인사, 교육부문의 책임자로 일했고, 지금은 LG인화원 원장을 맡고 있는 경영자다. 이론가이면서 동시에 실무를 직접 맡고 있는 인사교육책임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그의 이론과 경험이 소설처럼 녹아들어 있어 흥미진진했다. 경영학 책이 소설처럼 읽히는 경험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시장, 기업, 인간에 관한 패러독스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면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어 우리 사회에 주는 의미가 깊은 책이다.




 

2. 시장

 

시장은 더 이상 무한경쟁,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터전이 아니다. 우리는 시장을 인간의 공감능력이 상호작용하는 축제의 장()으로 보아야 한다. 이병남 박사는 시장이 축제의 장이 되도록 만들려면, 공존공생의 원리를 실천할 수 있는 유기론적 생태주의(organistic ecologism)로 시장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계론적 이성주의(mechanistic rationalism)는 하이예크, 프리드만과 같은 신자유주의자들을 만들어냈고 이 이념을 대처와 레이건이 실천했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을 부추긴 결과는 참혹했다. 인류의 존재근거를 뿌리 채 뽑아버리는 대참사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실천해 왔던 지속가능한 공유경제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병남 사장은 이런 사유의 과정을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부터 엘리너 오스트롬의 공유의 비극을 넘어에 이르기까지, 카를로비츠의 숲의 살림에서부터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는 공감능력을 가진 인간의 자율적 실천을 통해 약육강식으로 인식되는 시장이 축제의 장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승자독식과 무한경쟁의 강박이 사방을 에워싼 곳에서는 누구도 그런 풍요로움을 향유할 수 없다. 승자독식이라고들 말하지만 승자 또한 이를 누릴 수 없다. 진정한 삶의 풍요로움은 무엇보다 건강한 생태계에서 소통과 나눔을 통해 실현되기 때문이다."(106)

 

3. 기업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맘껏 발현할 수 있는 개인들이 모여 기업을 만든다. 기업은 인간처럼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없다.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생태계를 형성해야 한다. 기업이 놀 수 있는 생태계가 바로 앞서 말한 시장이다. 이 시장이 승자독식의 터전이 아니라 공존공생의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축제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의 존재이유를 명확히 해야 한다. 기업은 "인류의 큰 꿈과 다양한 열망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과 힘을 가진" 공동체다.

 

그러므로 이윤극대화를 기업의 존재목적으로 정의하는 기존 경영학의 가르침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기업의 생존을 위해 이윤이 필요하지만,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이윤을 넘어서는 존재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물을 먹지 못하면 죽기 때문에 물을 필요로 하지만, 사람이 물을 먹기 위해서 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기업도 이윤을 필요로 하지만 이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윤의 역설에 직면한다. 이윤만 좇다보면 그 이윤추구행위 때문에 기업이 망한다. 그런 사례는 엔론 사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부지기수로 많다. 이윤은 기업의 경영목표일 수 있지만 존재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윤추구만으로는 우리 삶의 의미를 진정으로 빛나게 할 만큼 지속가능한 충만함을 맛보기 힘들 것이다. 오래도록 번성하는 기업은 무엇보다 분명한 철학을 스스로의 존재목적으로 삼고 있다."(123)

 

깨어 있는 자본주의(Conscious Capitalism) 저자이자 유기농체인점 홀푸드 마켓의 창업자인 존 매키가 가장 좋은 사례다. 그는 네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기업의 확고한 존재목적, 이해관계자와의 공유가치, 섬김의 리더십, 기업의 존재목적과 경영원칙을 수용하는 조직문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말이야 쉽지만, 이것을 실천하는 것은 경영자의 확고한 정신적 토대(mental model)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이병남 박사의 말대로, 경영자가 올바른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전문적 실력, 공감하는 능력, 자기성찰과 같은 개인적 역량을 겸비해야 한다(180쪽 이하). 이것은 몇 권의 책을 읽거나 단기훈련을 받아서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더구나 조찬강연회 몇 차례 들었다고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리더는 대개 타고난 자질이 있어야 한다. 이런 자질이 없는 사람들이 사적 욕심으로 대중적 이미지를 조작하여 권력을 잡을 경우 그 조직은 부패와 타락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경영자의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이 창업자의 2,3세라는 이유로 경영의 일선에서 일하는 것은 위험하다. 대한항공의 조현아 사태에서 보듯이, 기업경영에 특별한 재능이 없는 2,3세들은 그저 자본가로 남아있는 게 기업을 위해서도 국가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4. 인간

 

기업은 노동하는 인간(homo faber)의 집합체다. 인간의 노동이 생산을 위한 자원(human resource)인 것은 분명하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진화한 세포들의 결합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그저 숱한 우연의 중첩결과가 아니라, 우주적 사랑의 놀라운 힘으로 진화라는 거대한 서사시를 완성시키는 거룩한 존재이다."(212) 그래서 인간은 생산요소임과 동시에 생산 활동을 넘어서는 실존적 존재라는 역설에 직면한다. 이런 개념은 테야르 드 샤르뎅 신부의 인간현상에서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나는 1980년대 독일유학시절 지도교수였던 빌프리트 크뤼거 박사로부터 샤르뎅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를 받았지만 샤르뎅을 읽을 수가 없었다. 경영학의 기초가 부실했던 나는 공부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귀국 후에 언젠가 읽으리라 작정하고 번역판 인간현상을 구입해놓고 있었지만 까맣게 잊고 있었다. 샤르뎅의 사상이 창조론과 진화론의 모순과 역설을 창조적 진화론으로 해결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알았다(211~216쪽 참조). 이제 인간현상을 읽어야 할 과제가 생겼다.

 

유학시절 크뤼거 교수로부터 배운 인사기능의 존재이유는 인간의 기능적 불평등(funktionale Ungleichheit)과 실존적 평등(existenziale Gleichheit)을 조화(Harmonisierung)시키라는 하늘의 명령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이 경구는 독일 경영학의 1세대 학자인 에리히 코지올, 코지올의 제자 랄프보도 슈미트, 슈미트의 제자 빌프리트 크뤼거에게 전수되었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수없이 들렸던 그 경구의 의미를 나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귀국한 후 경영실무를 하면서 그 말의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학습, 노동, 생활이 삼위일체를 이루었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독일 경영학 스승들의 가르침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 경영은 사람이다를 읽으면서 놀란 것은, 이병남 사장도 독일 경영학이 나에게 알려주었던 인간의 기능적 불평등(functional inequality)과 존재론적 평등성(ontological equality)의 모순과 패러독스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인간존중경영" 개념으로 이 모순과 역설을 해결하고 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 LG그룹은 아마도 이런 이론을 경영모토로 실천하려고 애쓰는 것으로 보인다. “난마처럼 얽힌 상호출자와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자 지주회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바꾼 것이다”(140). 지금도 경영상의 부조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배구조가 바뀌기 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것은 분명하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존중경영이란 모든 구성원들이 타고난 재능을 맘껏 발현할 수 있도록 노동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아울러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해선 안 된다는 단순하고 간명한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249).

 

5. 나가며

 

정말 오랜만에 소설처럼 재미있는 경영학 책을 읽었다. 2014년12월19일, 그러니까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라는 판결을 내리던 날, 나는 하루 종일 경영은 사람이다를 읽으면서 깊은 감동을 얻었다. 시장, 기업, 인간을 특정한 이데올로기의 틀에 가두지 않는 사유의 깊이를 생각하면서, 이 사회의 발전을 진정으로 염려하고 사유의 스펙트럼을 확장해야 하는 지성인이라면 기업경영뿐만 아니라 국정운영의 교과서도 이렇게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