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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이야기

다수제 민주주의 vs 합의제 민주주의

2015-01-05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흔히 직접민주주의(direct democracy)와 간접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 = 의회민주주의)가 그것이다.


나는 한 인간의 의사(意思)가 다른 사람에 의해 대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각자 고유한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용상의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의민주주의를 실행한다. 대의민주주의는 시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대표를 뽑아서 그들에게 일정기간 정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위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사람의 견해를 다른 사람이 대의하는 민주주의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다고 믿는 환상에 불과하다. 나를 대리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아무도 없는데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대의민주주의 제도는 온전한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없는 멍청한 민주주의 또는 흠결이 많은 민주주의다.

 

어쩔 수 없이 대의민주주의 형태를 취한다고 하더라도 시민 개개인의 요구를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실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의민주주의에서 지금까지 개발된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다수제 민주주의(majoritarian democracy)와 합의제 민주주의(consensus democracy).

 

다수제 민주주의는 다수결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영국과 미국이 이런 방식을 택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 다수제를 따르고 있다. 다수결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 비록 한 표가 많더라도 일단 다수가 되면 모든 것을 먹어버린다. 표를 더 많이 얻은 사람이 권력을 잡고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표를 많이 얻지 못한 소수는 국물도 없을 뿐 아니라 다수의 횡포에 찍소리도 못하고 짓밟히게 된다. 모든 것을 다수의 선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영국과 미국에서는 다수당이 집권하면 권력을 독점하여 모든 것을 먹어버린다. 우리나라도 이런 방식을 따른다


일단 다수당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기 때문에 다수가 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때로는 불법과 부정을 저질러서라도, 표를 얻으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다수제 대의민주주의는 소수를 배제하는 결정적인 흠결이 있다. 다수가 소수의 견해를 묵살하고 자신의 힘으로 밀어붙이거나 소수를 억압하거나 통제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다수가 독재를 하는 경우다. 최악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뒤집어썼지만 결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는 형태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다양한 견해와 사상이 존재하는 오늘날 다수제 민주주의를 실행하면 소수는 자칫 정책결정과정에서 영원히 배제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사회적 불안과 분열이 야기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체제의 총체적 파국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은 국가운영에서뿐만 아니라 기업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업조직도 조직 내의 다양한 견해와 사상을 통합조정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오너일가 또는 권력을 쥔 소수의 편협한 결정이 누적되어 결국은 망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흠결을 가지고 있는 다수제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기 위해 합의제 대의민주주의를 실행하는 나라들이 있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등과 같은 유럽의 게르만형 국가들이다. 이런 나라의 구조적 특징은 소수의 견해를 정치과정에 어떤 형식으로든지 반영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당제, 연립내각,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양원제, 분권형 연방제 등의 제도적 장치를 실행하고 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거인데, 이런 나라에서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의 대다수를 비례대표로 선출한다. 그러면 정당구조가 자연스럽게 다양한 견해를 표출할 수 있는 다당제로 이행되며, 다당제 하에서는 당연히 여러 당이 연립내각을 구성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에 견제와 균형을 갖추게 된다. 다양한 의견을 가진 구성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하게 되어 내적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게 된다.




 

내가 합의제 대의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합의가 되지 않는 한 어떤 것도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 다수의 횡포와 독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수가 소수의 반대를 포용하기 위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새로운 해결책을 마련하느라 정책결정자들은 항상 보다 더 합리적이고 보다 더 창조적인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굳이 창조경제란 용어를 쓰자면 바로 이것이 창조경제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이런 창조경제의 예로 스위스 사례를 보자. 스위스는 연방국가인데, 연방정부는 국가적 아젠다를 7명의 장관이 내각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연방장관 7명 중 2015년 현재 법무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은 좌파정당 출신이고, 국방부 장관은 우파정당 출신이다. 나머지 4명은 중도정당에서 선출된 사람들이다. 연방정부 차원에서 의사결정의 원칙은 만장일치 합의제(Kollegialprinzip, principle of consensus)다. 합의되지 않는 정책은 어떤 경우에도 실행될 수 없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어떤 사안에 대한 좌파와 우파의 해결책은 항상 정반대다. 그렇기 때문에 합의하기 위해서는 좌파, 우파, 중도파의 견해를 포괄하는 통합된 새로운 대안을 발굴하지 못하면 어떤 정책도 실행할 수 없다. 그러므로 새로운 통합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창조적인 작업이 된다. 스위스가 이런 창조적 작업에 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타인의 다른 견해를 무시하거나 윽박지르지 않고 더 나은 대안을 생각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연방정부가 만장일치 합의에 의해 결정한 것으로도 시민들의 대의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시민 10만 명이 청원하여 법률안을 의회에 제출할 수 있다. 그러면 반드시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이 경우에는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하는 셈이다. 그래서 스위스를 준직접민주주의(semi-direct democracy)의 나라라고도 부른다.

 

스위스가 이 지구상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잘 실현되는 국가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렇게 행정부와 입법부가 시민의 견해를 충실히 대의할 수 있도록 제도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발달할수록 경제와 문화에서 부강한 나라가 된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스위스는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와 관행의 차이가 조금씩 있을 뿐, 기본적으로는 소수를 배제하거나 억압하지 않는 합의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운영은 말할 것도 없지만, 기업경영에서도 토론과 합의의 원칙이 지켜지도록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