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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록/에세이

통진당 해산결정 중 국회의원 상실판단에 관한 박찬운 교수의 견해

아래 글은 페이스북 친구인 박찬운 변호사(한양대 로스쿨 교수)의 견해를 기록해 둔다.
내 생각에도 그렇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야 정상이 아닌가...



박찬운 변호사(한양대 로스쿨 교수)



[통진당 해산결정 중 국회의원 상실판단에 관한 나의 생각]


통진당 해산결정으로 한국 민주주의는 중대기로에 섰다. 이에 대한 나의 입장은 명확하다. 있을 수 없는 결정이다.


그런데 결정 중 국회의원 상실판단은 해산결정과 달리 법률적 각도에서는 더욱 큰 문제를 안고 있다. 해산결정은 법률적으로 보면 헌재의 권한사항이니 동의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고 우길 수 있지만, 국회의원 상실부분은 헌재의 권한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그 판단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하면 헌재로서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통진당 국회의원들은 행정재판으로 '국회의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그 소송은 제기되자마자 각하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고,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이 소송이 설마 가능하겠는가 하는 회의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에 대해 순수하게 법률가적 입장을 피력하고자 한다.


1. 헌재결정문을 보면 헌재는 국회의원 상실에 대해서는 헌법 및 법률에 관련 규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국회의원의 상실은 정당해산심판제도의 본질적 효과라고 했다.


2. 그러나 국회의원이라는 헌법기관이 헌법 및 법률의 자격상실 규정에 따라 직위가 상실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헌재가 정당해산 과정에서 본질적 효과를 운운하면서 상실판단을 한 것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초헌법적, 초법률적 판단이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헌법학자와 법률가들이 이미 말을 했으니 나는 특별히 그것을 재론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이야기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사태가 발생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에 대한 문제다.


만일 통진당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이 결정 직전에 탈당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경우에는 헌재로서는 국회의원상실결정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헌재가 국회의원 상실결정을 하면서 이유로 제시한 정당해산결정의 실효성 보장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헌재로서는 방법이 없게 된다. (설마 그 경우에도 국회의원 상실결정을 했을까? 그건 못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헌재 결정 직전에 탈당한 국회의원은 살고, 탈당하지 않은 국회의원만 죽이는 것이 되어, 헌재결정의 부당성이 더욱 부각되었을 것이다.


3. 그렇다면 헌재의 초헌법적, 초법률적 판단의 효력이 무엇인가. 내가 보기엔 그것은 '판단 무효'이다. 그것은 헌재가 결정은 했지만 원시적으로 효력을 발생할 수 없는 결정이라는 것이다.


4. 헌재결정의 무효라는 개념이 있을 수 있을까? 있을 수 있다. 이것은 법원 판결이 무효일 수 있는가? 라는 질문과 유사하다. 법원에서도 판결의 무효라는 개념이 있다. 보통 법원판결은 문제가 있을 때 상소 혹은 재심의 방법으로 그것을 고칠 수가 있다. 그런데 그럴 수 없는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대법원이 판결을 하면서 대법원의 권한사항이 아닌 법률의 위헌판단을 하였다고 하자. 대법원이 특정법률에 대해 위헌결정을 한 것이다. 헌재가 할 것을 법원이 한 것이다. 이 판결이 확정된 경우, 그 판결에 따라 해당 법률이 무효가 될까? 아니다. 그것은 대법원 판결이 원천적으로 무효이기 때문에, 설사 재심으로 고칠 수 없는 상황이라도, 그 판결의 효력은 없는 것이다.


이런 경우 정부는 그 법률의 유효를 주장할 것이고, 그에 따라 법률을 집행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해당사자는 헌법재판을 청구할 것이고, 결국 헌재에 의해 위헌법률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다.


5. 이 같은 이치로 이번 헌재결정 중 국회의원 상실판단은 무효로 볼 수 있다.


6. 문제는 선관위가 이 결정이 난 후 해당 국회의원에 대해 국회의원 상실조치를 취하고 후속절차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해당 국회의원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7. 행정법원에 '국회의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맞고, 동시에 임시지위를 구하는 가처분신청을 하는 것도 맞다.


8. 혹자는 헌재결정은 최종적이라 그것을 다툴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는 데, 이것은 정당해산결정에 한해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지위확인소송에서는 그렇지 않다.


9. 국회의원지위확인소송에서는 헌재결정의 기판력이 미치지 않는다. 동일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원은 얼마든지 원고가 주장하는 헌재결정의 무효를 판단할 수 있다.


10. 내 예상으로는 이 사건은 결국 대법원에 가서 최종적인 판단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법원이 헌재가 한 국회의원 상실부분 판단이 무효라고 판단하면 이 문제는 최종적으로 지위확인 승소로 끝날 것이다.


11. 법률가적 입장에서만 말하면 대법원이 이 문제를 쉽게 각하하거나 기각하기가 어려울 것이라 판단한다. 왜냐하면 대법원이 이 문제를 헌재입장대로 결론을 내면 헌법과 법률에 없는 헌재권한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권한을 가지고 싸우는 두 기관의 속성상 쉽지 않은 결론일 것이다. 대법원이 매우 곤혹스런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